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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Feb 28. 2024

아들에게 누나들은 없다





↳ 누나2: ㅇㅇ씨 시집살이 시키는 거여 그럼 우리가

↳ 남동생: ㅋㅋㅋㅋㅋ

↳ 누나2: 미안하다고 전해줘ㅋㅋㅋ

          어떡해 그럼 누나들이 죽을 수도 없고

↳ 누나1: 빚 갚아달라 병 고쳐달라는 거보다는 나은 시집살이니까 좋게 봐주시라~~ㅎㅎ

↳ 남동생: 앜ㅋㅋ너무 웃기넹

           잘라서 ㅇㅇ이 보여줘야겠다

↳ 누나2: 아우 이시키 그러기냐??

↳ 누나1: 칵~ 죽어도 여한은 없는데 자식색히들이 어려서 ㅠㅠ 에휴

↳ 누나2: ㅋㅋ조금만 더 살게 오래는 아니고

          아니면 애 다 키웠으니까 나라도 먼저 가까? 언니는 둘째 대학 보내고 따라올텨?

          머릿수 하나라도 줄일라믄 그 수밖에 없는디.     


결혼을 앞둔 남동생과 피부마사지 예약 일정을 조율하며 카톡방에서 나눈 대화이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늘 극단으로 치닫는다. 시집살이 시킬까 봐 콱 죽어야겠다니. 만약 셋째 누나가 이혼과 이사와 회사 일과 업 준비로 바쁘지 않았다면 대화는 대결 구도를 이루며 한층 매콤해졌을 테다.  

    

정 많고 말 많고 화도 많은 누나들과 부대끼며 30년을 살아온 남동생은 이제 능구렁이가 다 됐다. 하지만 사춘기와 이십 대까지만 해도 딸 많은 집의 장손이라는 부담이 있었을 게 틀림없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의 가족구성을 들은 주변인들은 나이 많은 시누이 셋이면 시어머니가 세 명 더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그 집 남동생 장가가기 힘들겠다고 혀를 찼다. 나 역시 그 말에 반박할 자신은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태어난 남동생은 내가 스무 살 일때 어린이집에 들어갔고, 결혼할 무렵에는 초등학생이었으니 거의 아들뻘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누가 알까. 그럴 마음은 없지만 막상 아들같은 남동생을 장가보내려면 심술이 날지도.     

실제로 우리 세 자매는 남동생을 아들처럼 돌보았다. 중년에 이른 부모님이  한창 이런저런 모임에 바쁜 탓이었다. 할 일이 많다고 투덜댔지만 고물대는 작은 생명체가 말 할 수 없이 예쁘기도 했다.

인원이 많으니 돌봄도 나름 체계적이었다. 첫째 누나는 영화, 음악, 공연 등 문화생활 및 고민 상담, 둘째인 나는 읽기와 말하기, 독서와 무한 사랑, 셋째는 놀이와 음식, 재우기와 싸움을 담당했다. 특히 셋째는 “내가 막내였는데 저 녀석이 태어나 자리를 뺏겼다.” 고 텃세를 부리며 간간이 치열한 남매 싸움의 경험을 제공했다. 이 정도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성장환경 아닌가.      


그럼에도 우리는 늘 남동생에게 옅은 미안함을 품고 있다. (어쩌면 셋째는 아닐 수도^^) 딸만 있는 집안의 늦둥이 아들로 귀하게 자랐으니 저밖에 모를 것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동생은 칠 남매 중 장남인 아빠의 아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손 노릇을 하느라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유독 아들에 집착하던 엄마에게 아들이자 때론 남편 대신의 역할을 해야 했다. 엄마가 셋째를 낳던 날, 또 딸인 걸 알고 미역국도 안 먹고 펑펑 울자 아빠가 시내에 나가 엄마와 외할머니 시계를 사서 선물했다거나 내가 아들로 바뀌는 꿈을 꾼 엄마가 자고 있던 내 팬티 안을 더듬어 봤다는 등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구구단처럼 외고 있는 이야기이다.

아빠가 늦게 들어와도, 부부싸움을 해도 원인을 자신의 아들 없음으로 귀결시키던 엄마의 삶은 남동생 이전과 이후로 뚜렷하게 나뉘었다. “니네 셋 다 합쳐봐야 내 아들 하나만 못하다.” 며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해하던 엄마의 남아선호 사상에 우리 세 자매가 내내 결핍을 느꼈다면 남동생은 반대로 애정 과잉의 추를 매달고 산 셈이었다. 그런 동생의 혼삿길을, 아니 연애길을 막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암, 그렇고말고.

“동생아, 너한테 누나들은 없는 사람이다. 알지? 혹~시 여친이 누나 있냐고 물으면 없다 그래, 외동이라고. 알았지? 들키면 다 외국 가서 평생 만날 일 없다 그러던가, 죽었다 그러던가ㅋㅋㅋ”

우리는 남동생이 여자친구를 사귈 나이가 되면서부터 장난처럼 그런 말을 했다. 장난이었지만 진심이 깔린 말이었다.


다행히 몇 번의 연애 끝에 동생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짝을 찾았다. 누나가 셋이나 되는 걸 알고도 끄떡없는, 오히려 시시때때로 세 누나를 알뜰살뜰 챙기며 여지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주책마저 웃으며 받아내는 초사이언에 버금가는 정신력을 지닌 짝이다. 그걸 알기에 우리는 예비 올케를 보면 고마움을 담아 “미안해요.”를 먼저 외친다.

“나이 많은 누나들이라 미안, 셋이나 되어서 미안!! 죽으까? 확, 죽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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