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고 가장 달라진 점은 하루를 온전히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땐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아도 됐다. 회사와 근로계약을 했기 때문에 아무리 하기 싫어도 출근을 해야했고 하기 싫어도 매일 주어지는 업무를 소화해야했다. 평일은 내가 내 시간을 책임지지 않아도 회사를 위해 알아서 굴러가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퇴사를 하니 하루를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했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의무가 없기에 하루 24시간을 스스로 책임지고 움직여야 했다. 스스로 계획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정말 바보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퇴사를 생각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삶도 바보처럼 무기력하게 누워있거나 유튜브만 보는 삶이었다. 그런 나태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꼭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그걸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는 퇴사 후 내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아침 7시30분쯤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집 앞에 카페에 나간다. 카페에서12시까지 읽고 싶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집에 가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쉬다가 2시부터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한다. 4시까지 운동을 하고 집에와서 씻고 좀 쉬다가 저녁을 간단히 먹는다. 저녁먹고 집청소를 간단히 하고 다시 책을 읽거나 영화를 한편보고 11시쯤 잠에 든다. 내가 원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니 일상에 잔잔한 행복이 깔려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땐 하루가 정말 안 갔는데 지금은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이렇게 하루가 짧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부지런함, 성실함의 미덕을 믿는다. 부지런하게 살아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굶어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지런함도 종류가 있다고 느꼈다. 이는 '슬픔 부지런함'과 '기쁜 부지런함'의 차이다. 나는 회사를 다닐 때도 부지런했고 퇴사를 하고도 부지런히 살고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닐 때의 부지런함은 내게 슬픔을 주었고 퇴사 후 부지런한 삶은 내게 기쁨을 준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집에오면 무기력과 우울이 몸을 휘감았었다. 월급 외에는 아무것도 내게 남는게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 분명 체력적으로는 소진이 되지만 우울하거나 무기력하지 않다. 오히려 체력은 방전이 되었지만 마음 속에 무엇인가 차오르는 느낌이 있다. 이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했을 때 느끼는 행복이 아닐까 한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나태하게 사는 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분명 부지런히 살아야한다. 하지만 그 부지런함은 기쁜 부지런함이어야 한다. 나를 학대하는 '슬픈 부지런함'을 넘어서 '기쁜 부지런함'으로 가야한다. 그렇게 기쁜 부지런함의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을 때 자신이 원하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