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퇴사를 결정하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이미 마음을 먹었기에 최대한 빨리 회사에 말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책상에 앉아서 고민하는 건 의미도 없었고 혹시나 내 결심이 흔들릴까봐 빨리 팀장에게 말해야겠다 싶었다. 우리 회사는 출근시간이 8시라 8시 되자마자 말하려했지만 너무 급한 것 처럼 보일까봐 30분정도 기다린 뒤 뒷자리에 있는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팀장님, 지금 커피한잔 가능하세요?"
"응? 커피? 그래 가능하지."
지금 회사를 2년 가까이 다니면서 팀장에게 한번도 먼저 커피를 마시자고 한 적이 없었기에 팀장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퇴사까진 아니라도 중대발표 같은 느낌은 받은 것 같았다. 우리 둘은 어색하게 4층 중앙에 있는 라운지를 향해 걸어갔다. 걸으면 실제로 1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지만 그 시간이 엄청 두근두근했다. '지금 팀장에게 말하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말고 다음에 말할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는 안 흔들릴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말을 하려고 하니 떨리는 마음이 찾아왔다. 하지만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순 없었다. 6개월을 넘게 고민했고 더 이상은 같은 고민만 반복할 뿐 큰 의미가 없없다. 지금은 한 발을 떼야될 때고 1살이라도 젊을 때 세상으로 나가야했다. 잠깐 흔들린 마음을 다 잡으면서 라운지로 갔고 테이블에 앉아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저 퇴사하려고 합니다."
팀장은 어느정도 예상을 한 것 같았다. 최근에 회사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업무환경이 여러방면으로 더 안좋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기업이고 야근도 없고 안정적으로 적지 않은 월급이 나오기에 쉽게 그만두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업무에 흥미가 떨어지고 있는걸 느낀 것 같았다. 사실 팀장 본인도 회사와 업무에 대한 흥미가 나만큼 떨어져있어서 내 퇴사결정을 오히려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 명철아. 고민 많이하고 말한거라고 생각한다. 니 결정을 존중한다."
팀장은 담담하게 내 퇴사 통보를 받아들였다. 이유를 크게 물어보지도 않았고 말리려고 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 결정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다니려고 하니?"
"이직을 하는게 아니라 시간 여유는 있습니다. 11월 말까지 근무가능 할 것 같아요."
"그래. 아직 여유가 있네. 일찍 말해줘서 고맙다."
팀장에게 퇴사 의사를 10월 첫 주에 말했으니 거의 퇴사 2달 전에 말을 한 것이다. 나는 이직이 아니라 뒤에 정해진 일정이 없기 때문에 사실 꽤 일찍 회사에 말을 했다. 가능하면 내 후임자가 뽑혀서 인수인계를 해주고 가서 남은 사람들 업무부담을 줄여주고 싶었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를 안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리는 신규 투자가 시작되면 보통 2~3달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투자심사 중간에 나가는게 업무를 더 꼬이게 만들 것이란 생각이었다.
6개월 간 고민했던 퇴사를 드디어 통보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기도 했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말 한 마디로 끝나는 것이 신기했다. 이제 팀장에게 말했으니 대표와 팀원들, 그리고 함께 사무실을 쓰는 옆 팀 사람들도 곧 내 소식을 알게 될 것이었다. 아직 퇴사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어색한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 시간정도는 견뎌내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약간은 어색하고 약간은 불편한 동거가 2달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