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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plica Oct 19. 2020

노동의 의미

하루의 팔 할을 보내는 그곳에서 찾은 두 가지 의미에 관하여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회사를 다닐 것인가 말 것인가?


좀 헛되고 허망한 가설이지만 지인들과 꼭 한 번쯤 다뤄보는 주제다. 요즘 로또 1등 수령금이면 월급은 필수다 같은 극사실주의 디테일들 다 제한다 치고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여유로운 부가 전제되었을 때 회사를 다니고 내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니다가 이 질문의 핵심이다. 그리고 내 대답은 예스, 회사에 다닌다- 다. 불과 2년 전쯤으로만 돌아가도 다른 답을 골랐을지 모르겠다. 직장생활 10년 차. 그 속에서도 참 많은 성장과 아픔, 변화의 드라마를 쓴 것 같다. 길지 않은 인생 가급적 좋은 것만 보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긍정적인 생각들만 하다 가고 싶기에 앞의 전제들의 정확히 반대 상황들을 마주치기 딱 좋은, 오피스라는 공간을 최대한 회피하며 사는 것도 사실 괜찮은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모두가 일에 미쳐 살 필요도 없고 삶의 방향은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풍성하단 것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십 대 지금의 나에게 내린 결론은, 난 일이 필요하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그럼에도 좋다는 것이다. 노동은 언제나 치열하고 대부분 치사한 상황을 수반하지만 일면 동시에 어딘가 숭고하단 결론에 이른다.


내게 노동의 순기능은 삶의 균형감 그리고 제도화된 성취감의 반복적인 획득을 통한 자기 존재감 체크-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약간 경영학 수업 조직행동론 챕터 3쯤 나올 것 같은 다소 경직된 화두 같지만 뜯어보면 뭐 별 대단한 내용도 아니다. 매일 살아내고 있는 우리 일상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는 것일 뿐.





#노동의 의미 1/  규칙적인 루틴이 주는 삶의 균형감


시간 그리고 에너지를 마음껏 분배할 수 있는 무한정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걸 야물딱지게 잘 쓰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내일 할 일도 오늘부터 미루고 싶어 지는 나란 사람은 특히나 이런 자유와 방종 사이에 쉽게 선을 잃는다. 쨌든 정해진 업무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일련의 스케줄에 따라 휴식과 자유가 주어지는 직장인의 삶은 뭐 좀 서글프긴 하지만 그래서 일과 일상의 구분이 확실하다. 자유롭게 시간을 쓰고 의지대로 노는 것에 익숙했던 사회초년생 시절엔 무조건 오래, 많이, 길게 노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제한을 동반한 휴식이 훨씬 달고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하면 변태 같이 들리려나. 직장생활이 무료 봉사도 아니고 차피 월급이라는 큰 대의적 수단도 있으니 마음가짐을 약간 비틀어 더 잘 쉬고 더 잘 놀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며칠만 황금연휴를 보내도 올빼미 습관이 튀어나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또 낮잠을 자고 하릴없이 뒹구는 일상을 반복하게 되는데 휴식의 순기능도 물론 있다만 일상 전체가 이런 템포로 처지는 것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영원히 바뀔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새벽형 인간의 DNA도 출퇴근이 일상에 인이 배니 가끔은 쉬는 날도 오전에 일어나 하루를 꽉 채워가는 즐거움도 알아간다. 오전에 맑은 에너지와 정신으로 집 정리를 하는 즐거움, 몇 가지 투두리스트를 착착 해냈을 때의 소소한 뿌듯함, 노을이 지고 해가 내리는 과정을 천천히 음미하는 감성 같은 것들. 치열한 오피스에서의 9 to 6, 그 반복이 없었다면 알아채기 쉽지 않은 발견이었을 것이다. 규칙적인 월급과 사회적 소속감 모두 좋다지만 일상에 있어 적절한 수위의 업무량, 그 긴장과 스트레스는 삶에 건강한 긴장을 준다. ‘적절한'의 정도와 깊이에 논점이 또 있을 테지만 너무 노동을 부정적인 의미로만 볼 필요 없다는 생각.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름의 긍정적인 포인트를 하나 둘 주워 가며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버티고 견디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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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삶에 있어 루틴이란 존재는 그 의미가 크다. 직장인 3년 차 즈음엔 행복에 대한 진짜 의미 찾기에 몰두했던 터라(아마도 가장 불행해지기 쉬운 연차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관련된 책들을 많이 팠는데 그중 이런 내용들이 있었다. 삶에 아주 작고 사소한 루틴을 세우고 이를 반복하며 얻는 행복에 대한 중요성 같은 것들. 소소하지만 잦은 행복의 빈도, 그 중요성에 대해 꽤나 깊은 공감을 했었는데 직장생활의 의미 중 하나는 이런 루틴을 반강제적으로 만들어준다는데 있지 않을까. 사실 업무시간 대부분의 주권은 사측에 있으므로 대개 남이 정한 가이드에 따르는 형국이긴 하나 그 안에서도 소소한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 작은 여유들을 운용해볼 수 있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나는 샷 추가한 아이스 라떼로 언제나의 아침을 연다. 처음엔 응당 졸려서 먹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침을 여는 하나의 작은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회사가 바뀌어도 사옥이 바뀌어도 카페만 달라질 뿐, 샷 추가한 라떼를 마시며 하루 업무를 시작하기 전 숨을 고르는 그 시간이 내겐 매우 소중하다. 평소엔 좀처럼 깨지 않는 잠을 쫓는 데 사용하는 노동 음료지만 유난히도 커피가 땡기는 날은 얼른 출근해서 커피 마시고 싶다, 로 생각이 치환되면서 아침 시간의 활기를 얻기도 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커피빈 바닐라 라떼를 마시는 개인적인 전통이 있는데 회사에서도 가끔 이를 실현하며 나른한 오후와 날씨를 위로하기도 한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루틴이 존재하고 또 그 루틴을 따르는 내가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다. 나의 의지대로 흘러가는 일이 거의 없는 오피스 라이프 중간중간마다 주도권을 가지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식적 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시간의 구획을 나누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쁜 업무 중간중간 하루의 의미를 나눠주는 구획을 온전히 나의 주도로 구분하고 이를 통해 재충전을 하는 개념이다. 정작 일을 하다 보면 규칙성은커녕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만 이러한 시간의 구획 그 개념을 인지하고 또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다.



