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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Feb 21. 2024

애증의 집들이





남편과 이혼하고 독립을 한지 어느새 2년, 긴 겨울을 보내고 맞이한 봄에 생각지 못한 기쁜 일이 하나 생겼다. 내가 살던 오피스텔보다 조금 더 넓고 좋은,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고 여분의 방도 하나 더 있는 열 여섯 평짜리 신축빌라에 입주하게 된 것이다. 독립한 후 줄곧 LH청약센터 어플을 들락거리며 시도한 결과였다. 

 주민센터의 접수 담당자는 서류를 검토하며 예방주사 놓듯 순위가 낮아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매번 알려주었다. 연령이나 소득, 건강, 부양가족 어느 면에서나 어정쩡한 위치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청약 순번 115번이라는 문자를 받고 포기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기적처럼 기회가 닿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추가 서류를 접수하고 잔여주택을 일일이 찾아 둘러본 후, 주택공사 사무실에 방문해 계약서를 작성할 때까지 혹시 뭐가 잘못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사와 집정리를 보름만에 후다닥 마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가족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하는 것이었다. 오피스텔로 이사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 아빠와 함께 온 엄마가 "이게 집이냐!" 하며 속상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던 일이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폭탄처럼 이혼선언을 하고 집같지 않은 집에 살던 딸로서 얼마간은 죄책감을 내려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번에는 엄마가 혼자서도 잘 하고 있구나 인정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나는 거실 한가운데 새로 들여놓은 널찍한 육인용 원목 테이블에 식사를 준비하며 제법 흐뭇해졌다.

점심 시간에 맞춰 엄마와 아빠, 언니와 초등학생 조카가 집에 왔다. 기특한 조카는 자기 용돈을 다 털어 편의점에서 이모가 좋아하는 커피를 종류별로 사왔다. 조카가 얼음컵에 커피를 담는 동안 엄마는 집을 한번 휘 둘러보곤 바리바리 싸 온 김치와 고추장, 각종 양념과 밑반찬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크고 작은 그릇에 이름표까지 붙여 온 정성과 달리 내내 뚱한 얼굴이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러나 주책맞을 정도로 밝게 식구들에게 준비한 샤브샤브와 불고기, 칼국수를 대접했다. 시작과 달리 집들이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둘러앉아 음식과 막걸리를 먹고 마셨다. 내가 무용담처럼 집 계약 스토리를 늘어놓으면 언니가 "잘했다, 잘했어" 하고 맞장구를 쳤다. 언니는 이제 넓은 책상도 생기고 책도 마음껏 사 놓을 수 있으니 잘 될 일만 남았다고 덕담도 마구마구 늘어놓아 주었다. 그때였다.

 "아무리 그래봐야 넌 실패자야."

막걸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엄마가 기어코 한 마디를 했다. 강철처럼 단단하고 예리한 말이 가슴에 박혔다. 어떻게 해도 엄마를 설득할 수 없겠구나. 이혼 후 종종 듣던 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일부가 숭덩 잘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실망스럽고 화가 나고 막막했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나 받아쓰기 시험에서 백점을 받아 엄마에게 자랑을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내 노트를  힐끗 보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구나." 하며 무심하게 웃어주었다. 그때는 칭찬이라 여겼던 그 말을 이제와 다시 곱씹어볼 때가 있다. 열심히 했구나, 잘했다, 앞으로도 잘 하리라 믿는다와 같은 긍정에서 조금 비껴난 말. 어쩌다 한 번 좋은 일이 생겼지만 원래의 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는 그런 말이 과연 칭찬이었을까. 아마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그때의 엄마도 무심코 한 말일 것이다. 본인의 삶이 힘들어서 자조적인 태도가 몸에 벤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본능적으로 엄마의 우울을 눈치 챈 나는 엄마를 웃게 하려고 노력하다 실망하기를 되풀이하며 자랐다. 때문에 가까운 타인을 위해 나를 먼저 지우고, 시작도 하기 전에 절반은 체념하는 습관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더는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독립을 했지만 여전히 엄마의 말에 연연하고 있는 내가 진절머리나게 싫었다. 

  "엄만 나한테 단 한 번도 좋은 말을 하지 않는구나."

그러나 원망에 찬 응수에도 엄마는 흔들림이 없었다. 


냉랭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언니가 산책을 제안했다. 엄마는 거절했고 나와 언니와 아빠만 집을 나섰다. 짐정리를 하느라 미처 둘러보지 못한 동네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호기심 많고 길눈 밝은 아빠가 가까운 곳에 산책하기 좋은 공원을 발견했다. 

"와, 이런 데가 다 있었네."

"그러게 말이야. 너무 좋다. 동생, 나 여기 살고 싶어!"

"어...그것은 그냥 하는 말이지?"

"아닌데, 진짠데. 나도 여기 살면 안돼?"

아빠의 팔짱을 끼고 아이들처럼 아웅다웅하는 사이 마음이 다시 밝아졌다. 우리는 코를 벌름거리며 꽃 향기 벤 공기를 마구 들이마시고 사진을 찍었다. 딸들이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동안 아빠는 언덕에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보며 위치를 파악하고 어느 길이 안전한지 편의 시설이 어디 있는지 같은 것들을 말해주었다. 듣는둥 마는 둥 하면서도 나는 아빠의 말을 머릿속에 잘 담았다. 이제 한동안은 이곳에 살게 될 것이었다. 너른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답답하면 이곳으로 산책을 나와야지. 언니 말대로 앞으로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았다. 아니 잘 되어야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자 엄마가 설겆이를 말끔히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깨끗하게 씻겨 차곡차곡 쌓인 그릇들을 보니 엄마의 말에 발끈해서 과거의 기억까지 끌어내 곱씹은 것이 미안해졌다.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뽀득뽀득 깨끗이 씻어 낼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나는 가족들이 돌아가고 뒷정리를 하면서도 마음이 개운치 못했다. 망설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투덜거려서 미안하다고, 내 걱정 말고 편히 쉬시라고 인사를 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건강 잘 챙기라고 대답해 주었다. 얼굴을 보면 할 수 없는 다정한 말들이 이상하게 전화를 통하자 수월하게 오고갔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만큼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 느낌이었다. 왜 우리는 가까이에선 서로를 못 견디고 멀리서는 애틋해하는 걸까? 애증이 뒤섞인 이 미스터리한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풀릴 수는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채로 집들이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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