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가 되기 전 이야기 2
사실 처음부터 러시아에서 석사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원서를 원 없이 사 오고 싶었다. 주머니 사정도 절대 넉넉하지 않았던 터라 6개월 정도 단기 연수를 받고 오려고 했던 것이 원어민 교수님께 상담을 받고 석사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6개월이면 놀고 오기 딱 좋은 기간이다. 뭐라도 하고 와야지. 이를테면 석사 같은 거 말이야.’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팔랑팔랑한 내 귀와 갈대 같은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 길로 ‘석사’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사실 상의보다는 통보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흔쾌히 내 결정을 지지해주셨다.
돈이 없었던 나는 유학 수속을 직접 다 하면서 당시 40여만 원에 달하던 유학원 비용을 줄였고, 항공권은 ‘시베리아 항공’에서 편도 40만원 정도 하는 티켓을 끊어서 러시아로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비행기를 처음 탔던 나는 세상 모든 비행기는 그렇게 작고,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엔진 소리가 크게 나며, 좌석은 내가 일어나면 내게 넙죽 절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시베리아 항공은 크라스노야르스크를 경유해서 갔고, 덕분에 1월의 혹독한 시베리아 추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경유했을 당시 기온은 영하 28도였다)
공항에는 미리 연락을 취해둔 아랍계 남자와 한국인 여자가 마중을 나와 있었고, 그들과 함께 유선상으로 수없이 기숙사 등록을 확인했던 레닌그라드 전기 공대 기숙사에 갔지만, 그곳에서는 나란 사람이 그날 올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영하권 날씨에 기숙사까지 찾아온 성의가 불쌍했던지 기숙사 직원은 기숙사 방을 하나 보여줬고, 그 방을 본 아랍계 남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숙사의 가구들의 상태도 상태지만, 청결 상태 역시 최악이어서 그 남자는 내게 ‘넌 이런 방에서 못 살 것 같은데?’라면서 옆에 있는 한국인 여자한테 ‘쟤 너희 집에서 방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있으면 안 돼?’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사실 난생 처음 보는 한국인 여자애가 예쁘면 얼마나 예쁘다고 (착각은 자유니까!) 이런 부탁까지 해줄까 라는 생각과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를 생각해줬다는 사실 만으로도 무척 고맙고 따뜻해졌더랬다. 결국 그 여자 집에서 나는 대략 1주일 정도 묵은 후에 홈스테이할 집을 구해서 나갔다.
레닌그라드 (현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전기 공대에 가기로 한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여행사에서는 IMF형 연수라고 홍보를 했고, 그 말에 혹해서 이 학교에 가기로 한 것인데, 싼 게 비지떡이라고 커리큘럼이 말이 아니었다. 연수 온 학생도 나와 또 다른 여학생 둘밖에 없어서 수업은 말 그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6개월 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모교)에서 석사를 하고 싶었던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선생님들은 ‘넌 잘하니까 석사에 입학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하셨지만, 입학을 위한 노력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넌 잘할 거야.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 무척 무책임한 말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도 내 삶을 책임져주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석사 과정에 꼭 입학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힘을 합친 탓인지 원하던 대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석사 과정에 입학을 하게 된다.
사진은 러시아 국립 도서관 열람증이다. (학생증이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