아주 작고 소소한 루틴 하나로도 같은 시간은 다른 밀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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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나의 오피스 루틴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한 두 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떠오른다면(매일 마시는 나의 라떼샷추가처럼) 놀랍게도 그것이 나의 루틴인 것이다. 내일부터는 편의점을 한 번 들러도, 바람 쐬러 건물 옥상을 잠깐 나가도 이것이 나의 소중한 오피스 루틴이란 생각을 지고 나가보는 건 어떨까. 똑같은 열량의 작은 행위 하나라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작은 루틴도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는 사람은 설마 이게? 싶은 아주 작고 사소한 행동들부터 관찰해보면 좋다. 어제 입사한 신입사원이 아닌 이상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자기만의 작은 행위 그리고 거기서 얻는 위안이 있을 테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없다면 내일 하루는 출근길 그리고 퇴근길까지 최대한 의식적으로 나의 하루를 관찰해보자. 셀프로 직장인 브이로그를 찍는 느낌으로 하루를 곱씹다 보면 루틴이 정말 없다 한들, 이런 걸 루틴 삼아 보면 좋겠다 싶은 틈이 보일 것이다. 거창하지도 큰 에너지가 들지 않는 것일수록 꼼꼼하게 새겨 두자. 그 별 것 아닌 시간들이 가진 무게를 아는 만큼, 뻔한 일상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올 테니-








