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배와 꼰대의 기로에 선 우리들을 위한 작은 지침서
어느 시대든 문화와 트렌드 그리고 자본의 흐름 그 중심에 서는 세대가 있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밀레니얼들을 위한 제품, 서비스 그리고 트렌드가 대중문화와 시장의 주가 되는 사회임에 분명하다. 어떤 일을 하고 있냐에 따라 성격은 달라지겠지만 82-00년 사이에 태어났다는 이들을 논외로 치고 장사를 하거나 무언가를 기획하는 분야는 극히 적으리라 생각한다. 자기표현에 익숙하며 테크 활용에 능한 동시에 마음이 동하는 브랜드와 경험에 지갑을 열 줄 알며 SNS 소사이어티의 주류가 되는 그들의 존재감은 이들이 사원들로 포진해 있는 회사에서 더욱 강렬하다. 오죽했으면 ‘90년생이 온다’라는 제목의, 이를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의 머리와 마음 해례본이 꽤 장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겠는가. 어느 세대나 서로 간 이해 못할 갈등과 사회적인 문제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그 사이 어드매에 끼는 경험을 처음 하는 나로서는 그 느낌이 사뭇 새롭다고 해야 할까.
엄밀히 따지고 보면 나도 밀레니얼 세대다. 87년에 태어났으니 분류상으론 나 역시 밀레니얼 세대의 일부란 소리. 문제는 이들의 사전적 정의가 거의 20년에 걸쳐 광의로 분포되어 있다 보니 안에서도 층위가 다양하게 나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밀레니얼 세대는 앞자리 9자 생년으로 시작되는 영밀레니얼을 지칭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기껏해야 3-5년 정도의 차이. 사회 나와서는 그냥 친구 먹고도 남을 갭이지만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간극 사이에도 어떤 서글픔과 감정의 진공이 발생한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 하나로 한 세대를 규정하는 일반화는 좀 위험한 접근일 수 있겠다만 입사 후 조직 안에서 만난 이들 영밀레니얼들은 대체로 자기감정 그리고 부당함에 대한 표현이 솔직하고 분명했다. 업무란 것은 어찌 됐든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인데 모두가 알고 있듯 항상 최선의 선택지가 실행되는 곳도 아니며 대다수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없고 선명하게 서로 간 합의에 의해 즐겁게 진행되기 쉽지 않다. 일이란 그런 것이지 하고 어쨌든 방법을 찾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나, 낯간지럽지만 올드 밀레니얼 즈음에 걸려있는 입장에선 이런 후배들과 업무를 할 때 가끔씩 크고 작은 충격들을 받는다. 물론 그 생각의 큰 방향성엔 공감하는 바다. 나 역시 뒤에 가서 분노에 차 욕을 할 때도 있고 가끔 스트레스 너무 뻗치면 술 들이붓고 일갈을 할 때도 있다. 업무란 것이 내 개인의 의지대로 흘러가기 어렵기 마련이고 반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일상처럼 이어진다는 나름의 진리는 월급 받는 입장이라면 부장이나 사원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전제가 우리 세대엔 있다. 어린 밀레니얼 사원들은 뭐 각기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런 부당한 조직의 탑다운적 의사결정과 그 끝단에 본인들의 업무 에너지가 과도하게 사용되는 것에 불쾌한 감정을 꽤나 솔직히 토로하는 편이더라. 이걸 제가 왜? 이런 의사결정이 말이 되나요? 이거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등등. 충격의 포인트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말들을 저연차 사원이 뱉어서가 아닌 그 누구도 감히 입 밖에 내지 않던 당연한 속마음을 표현하는 지점에 있다고 본다. 정말로 이상한 궤변이면 그건 틀렸다고 그 자리에서 수정해줄 수 있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말로 표현하네 싶은 당혹감 앞에 딱히 내어줄 답변이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솔직한 속마음을 툭 하고 이야기하는 후배 앞에 회사에서 그런 말 하면 안 돼~ 하는 순간 젊은 꼰대행 급행열차에 오르는 것이고 난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하면 나 자신을 속이는 셈이 된다. 실타래처럼 풀어놓는 불만사항을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권한과 권력은 내게 없고 그렇다고 그 짐을 덜어주려 보모 노릇을 자처하는 것도 바보 같다. 한두 번이야 적당한 맞장구와 함께 넘어간다지만 상황이 반복되는 순간 은은한 외로움을 마주한다. 이게 바로 세대차이인가? 나도 이제 꼰대 반열에 오르는 건가? 싶은 낀 세대의 숙명, 낀 자들의 외로움 같은 거 말이다.
