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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plica Oct 19. 2020

버티기의 기술 1/셀프 포지셔닝

오피스 지형도에 나를 어떤 축으로 포지셔닝할지에 대한 자기 주도적 깨달음




쿨하게 일을 취미처럼 해보라는 화두를 던졌다만 실은 좀처럼 쉽지 않은 퀘스트임은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견디는 스킬들을 여전히 연마 중이다. 아직 업데이트 패치를 더해가고 있는 작은 팁이지만 나와 비슷한 캐릭터와 고민점을 가진 이들을 위해 공유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번 챕터에서의 직장생활 팁은 교보문고 경영/경제 란에 소개될 법한 성공과 야망을 두루 갖춘 멋진 비즈니스 맨들을 위한 거창한 솔루션이 아닌 가진 욕망과 현실 사이에 고군분투하며 그럼에도 하루를 잘 견뎌보려 방황하고 노력하는 이들을 위함 임을 사전에 밝힌다. 연차와 경력 상관없이 일단 무조건 가진 열정 다 쏟아붓고 백 퍼센트를 위해 돌진하는 분들을 위한 처세술이 아니니 그런 분들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셀프 포지셔닝: 스스로를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찰


일 뿐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 생활인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포지셔닝이다. 주량, 회식 같은 알콜 라이프에도 직결되며 야근하는 이미지, 만만해 보이는 애, 사생활 있어 보이는 추문 등등 이건 뭐 그냥 직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간관계 역학이 다 서로의 포지셔닝의 분배와 교집합, 충돌 이런 데서 오는 거라 봐도 무방하다. 근데 이 포지셔닝 작업이 또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지라 연차가 낮고 경험이 적을수록 너무 못해서 탈이 나거나 아님 너무 과해서 자기 앞길을 셀프로 트위스트 하는 경우들이 생겨난다. 마케팅 수업에서는 제품을 팔 때 여러 가지 기준 축으로 셀링 포인트를 정하라 조언하는데 내가 생각했을 때 이 직장 내 포지셔닝은 딱 두 가지 축이면 되는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것 그리고 내가 죽어도 못하겠는 것.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직장 내에서의 자기 자아를 꾸려내 보면 좀 더 그림이 쉬워진다. (어디까지나 직장 내에서의 캐릭터다. 이걸 또 진짜 나와 분간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근본을 알 수 없는 모범생 컴플렉스와 뭐든지 잘 한단 피드백이 기본값으로 설정된 인정 욕구를 지병으로 앓고 있던 사회생활 초창기엔 이런 불순한 발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곳은 사회적 나를 규정해주며 자아를 실현하고 심지어 월급까지 받고 다니는 성스러운 일터가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주입식 판타지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싫어도 싫은 티 내면 죽는 줄 알았고 시킨 일을 기대만큼 못하면 창가에 선인장까지 내 욕을 하는 것 같은 자괴감에 빠졌으며 내 인생에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가 뱉은 나에 대한 평가 하나에 마음이 쓰여 잠도 안 오던 시절들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했다곤 솔직히 자신할 수 없지만 인생의 경중을 훨씬 현실적으로 잴 수 있는 나이와 연차가 되었으므로 직장 내에서 내가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 영역 그리고 이를 통한 사회인으로서의 캐릭터 정의에 보다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잘하는 것은 그게 어떤 영역이든 악착같이 지켜내야 할 나의 직장 내 존재 이유, 최고 장점이라 칭하자. 사회성에 특출 난 강점이 있는 캐릭터라면 여기저기 관계로 모든 걸 다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이를 발전시켜 나가면 되고 정말로 일머리 똑똑하고 사리분별에 능통한 타입이라면 어떤 일을 맡든 누가 봐도 군소리 못 달게 일을 똑 부러지게 해내는 것이다. 성실이 무기라면 남이 보든 보지 않든 그걸 심각할 정도로 우직하게 보여주어 명실상부 이 건물의 성실맨 포지셔닝을 취하고 이상하게 위든 아래든 상대가 나만 보면 속 이야길 막 털어놓으면서 기대고 의지하고 싶어 지는 인간적 매력을 가졌다면 그곳이 돈 버는 직장이라 한들 나의 제1 장점으로 밀고 나가면 된다. 제2, 3의 가치는 조금 타협을 해도 상관없는데 내가 이 포지셔닝 싸움에서 가져가고자 하는 1의 가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성을 깨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매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걸 인정하고 공감하는 순간이 온다. 그게 업무적 역량과 꼭 직결될 필요도 없다. 회사 생활 전반에 내가 일등이 될 수 있는 분야를 빨리 캐치하고 파악하여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스스로 정한 영역의 범접불가 아이콘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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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는다의 영역 역시 굳건히 쌓아 나가는 것이다. 돈 주는 직장이라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애저녁에 페이지를 닫았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곧 죽어도 그렇게는 못 사는 나와 같은 인간들은 이 두 번째 축을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그러나 단단하게 쌓아갈 필요가 있다. 너무 처음부터 다이렉트로 전 이런 건 죽어도 못해요, 시키지 마세요, 너무 싫다니까요, 자꾸 이럼 나가버릴 거에요의 직설화법을 내뱉어서는 물론 안되고(포지셔닝 작업은 직장 내 막가파와 구분되어야 한다) 중불에 발렌타인 초콜렛을 녹이듯 아주 천천히 간접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다져나가 종국엔 거대하고 신성한 하나의 명제로 쌓아가는 것이 포인트다. 그래서 직속 상사뿐 아니라 동료, 후배들까지도 아주 자연스러운 페이스로 그래 쟤는 저건 진짜 싫어하지 하는 간접적 공감대를 형성, 나의 캐릭터 중 일부로 흡수될 수 있도록 마감 작업까지 꼼꼼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잘 쌓아 두고 나면 적어도 직장에서 내가 곧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비공식적 면죄부가 생겨나는데 이것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력하다. 조직이 수평적이고 융화적일수록 되도록 그 싫어하는 한 가지를 내게 강요하지 않으려 할 테고 운 나쁘게 룰렛이 나를 향했다 해도 그에 고통받고 싫어할 나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기에 많게는 도움을 받을 수도, 최소한 저 아이가 저걸 하느라 고생하겠구나 싶은 공감대라도 확보할 수 있다. 포지셔닝 작업 없이는 대개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으로 이 죽기보다 싫은 일을, 심지어 꽤 빈번하게 쳐내게 되는데 그걸 혼자 울면서 견디는 감정보단 최소 조직 안에서의 이해를 바탕으로 해내는 그림이 스스로에게도 위안이 되지 않는가. 애초에 타고나길 둥글둥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사람이라면 뭐 너무 축복드리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캐릭터라면 이 성스러운 영역을 다져나감으로써 회사를 다니는 동안 진짜 죽기보다 싫은 하나쯤을 하지 않을 권리를 획득하는 것의 감동, 그 깊이를 알 것이라 믿는다.



