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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Nov 25. 2020

2. 아이들과 업무 사이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2차시)

나는 6학년 부장이다. 6학년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이 내 업무의 전부.... 였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 더 있는 업무가 있다. 그것은 소프트웨어 선도학교 운영 업무이다. 게다가 올해는 인공지능 교육 시범 분야로 선정되어서 일이 뭔가 다양해졌다. 나도 모르는 인공지능을 내가 배우자마자 가르쳐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것까지야 뭐 쉬운 일이다. 초등학생에게는 체험과 입문, 기초과정 위주의 교육이 많다 보니 아이들에게 충분히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이 많이, 아주 많이 어려워졌다. 아이들을 마주 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원격수업을 하게 하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에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까지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작년 10월에는 우리 학교 3~6학년 아이들에게 컴퓨터실과 우리 반 교실에서 한 달 동안 아침시간과 점심시간을 모두 할애해서 900명에 가까운 아이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육 체험 부스 운영을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학생강사가 되어 9월 한 달이 온통 소프트웨어 교육으로 채워졌고, 교과 통합과 연계라는 이름으로 모든 교과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이 더해진 수업을 했다.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했는데 정작 내가 지쳐갔다. 10월 한 달간 총 수면시간을 봤더니 60시간이었다. 30일간 평균적으로 2시간을 잤던 것이다. 물론 안 잔 날이 더 많았다. 잠은 주말에 몰아서 자기 바빴고,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오늘 오는 학생들이 누구인지, 준비물은 다 준비가 되어있는지 확인하느라 바빴다. 그래도, 보람은 넘쳤다.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피드백을 많이 주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도 이 소프트웨어 교육 체험주간, 아니 소프트웨어-인공지능 교육 체험주간이라는 것을 운영해야 하는데, 계획을 4월부터 짰는데 9월 말까지 완성을 하지 못했다. 방역지침이 계속 바뀌고, 모일 수 있는 인원이 자꾸만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700명에 가까운 아이들과 그만큼의 학부모를 대면하지 않고 강의를 하고, 체험을 할 수 있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냈다. 아이들이 다 가고 난 뒤에 신청을 받아 체험을 하기로 했고, 15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2주간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소프트웨어-인공지능 체험주간을 운영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가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하고, 보람 있어한다는 이유로 나는 아이들에게 내 업무를 나누어줬다. 물론 내가 혼자 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토요일에 학부모 연수 및 체험을 위해 아이들을 토요일에도 나오게 해서 체험을 돕게 했다. 그렇게 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치킨을 사주었다. 아이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그저 치킨으로 퉁쳐버린 것이다.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마다 항상 울음이 터졌다. 아이들에게 못해주고, 나를 대신하도록 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 업무를 아이들에게 전가한 것이다.


나는 그때도 그랬고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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