누구에게나 낀 세대의 경험이 존재한다. 라떼로 시작되는 자기 경험의 공유는 꼭 그 사람이 꼰대고 이상해서 뱉는 말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세상은 빨리 변하고 요구되는 역량도 다른 반면 인간은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고 지켜내도록 디자인된(심지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습관의 동물이다. 업무적 스킬, 역량이나 그 시점의 트렌드야 학습을 한다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일을 하고 정을 붙이는 과정들은 끝내 디지털라이즈 될 수 없는, 쨌든 관계의 역학 아니던가. 우리가 다루는 일과 처해진 환경이 제아무리 빠르게 4차 산업 비스끄무리한 복잡하고 알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더라도 얼굴 맞대고 일을 함께하는 인간적 영역의 룰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뀌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하여 벌써부터 종종 느끼는 이 세대 간의 간극- 학번의 앞자리가 바뀐 것도, 띠동갑 몇 번 두른 자식뻘의 어린 사원이 아닌 어쩌면 학교에서 스쳤을 수도 있고 회사 밖에서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를 또래지만 또래가 아닌 후배들을 보는 나의 감정 역시 혼돈스럽다. 그들이 했던 고민을 나 역시 했기에, 아니 실은 지금도 하고 있기에 마냥 참으라는 무책임한 말을 건넬 수도 없으며 홀로 모든 짐을 짊어진냥 위의 요구도 받아가며 아래 소원수리도 착착 흡수하는 그런 양면 스펀지 같은 아량과 덕을 쌓기 또한 어려운 것이다.
직장 내에선 유독 3의 법칙이 정확해서인지 이상하게 딱 3살 차이가 지는, 앞자리 9자를 달고 태어난 이 친구들을 여러 조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접한다. 선배들 대비 훨씬 높은 스펙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영밀레니얼들. 나 때도 취업 불황이다 스펙 전쟁이다 여전했지만 실제로도 잔혹한 인턴 시스템과 점점 좁아져 가는 채용시장을 보노라면 실제 나이로는 몇 살 차이 안나는 이 친구들의 심정과 온도도 십분 이해가 가는 면이다. 어느 필드에서 어떻게 회사생활 그리고 팀 생활을 시작하느냐도 굉장히 큰 변인이 되는데 요즘은 전통적인 산업군의 몸집 큰 기업들 몇을 제외하곤 모두 자유롭고 수평적인 서구식 조직문화를 지향한다. 팀장인 나와 중간관리자인 나와 신입사원인 나 모두 동등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일 적인 외 영역을 터치하지 않으며 각기 다른 업무 특성을 충분히 존중하며 그에 대한 책임조차 오롯이 지는 것. 문장으로 늘어놓고 보자면 으쌰 으쌰 상명 하달 팀 문화 혹은 도제식의 전 근대적인 조직문화 대비 참으로 선진적이며 매력적인 느낌이 난다. 장점도 분명하지만 그 속엔 두 가지 형태의 조직 문화가 피고 지는 세대적 교집합 혹은 애매하고 혼돈스런 오버랩 역시 존재하지 않을까.