#노동의 의미 2/  자유의지와 성취감을 등가교환하는 곳


두 번째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정도나 찬반이 약간 갈릴 수 있겠다. 스스로도 깨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개념인데 돈을 벌고 생계를 이어간다는 목적 외에도 오피스는 사회적 성취감을 제공한단 차원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상대적으로 저연차 땐 이 맥락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같다. 여기서 말하는 성취감은 자기 계발서 타이틀이나 성공한 CEO 좌담회에 나올 법한 그런 거대담론이 아니다. 큰 프로젝트를 이끌어 수익을 내고 큰 자리에서 여러 사람 위에 빛나는 뭐 그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란 소리다. 스케줄러를 빼곡히 채운 보고 일정이나 이번 분기에 내게 떨어진 (대개는 받고 나서 그닥 기쁘지 않은) 프로젝트, 외에도 조직에서 내게 부여한 자잘한 테스크들 말이다. 신입사원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주어진 일들을 진지하고 심지어 감사하게 여기며 정말 내 일처럼 임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봤지만 감히 다수는 아닐 것이라 단정을 하고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회사에서의 성취감이란 화두는 크게 두 가지 말로에 닿는다. 이 세 글자에 기대와 가치부여를 너무 거창하게 해 버린 뒤 스스로를 갈아 넣으며 몰입하다 언젠가 현실은 그렇지가 않는구나를 깨달아 버리는 것이 첫 번째 경우다. 어쩌면 사회가 주입한 대로 그간 배운 모든 것을 바르게 실천한 모범적인 사례라고도 볼 수 있는데 서글프게도 그렇게 스스로를 이입하고 몰입한 것에 비례해 후폭풍이 심하게 찾아온다. 회사가 꼭 노력한 만큼 공평하게 평가나 성취감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배신감도 크고 무엇보다 내 젊음과 자유의 팔 할을 내다 바친, 내가 좋아했던 곳이 이런 곳이었다니 싶은 일말의 배신감은 연애감정 못지않게 날카로운 것이어서 소위 말하는 내상이 크게 오기 마련이다. 반대로 무조건적인 반골 마인드로 어떻게든 회사가 주입하려는 방향성의 반대로 의심의 칼날을 세우고 일을 잘, 이 아닌 적당히 하다 가는데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이 역시 한계점을 맞는다. 태생이 월급 루팡에 최적화되어 체질적으로 이 생활이 너무도 맞다면(실제로도 그들은 분명 존재한다) 뭐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는데 대다수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성취가 아예 없는 오피스 라이프에서도 번아웃을 맞는다. 쨌든 하루의 대다수를 보내는 곳이지 않는가. 눈뜨자마자 회사로 가 많게는 세 끼를 그곳에서 해결하고 가족보다 더 긴 시간을 동료들과 보낸다. 무작정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고 와야지 싶은 보신적인 마인드는 또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일상을 잠식한다. 결국엔 투입한 만큼 그 어떤 형태로도 아웃풋이 보여야 다음 동력을 얻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비선형적 구조로 위 두 가지 경험을 모두 지나온 것 같다. 저연차 때는 전자에 훨씬 더 몰입하여 이 세상은 거짓이었다며 지금 돌아보면 좀 귀여운 배신감에 치를 떤 적도 있었고 그 부작용으로 돈 받은 만큼만 하고 갈 거야를 주문처럼 외고 다닌 적도 있었다. 당연히 둘 다 해답이 아니었다. 작금에 내린 결론은 인생의 행복을 바라보는 나의 인생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에서의 정성적인 가치는 어쨌든 일을 하는 나에 대한 성취감이고 그 성취감의 성격은 비즈니스 매거진에 실릴 만큼 거창할 일도, 승진이나 성과급 같이 타인의 승인에 의해 주어지는 가시적인 성과일 필요도 일도 없다. 성취감의 정의를 책에서 배운 대로 크고 무겁게, 꼭 타인의 인정을 기반으로 설정할수록 평범한 오피스 라이프와의 갭 차이로 인해 우울감이 온다. 또 모두가 그렇게 회사를 다니고 있지도 않고 말이다. 조직이란 또 이런 지점에 장점이 있지 않은가. 내가 오늘 당장 회사를 못 나가도 공장은 돌아가고 내가 저지른 약간은 치명적인 실수에도 누군가의 백업으로 이번 분기의 썸은 맞춰 지기 마련이다. 혼자서 너무 진지하게 혹은 욕심껏 짐을 지려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고 오늘 하루를 채우는 일들의 소소한 가치를 돌아보면 어떨까. 며칠 밤을 불태운 보고가 큰 문제없이 잘 끝난 것에 대한 칭찬을 꼭 나의 상사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내려주는 것, 조직에서 실은 누구도 큰 기대나 관심 없던 작은 프로젝트지만 유난히 내적인 만족감이 높았던 일을 하고 있다면 그 가중치를 나라도 높여주는 것, 월급 주는 사람의 눈엔 마냥 시시덕거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오피스 안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과의 교감은 동창들이 주는 그것과는 또 다르다는 감동에서 오는 행복감 같은 것들. 성취 값을 이렇게 작고 빈번하게 설정해두면 일주일의 회사생활 동안 꽤 마음에 드는 순간들이 분명 생겨난다. 이 날 좋은 날 나의 시간과 자유의지를 투입한 만큼의 성취감을 주워 올 수 있는 곳. 월급과 생계도 책임져주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구체화시켜주는 곳. 관점을 약간 틀어보면 오피스, 그 안에서의 노동이 주는 의미는 이렇듯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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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과 신입사원, 저연차와 이직자로서의 상황과 마음이 모두 다르듯 이 노동의 의미는 또 언젠가 태를 달리할 것이다. 더 겸손하고 자잘해질 수도, 연차와 자리에 맞게 보다 진지하고 엄숙한 방향이 될지 결과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회사를 얼마나 다닐지, 내게 노동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결코 알 수 없어 즐거운, 현재 나의 노동의 의미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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