고객에게 팔 상품뿐 아니라 스스로를 어떤 축에 포지셔닝하느냐가 오피스 생존의 중요한 Key가 된다



앞서 이야기 한 최장점의 축도 어찌 보면 이 두 번째 축을 견고히 하기 위한 쌍방의 에너지로서 존재한다고나 할까. 누구보다 압도적으로 잘하고 인정받는 내용이 없는데 건들지 마시라니까요 하는 두 번째 축을 보장받기란 쉽지 않다. 쨌든 월급을 받고 노동력을 교환하는 프로의 세계에선 나의 가치가 긍정적으로 먼저 발현이 되어야 그다음의 배려와 캐릭터도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이 두 번째 파트를 다져 나갈 때 상사는 물론이요 동료들마저 뭐야 얘는, 그럼 나는? 하는 질투심과 적대감 이런 것들이 생겨나기 마련인데 그런 타이밍에 나의 특장점을 중간중간 또 발사해주면 내가 굳이 설명하거나 변호하지 않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한 타당성의 밸런스를 맞춰 주기도 한다. 욕하고 싶다가도 에휴 그래 쟤는 그래도 저거 하난 잘하니까, 저것만 조심하면 그래도 뭐, 더 나아가면 쟨 원래 저런 얘니까- 하는 캐릭터 자립의 단계까지 이르며 말이다. 반면 앞의 최장점 파트에서 발군의 능력과 대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다면 두 번째 익스큐즈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획득될 수 있다. 잘하는 것과 죽어도 못하겠는 것의 균형점이 거기에 있고 그 항목들을 어떤 것으로 채웠는지 그리고 둘의 비중과 순서를 어디에 놓는지에 따라 나의 직장 내 캐릭터가 규정되게 된다. 그래서 포지셔닝 작업은 중요하다.


 

지금 이 오피스에 당신이 놓여있는 축은 과연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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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오피스 라이프를 돌아보면 은근 이 첫 번째 축의 조건, 그니까 뚜렷하게 잘하는 것 없이 정말 그냥 밋밋하고 개성 없는 사람들이 종종, 아니 솔직히 꽤나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럼 당연히 이 포지셔닝의 밸런스가 와르르 무너지고 그렇기에 회사에서 유독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는 이유가 된다. 또 이 직장이란 생태계 특성상 어떤 한 사람에 대한 정의와 평가는 대개 매우 사적이고 조직 바이 조직일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런 혼돈에 처해있을 때도 두 가지 면에서 놓고 보면 생각이 심플해진다. 저 사람이 잘하는 것 그리고 죽어도 잘 못하는 것. 심플한 구성이지만 함께 일을 해야 하거나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관계가 있다면 적을 규정하는 방법에서부터 해결의 키를 찾아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잘 지내고 싶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어프로치를, 이기고 싶다면 그 단점을 내 장점의 승부처로, 멀리하고 싶다면 두 지점에서 최대한 사각지대를 찾아 도피하는 방법 등으로 말이다. 또 스스로도 이 포지셔닝 맵의 구성과 비율만 현명하게 지키려 노력한다면 타인이 보는 나 역시 적어도 중간치 밸런스 정도는 유지할 줄 아는, 그래도 유용하고 쏠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여 한 번쯤은 이 셀프 포지셔닝 작업을 해보길 권한다.



나는 직장에서 무엇을 할 때 자신감 있고 즐거우며 그 결과치마저 좋은 사람인가?
내가 직장에서 목이 칼이 들어와도 하고 싶지 않고 되도록 영원히 피하고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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