첫 직장에선 요구받는 업무적 역량과 일하는 스타일은 매우 크리에이티브했으나 각 팀을 이루는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은 매우 전통적인 형태에 가까웠다. 서로의 개성과 스타일은 존중하되 일을 배울 때나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가는 과정은 팀 그리고 셀 단위로 일사불란 하게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 팀장님 그리고 셀장의 역할이 있고 단 둘이 일을 해도 선배와 후배의 일을 그때그때 나눠서 지고 결과물도 헤쳐 모아 만들어가는 방식 말이다. 업무적 특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업에서 경험이 전무한 신입사원이 어느 날 갑자기 프로젝트를 홀로 떼서 지고 갈 순 없는 일이니. 쨌든 전통적인 상하관계를 바탕으로 일을 배우는 경험은 돌이켜봤을 때 꽤 장점이 많았다. 그 일만 1n 년 넘게 한 베테랑 선배가 빨간펜 선생님처럼 나의 기획서를 첨삭해주시기도 했고(당시엔 그리 행복한 경험만은 아니었으나) 팀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까는 일 마저 연차 역순 정렬을 따랐으며(처음에 까는 게 그래도 좋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만) 실수를 했을 땐 따끔하게 혼이 나거나 날카로운 피드백을 듣기도 했다(역시 당시엔 아픔에만 민감해 상처도 받고 소매단도 좀 훔쳤다 만은). 그땐 이 모든 것이 사회생활의 아주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고 그리 행복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져도 응당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내가 딱히 겸손하고 온순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조직문화가 그러했고 모두가 회사에선 그렇게 자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팀과 조직에 따라 위의 과정들을 이젠 어느 정도 중간자의 입장에서 수행하게 되는데 기본적인 조직 구조가 전자보단 훨씬 수평적인 편이었다. 단순히 호칭이나 직급뿐 아니라 정녕 회사가 담당 개인의 의사와 판단을 굉장히 존중하는 분위기. 내가 신입사원이라서 내지 못할 의견도 없고 내가 꼭 팀장이어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어찌 보면 유토피아 같은 조직문화인 것이다. 그 안에 만났던 장점을 나 또한 십분 누렸지만 때로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어느 정도 커리어적 역량과 자기 캐릭터를 구축한 연차 즈음엔 이런 수평적인 문화가 굉장히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업무적 기본 스킬부터 다져가는 저연차의 입장에선 제한 없이 쏟아지는 자유와 소신의 기회가 때론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태나 분위기 차원에선 뭐 그렇다 쳐도 일단 일을 하려면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에게 하우투도 배우고 팁도 듣고 실수를 하면 교정도 받는 것이 모두 훗날을 위한 경험인데 쉽사리 그런 페어나 셀을 이루기 쉽지 않고 엮인다 한들 과하게 관리하는 순간 꼰대가 된다 라는 암묵적 마인드가 그 중요한 인터렉션을 가로막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네가 일을 그렇게 배웠다고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라면 뭐 또 할 말은 없다만 그렇게 회의실에서 혼나고 훌쩍이며 배우고 익혔던 크고 작은 생각의 방법 그리고 일을 대하는 태도들이 꽤 오랜 시간 나의 자양분이 되어준 것 역시 사실이니까. 각자 역량으로 시험을 통과하고 자격을 얻는 곳이 아닌, 쨌든 지금까지 사람과 사람이 합을 맞추며 성과를 내고 또 다음 프로젝트를 향해 나아가는 곳이 바로, 이 오피스니까.
하여 지금 막 낀 세대의 묘한 경험을 시작한 나의 돌파구나 어떤 방법론이 있냐면 그것도 아직이라고 대답하리. 효과가 어느 정도 검증된 클래식한 올드 스쿨 방식을 보다 요즘 화법으로 치환해보고 그 안에서 내가 과하고 부당하다 여겼던 값들을 제하고 사이에 느낀 또 다른 방향의 배움점들을 더해 천천히 적용해보는 수밖에. 나 역시 아직은 위를 대하고 맞추는 것이 아래 지시하고 역량을 끌어내는 것보다 익숙하기에 그런 중간자의 연습들을 해 나가는 중이다.
“윗사람 맞추는 건 쉬워. 아랫사람 하고 잘 지내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야”
입사 후 며칠 후였나, 회의실에 나를 불러 해주신 첫 팀장님의 이 한 마디는 10년을 차이로 두 번의 울림을 주었다. 십 년 전 신입 사원의 나는 이런 민주적이고 공평한 멘트를 건네주시는 분이 나의 리더인 점에 따스함과 감동을, 위로도 모실 분이 있지만 아래도 대할 분들이 꽤 많아진 올드 밀레니얼로 살아가는 오늘의 나에겐 그 짐과 무게 하지만 꼭 더해보고 싶은 희망 역시 가진 낀 세대로서의 공감을 말이다. 모두가 결국엔 한 시대의 꼰대가 된다. 다만 그 과정에 자기 신념과 주체성이 살아있는, 결국엔 위아래 할 것 없이 사람들과 즐겁게 주어진 그 일을 잘 해내는 그런 꼰대가 되었으면 한다. 인생뿐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잘 늙어갈 방법을,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그것도 꽤 치열하고 성실한 온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