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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철 Dec 07. 2024

프롤로그: 34살에 이직아닌 퇴사를 했다

나는 91년생으로 한국나이로 34살 남자이다. 보통 한국에서 34살 남자면 한창 커리어를 발전시킬 나이이다. 힘든 신입시절을 지나 어느정도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회사에서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허리정도의 위치에 속한다. 연봉도 그동안 고생한 시절을 지나 어느정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올라왔을테다. 그런데 나는 왜 퇴사를 하게 되었는가?


나는 내가 하는 업무가 점점 싫었다. 흥미가 떨어졌다. 사실 흥미가 떨어진지는 오래됐었다. 흥미가 떨어진지는 몸이 말해준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일어날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샤워를 하고 차에 타면 그때부터 몸이 축축 처지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좋은 시간은 회사에 도착해서 사내카페에서 카페라떼와 빵을 하나 받아와서 컴퓨터 앞에서 먹을 때였다. 그 시간만은 내게 큰 행복이었다. 그 이후에는 다시금 고난과 힘듬의 연속이었다.


나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업무를 했다. VC로 불리는 벤처투자자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직업이다. 우선 '투자자'이기 때문에 주로 돈을 버는 입장이 아니라 쓰는 입장이다. 저연차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을보다는 갑의 위치에서 일을 한다. 나이가 어리고 연차가 얼마 되지 않아도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투자자로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한다. 근태 또한 비교적 자유롭다. 항상 사무실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자리를 지켜야되는 일반 사무직과 달리 벤처투자자는 정해진 근태가 없는 회사들이 많다. 투자처를 발굴하고 미팅을 자주해야하는 업무 특성 때문에 많은 자율권을 보장받는다. 이렇게 '투자자'로서 자유롭고 폼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벤처캐피탈에 입사를 하려고 한다. 고학력자는 물론이고 다양한 산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경력직들이 문을 많이 두드리는 직업 중에 하나이다.


스타트업 행사에 간 나


그렇다면 나는 왜 남들이 다 하고싶어하는 직업을 그만두고 나가는가? 사실 이 질문 때문에 퇴사를 결정하는데 오래걸렸다. '남들은 그렇게 들어오고 싶어 난리인데 나는 이걸 박차고 나가도 되는건가?' 라는 생각이 항상 내 머리 속에 뒤따랐다. 벤처투자자로 일을 하면 사회에서 많은 인정을 받는다. 소개팅을 가더라도 벤처투자자라고 하면 관심을 많이 가진다. 희소한 직업이기도 하고 '투자자'가 주는 긍정적인 인상이 있다. 급여도 나쁘지 않다. 우리 업계에서는 소위 '알바비'라는 제2의 보너스가 있다. 여러 정부지원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초대가 되면 2~3시간 심사를 하고 30~50만원의 심사비를 받는다. 한달에 심사 알바를 2~3개만 하더라도 월급에 90~150만원이 추가가 되는 것이다. 이 돈이 주는 힘이 절대 작지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걸 포기하더라도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나는 새로운 산업을 공부하는게 너무 싫었다.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올해 퇴사를 하기 전에 투자를 위해 주로 공부했던 분야는 '수소산업'이었다. 태양광, 전기배터리에 이어 수소가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로 성장할 것이라는 내부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수소를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연료전지, 수소 보관을 효율적으로 해주는 수소 저장용기, 수소를 활용한 드론 등 수소와 관련된 다양한 산업과 기술을 공부했다. 이 공부들을 하면서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내 삶과 너무 안 와닿아있었다. 나는 2013년식 가솔린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수소 에너지는 태어나서 써본 적도,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드론 또한 내 삶에서 전혀 관련이 없었고 수소 저장 용기 또한 마찬가지다. 내 삶에서 너무 동떨어진 산업과 기술을 공부하니 돈을 버는 것 외에 보람이나 만족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얼리어답터도 아니고 새로운 물건과 기술에 크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단순한 걸 좋아하고 클래식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는 오랫동안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맞지 않는 옷을 오랫동안 입고 있으니 나는 점점 시들어갔다. 하기 싫은 일을 매일 8시간씩 하려니 그 자체가 곤욕이고 스트레스였다. 슬픔의 감정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으니 기쁨 또한 무감각해지고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회사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니 퇴근 후 집에 오면 뻗어있거나 의미없이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이상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돈만 벌면서 살바에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좋은 회사에 다니다가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까지 하는게 점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려고 하자 이제 정말 그만둬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늦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34살에 정해진 것 없이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날 마지막 책상정리를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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