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기억 속 한국전쟁
Hi , Writer Ein!
우리 아인 작가의 글
잊을 수 없는 잊혀진전쟁 Korea war를 너무 감명 깊게 읽었다.
잊힌 전쟁이라고 외국인들이 말들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잊으려 해도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상처와 고통을 준 전쟁이었다. 일제핍박에서 겨우 해방이 되어 정신도 가다듬기 전에 공산국동맹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서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 도 유엔이라는 국제기구가 발족된 지 처음으로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코리아라는 잘 알지도 못하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작은 나라를 공산주의로로부터 지키겠다고 한걸음에 달려와 목숨을 걸고 싸워준 덕택에 이 나라가 공산국으로부터 지켜질 수 있었지.
그래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묘지라는것이 생겨서 전쟁당시 희생된 영령들이 잠들고 있지. 그때 전쟁 시에 호주군의 활약도 대단했지. 우리 아인이가 밝혔듯이 다행히도 제공권을 유엔군이 장악하여 미국의 F86세이버라는(한국사람들은 너무 빠른 비행기라 쌕쌕이라고 불렀지.) 전투기가 떴다 하면 공산국군인들이 벌벌 떨었지. 낮에는 전투기가 무서워서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밀물듯이 밀고 내려오는 인해전술이라는 공법을 썼단다. 아쉽게 할아버지가 어디 가야 해서 나중에 또쓰마. 아인아 넌 충분히 훌륭한 작가다. 너무 대견하다. 후편은 할배가 갔다 와서 쓰마. 안녕!
다시 안녕!
그 전쟁으로 한국은 경상남도의 일부를 제외한 모든 곳이 폭격을 받아 산과 들이타고 집들이 불에 타고 무너져서 폐허가 되다시피 했지. 유엔군의 엄청난 비행기 폭격과 공격으로 반격하여 북한의 북쪽 끝인 압록강까지 쳐서 올라가서 잠시(대강 3개월) 이북의 모든 지역이 자유의 땅이 되었다가 중국이 전쟁에 가담하여 엄청 많은 군인들을 투입시켜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유엔군이 또다시 후퇴를 하게 되면서 당시에 공산주의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 공산주의의 악랄하고 무서운 억압정치를 피하여 고향과 집을 버리고 꼭 필요한 옷기지와 먹을 것을 챙겨서 급히 집을 나와 유엔군을 따라서 남으로 남으로 피난을 내려왔지. 유엔군이 후퇴를 시작한때가 1951년 1월 4일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날을 1ㆍ4 후퇴라고 부르지. 그 시기는 한국의 가장 추운 겨울철이었지 그때 할배 나이가 5살 정도 되었을 땐데 할배가살던 시골 고향집에도 피난민들이 너무 많이 밀려들어와서 조금이라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던지 방이면 방 마루, 부엌, 살림살이를 모아두는 헛간이라고 부르는 장소며 하다못해 소들이 있는 외양간까지 발 붙일 틈도 없이 빼꼼하게 들이차서 밤에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 소변을 보고 오면 다시 누울 곳이 없어져서 울고불고했었지.
그때에는 먹을 것도 없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네 것 내 것 없이 먹었지. 우리 집에서 기르던 소 2마리와 돼지 몇 마리 꽤 많은 닭도 피난민들이 다 잡아먹었지. 피난민들이 소를 산으로 끌고 가서 죽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단다. 일사후퇴 때는 할배가 다섯 살 어릴 때였는데도 그때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구나. 그렇게 지내다가 2년쯤 후 1953년 7월쯤에. 휴전이 되었는데 그 휴전이 되기 전에 서로가 조금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려고 치열한 공격과 방어로 엄청난 포격이 있었지.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아버지 등에 업혀서 집뒤쪽 낮은 구릉에 가면 유엔군의 쌕쌕이 몇 대가 굉음을 내면서 낮게 떠서 머리 위로 날아가다가 조금 있으면 엄청난 폭발음을 내면서 엄청난 불길이 온산을 태우는 광경도 무서워서 아버지 등에 얼굴을 박고 보곤 했지. 산골짜기에 가면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흙으로 덮지도 않은 상태로 나뒹굴고 있는 끔찍한 모습도 봤단다. 그렇게 해서 휴전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아인이가 밝혔듯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란다. 우리나라가 약해지고 국제적으로 소외당하면. 언제 또다시 이북의 공산당이 쳐 내려올 수도 있는 상태에 있는 거지. 그래서 남한과 이북이 서로 더 큰 힘을 갖기 위해서 국내적으로나 국외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 서로에게 힘을 과시하려고 하고 있지. 이북이 국민들이 굶던지 고생을 하던지 상관 않고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정도만 해가면서 핵을 개발하고 핵무기를 만든 것도 다 남한이나 자유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에 지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고, 반면에 남한은 유엔의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 군사무기를 개발하고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볼 수 있지. 또 경제적으로 부흥하여 나라를 대내외적으로 무시 못하는 강한 나라로 하고 국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애국심을 고취하려고 하는 목적도 있다고 해야겠지. 다행히 한국은 경제, 문화, 기술. 과학, 의술, 스포츠 등등 분야에서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했지, 이북과는 게임이 안 될 정도로 발전했지. 거기에 또 자랑스러운 것은 육이오라는 어렵고 힘들 때 목숨을 바쳐가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먼 추운 곳까지 와서 싸워준 고마운 세계 각국의 유엔군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70년이 넘도록 고마움을 전하고 있고 살아있는 세계 육이오 참전용사들을 찾아내어 도움을 주고 감사함을 전하며 매년마다 살아있는 육이오 참전용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감사함을 전하고 상을 주고 있지.
한국을 다시 방문한 참전용사들은 하나같이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한국에 감사함을 표하고 육이오 때의 기억으로는 한국이 도저히 재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한국을 보고는 너무나 발전된. 모습에 감탄하며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 오히려 한국에 감사함을 갖고 있지. 이런 나라한국을 너희들은 비록 멀리 떨어져 외국에 살고 있지만 자랑스럽게 여기고 고국을 더욱. 자랑스럽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여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기를 할아버지는 바라고 있지. 아니 너희들 꾸러기는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고 믿고 응원하고 있단다.
긴 글 별로 잘 쓰지도 못한 글을 읽느라 고생했다.
추신:지금도 한국의 초청으로 한국에 오는 외국 참전용사들이 부산에 있는 유에군묘지를 방운하여 동로들의 넋을 기리고 잘 꾸며지고 잘 관리가 되고 있는 묘지를 보고 자신도 죽으면 이곳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을 하여 실제로 자신들의 조국고향을 버리고 부산 유에군묘지에 묻힌 참전용사들이 많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