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인가 독립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번역가가 되기 전 이야기 5

by 승주연

술…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고, 아버지는 그 원인 제공자가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다.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와 무교에 술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기분이 좋아서 혹은 너무 슬퍼서, 화가 나서, 내가 말을 안 들어서, 아내가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고, 그렇게 아버지는 술을 드셨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밤새도록 똑같은 말을 반복하시거나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 남매에게 팔을 들고 서 있으라고 벌세우기 일쑤였다. 사실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면 적응할 만도 하건만 아버지의 주사도 이런 나날도 매번 새롭게 힘들었다. 그리고 이따금 아버지의 주사는 말로만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따금 아침이 오지 않고, 그대로 영원히 밤이길, 그래서 새날이 오지 않길 바랐던 적이 있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로 인해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너무 안쓰러워서 어머니께 따로 살자고 얘기했고, 그렇게 나는 어머니와 떨어져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었다. 당시 동생은 군대에 가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감당할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버텨보는 것이 낫겠다 싶은 다소 교만한 마음일지라도 어머니가 아파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을 이젠 관두고 싶었다. 어머니에 대한 집착은 고스란히 내게로 옮겨왔고, 그렇게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1년 정도를 살았다. 그때 나는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대학을 졸업하면 나도 아버지를 떠날 생각이었다.


준비…


대학교 졸업을 6개월 남겨둔 상황에서 국민연금 관리 공단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돈을 조금씩 모아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에는 구로공단 쪽에 작은 방 하나를 얻었다. 보증금을 내고 방 계약까지 끝낸 나는 아버지를 떠날 준비를 했다. 약간의 책과 옷가지를 아버지 몰래 조금씩 챙겨놨다.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거의 매일 술에 의지하시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야 나도 살고 아버지, 어머니까지 살지 싶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아버지에게서 멀어질 준비를 했다.


거사…

드디어 집을 떠날 날이 되었다. 이른 아침에 짐을 챙겨서 하나씩 밖으로 빼내는 그 순간이 내겐 천년처럼 길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정말 내가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버지가 나를 보시면 어쩌지?’. ‘주인집 사람들이 나를 보면 어쩌지?’, ‘다른 세입자들이라도 보게 되면 난감한데.’ 등 온갖 불길한 생각들에 사로잡힌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짐을 하나씩 뺐다. 다행히 내가 짐을 밖으로 빼는 동안 세입자나 주인집 사람 그 누구도 내 모습을 보지 못했고, 나는 손을 들어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듯이 ‘구로공단이요!’라고 말했다. 무사히 택시를 잡고 택시를 타고도 한참을 달린 후에야 나는 비로소 안심했다. 그렇게 나는 가출을 했고, 당시에는 이 가출이 훗날 러시아 유학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손바닥만 한 천국…


2명 정도가 겨우 다리를 구부려서 잘 수 있을 것 같은 작디작은 공간이나마 이젠 더 이상 울지 않고, 마음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자그마한 부엌이 하나 딸린 작은 방은 내겐 천국 그 이상이었다. 물론 내가 쓸 돈을 내가 벌어야 하고,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며, 먼 미래를 설계할 만한 여유는 손바닥만큼도 없을 때였지만,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도 혼나지 않고, 잘 만들지는 못해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먹을 수 있는 주먹 만한 공간이 내게도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어른이 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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