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석사 과정 이야기

번역가가 되기 전 이야기 3

by 승주연

고3 시간표인 줄…


레닌그라드 전기 공대에서 연수를 한 기간은 그야말로 몸풀기에 불과했다. 석사 과정 커리큘럼은 살인적이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3년 과정을 2년으로 압축했기 때문이었다. 학생 입장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절약할 수 있고, 1년 치 학비 역시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업 외에도 교수님들이 내주시는 숙제와 참석해야 하는 세미나들이 있어서 꽤 버거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늘 입은 1m 정도 나와서 ‘이게 무슨 석사야. 고3이지.’라고 투덜대곤 했다.


첫 달 필기 노트는 썼다는 데 의의를 둬야…


러시아어 언어학을 선택한 나는 러시아어 언어학 과목들과 러시아 문학 수업을 주로 들었다. 교수님들은 대부분 엄격하고, 명문대학교에서 강의하신다는 자부심 역시 강한 분들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분들의 명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러시아에서의 석사 과정이 생소했던 나는 처음 1달 동안 엄청나게 헤맸다. 노트 필기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교수님들이 속사포로 쏟아내시는 강의 내용을 잘 받아 적는다는 것은 쉽지 않아서 늘 무언가 놓치기 일쑤였고, 글씨 역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필이었다. 어떤 맥락에서 필기를 했는지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공책을 빼곡히 채웠다.


시험을 한 달이나 본다고요?


러시아에서 시험 기간은 한국처럼 짧지 않다. 보통 1달에 걸쳐서 한 과목씩 띄엄띄엄 본다. 이 패턴 역시 익숙하지 않아서 1달쯤 되면 지치지 일수였다. 문학 수업의 경우는 꽤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수업 수도 많은 데다 수업마다 교수님들이 내주시는 과제량도 만만치 않아서 문학 수업에서 읽으라고 하는 책들을 모두 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죄와 벌’이나 20세기 문학에서 공부했던 불가코프의 ‘개 심장’ 같은 작품을 원서로 읽는다는 것은 꽤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름 꾀를 내서 ‘개 심장’이라는 흑백 영화를 보면서 공부를 한 적도 있는데, 영화가 원작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영화를 보면서 졸았다. 게다가 20세기 러시아 문학이 상당히 생소해서 시험공부할 때 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난 미역국만 3일째야…


유학을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공부만큼 중요한 것은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다. 한국에는 무수히 많은 레토르트 식품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제작되어 우리의 선택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러시아는 상황이 다르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과 달리 러시아의 음식은 주로 짜거나 느끼하다. 물론 이것은 우리 입맛에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일 3끼를 맛있게 챙겨 먹는 일은 여간 번거롭지 않다. 게다가 유학생들이 모두 다 음식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 음식을 러시아에서 만들어 먹는다는 것 역시 식자재 공수 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히기 일쑤이다. 그래서 석사 동기들이 모이면 푸념하듯이 ‘난 미역국만 3일째야.’ 식의 말을 뱉어 놓는다. 석사 과정에서 수많은 과제와 시험공부하기에도 버거웠던 나는 시간을 아낄 생각으로 철저히 현지식으로 먹었다. 아침에는 우유를 넣어서 끓인 러시아식 죽을 먹고, 점심때는 주로 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 내에 있는 구내식당이나 매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저녁에 집에 오면 빵에 버터나 치즈를 얹어서 먹고, 후식으로 저렴한 과일을 먹었다.


추위를 타냐고요?


러시아에서 유학했던 사람은 추위를 안 탈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러시아라는 추운 나라에서 몇 년을 살았다면 한국의 추위 정도는 우습지 않냐고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강추위를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래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 때문인지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아직도 집에서 나오기 전에 그날 날씨와 기온을 꼭 확인한다. 비가 오면 우산을 챙기고, 기온이 평소보다 떨어지면 겉옷을 두껍게 입고 나간다. 나는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했고, 이 도시는 표트르 대제가 늪지대를 개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상당히 습하다. 따라서 체감 온도는 원래 기온보다 더 낮은 경향이 있다. 습한 기온이 몸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후로 나는 추위에 대해서는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눈에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


수업도 많고, 과제도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잠을 줄이고, 늦게까지 공부를 하게 됐다. 그렇게 한 2주쯤 공부하고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는데 평소와 달리 눈알이 뻑뻑했다. 당시에 나는 러시아 가정에서 홈스테이 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와 딸이 내 눈을 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분들이 봐도 눈이 꽤 부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들과 함께 서둘러 병원에 갔고, 결국 무려 열흘 동안 학교에 가는 것은 고사하고 책을 읽지도 못하고, TV를 보지도 못 한 채 집에서 온전히 요양하면서 상당히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몸이 아파서 학교 수업을 열흘 동안 못 듣는 것보다는 숙제 못 해서 교수님께 꾸지람을 듣는 한이 있어도 잠을 충분히 자고 공부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웬만한 꾸지람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두꺼운 얼굴을 소유하게 됐고, 아파서 학교 수업에 빠지는 빈도 역시 훨씬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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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석사 동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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