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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Feb 07. 2024

이혼이 유행이냐

 



퇴근하고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중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모른 척 집에 가 한숨 돌린 다음 답신을 할까하다 그냥 받았다. 엄마의 용건이 무엇일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오늘 내일 중으로 한번은 통화를 했어야 했다. 걸음을 늦춰 앞 사람과의 간격을 벌리며 응, 대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짧은 인사 끝에 길고 긴 한숨이 딸려 나온다.

“아니, 걔는 또 왜 그런다니?”

“누구?”

나는 부러 시치미를 뗀다. 엄마는 걱정과 불안 지수가 월등히 높은 사람이다. 그래선지 엄마를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더 무심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말이야. 걔도 이혼하겠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더라.”


사실 동생은 내가 이혼하기 전부터 이미 별거 중이었고 그 훨씬 전부터 남편과 사이가 틀어진 걸 가족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는 노심초사하면서도 이혼까지는 안 가겠지, 마음이 가라앉으면 다시 합치겠지, 걔가 성질은 불같아도 정이 많잖니, 하며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맞다. 동생은 그런 사람이다. 내가 이혼하겠다고 했을 때 동생은 내게 졸혼을 권했다. 굳이 부모 마음 아프게 하면서까지 서류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자기는 따로 살고 있지만 법적 이혼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이 상할까 언니의 결정을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모르긴 몰라도 결정을 내리기까지 동생은 나보다 수백 배, 수천 배의 고민을 거듭하고 할 수 있는 한 상황을 돌이키려 몹시 노력했을 터였다. 서류가 말끔해져야 나에게 지워진 역할들에서 당당히 벗어나 자립할 수 있다고 입으로 콩콩 따질 줄만 아는 언니이다 보니 그 과정의 애달프고 고달픈 사정을 다 헤아릴 수가 없어 미안한 마음을 뭉텅이로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서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는 거지. 안 힘든 부부가 어딨냐. 나도 니 아빠 사업한다고 만날 술 먹고 속 썩이고 돌아다녀도 다 살았어. 니 동생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챙피해서 어떡하냐, 참!”

엄마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혼담이 오가는 남동생 걱정이 앞선 모양이었다. 그 숨김없는 날것의 하소연에 불쑥 심통이 났다.

“왜, 그럼 당사자한테 직접 말하지 나한테 전화했수.”

그러자 엄마는 또 금방 기가 죽는다.

“야! 걔한테 무서워서 어떻게 전화를 하냐. 우리 집 폭탄인데.”

그 말에 푹, 웃음이 나온다. 정이 많은 동생은 더불어 화도 많아서 자기의 감정을 숨기는 법이 없다. 어려서부터 잘 울고 잘 웃고 잘 삐지고 잘 다정하기도 한, 참으로 다이나믹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살았다. 그러니 소심하고 불안한 엄마에게는 그야말로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한 말을 동생에게 그대로 했다간 어떻게 될지 뻔했다. 동생은 어떻게 딸한테 그럴 수 있느냐, 내가 힘든 건 안 보이냐, 나도 할 만큼 했다, 서운하다의 감정을 말과 목소리와 눈물과 외침 등 가능한 모든 신체언어를 동원해 쏟아냈을 것이다. 이 상극의 조합을 오랫동안 보아 온 나로서는 이제야 할 말이 떠오른다.

“흠……경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죠. 고양동 폭탄씨의 경우는 별로 걱정할 게 없습니다.”

한껏 교양 있게 꾸며낸 목소리로 능청을 떨자 순간 얼척이 없어진 엄마는 픽, 하고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김빠진 소리를 냈다.

“하이고 그래, 잘 한다 잘 해. 한 년이 이혼하니까 또 한 년이 따라서 이혼하고. 이혼이 무슨 유행이냐?”

“엄마! 몰랐어? 요즘 완전 유행이야. 엄마도 한 번 해볼래? 말만 해. 내가 법원에서 구청까지 아주 일사천리로 모실테니까.”

우리 사이에 매달린 대화의 무거운 추는 내가 재빠르게 만들어 낸 가벼움의 부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떠오른다. 적당히 밸런스가 맞춰질 즈음이 되어서야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낸다.

“엄마, 이혼 별거 아니야. 나 봐봐, 잘 살잖아.”

“그래, 너 때만 해도 이혼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고 울고 불고 했는데 이젠 눈물도 안 난다. 까짓거 죽는 것도 아닌데 정 힘들면 헤어지는 거지 뭐. 이혼도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거라더라. 내 딸들은 아주 세상 똑똑들 하다야, 천재 박사여.”

한탄과 비난조가 반은 섞였어도 엄마는 딸들의 연이은 이혼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는듯했다. 그래도 남동생 결혼식에는 두 전 사위를 부를 거라고, 친척들에게 이혼은 비밀이라고 못을 박는다. 예상컨대 그 사실은 두 전 사위들과도 이미 얘기가 끝났을 거였다. 나의 전남편 m은 이혼한 지 이 년이 지나도록 종종 내 부모님 집에 찾아가 저녁을 먹는다. 서류는 칼같이 정리되어도 마음은 참 쉽게 정리가 안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다시 번잡해지려는 마음을 들킬세라 엄마와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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