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빌런이 될 것 인가 불친절한 일잘러가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꼬꼬마 저연차 시절엔 직급이 올라간단 의미를 더 많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 노련함과 탄탄한 커리어로만 해석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티끌같이 귀여운 인상률은 뭐 차치하더라도 회사에서 돈을 더 준단 것에 내포된 수많은 의미를 모르던 시절이다. 어릴 때 우러러보던 선배들은 뭔가 멋져 보였다. 사소한 컨펌 하나 스스로 낼 수 없는 처지에, 아니 심지어 뭘 어디까지 누구에게 컨펌받는 것이 적정한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도 흐릿했던 시절이라 고민을 토로하면 정답 자판기처럼 후루루 현답을 뱉어내는 그분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 때로는 부럽기도 했다. 팀장이든 임원이든 보고서를 들고 가면 빨간펜 선생님처럼 정답인지 아닌지와 통과인지 아닌지를 판결 내주는 그 자리가 말이다. 그분의 도장 꽝꽝을 못 받으면 나는 보고서를 다시 써야 했고 오늘 하루 더 야근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조직 내 리더의 자리는 아니나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나름 후배도 받아보고 중간에서 다양한 롤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그 시절 선배들의 역할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병아리였던 나의 눈에 법봉 든 판사처럼 느껴졌던 장(長)이라는 자리가 실은 책임이라는 무서운 날 위에 서있음을 의미했단 사실을 말이다. 소싯적엔 그들이 쥔 권한만 눈에 들어왔다면 반대편에 꽤나 묵직하게 들러붙어 있는 책임이란 사이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거운 책임이 있기에 권한도 쥐어 준 것이라 보면 순서가 맞을까. 자리가 올라갈수록 월급명세서에 0이 늘어가는 것은 더 큰 능력과 퍼포먼스에 대한 보상인 동시에 무거운 책임에 관한 대가였던 것이다.
때문인지 여러 타입으로 분화된 상사들을 만난다. 크게는 좋은 상사, 나쁜 상사 조금 더 잘게는 진짜 좋아서 좋은 상사와 실은 별론데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상사와 리얼로 나쁜 상사, 본심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캐릭터가 나빠 나쁘게 분류되는 상사로 나눌 수 있겠다. 각자 스타일에 잘 맞고 자기 커리어에 필요로 하는 좋은 상사의 상이란 모두 다를 것이다. 상사 인류 백과를 집필할 마음은 아니므로 오늘 이야기는 이 책임이란 봇짐을 진 그분들의 캐릭터 분석이란 작은 파트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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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좋은 사람 류로 분한 상사들이 일단 호감이고 가까이하고 싶어 진다. 항시 웃는 얼굴로 심한 말 안 하고 나의 자유와 직장 내 인권을 침해하거나 위계로 사람을 깔아뭉개는 일도 없으니 훨씬 인간적이고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데도 아니고 회사에서 무섭고 날카로운 상사 모시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더 논의할 가치도 없어 보일 수 있는데 문제는 좋상 2번째로 분류한, 속내는 그것이 아닌데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에게서 발생한다. 바꿔 말하면 본인이 진 책임 회피를 위해 마냥 좋은 사람 탈을 놓지 못하는 이들을 주의해야 한단 것이다. 진심으로 인성이 그러하고 태생이 친절해서 맘 여린 사람들 말고(사실 여기에도 ‘일은 잘 못하지만’이 붙는다면 난 사절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문제 해결보단 회색분자 포지셔닝으로 최대한 보수적으로만 행동하려는 사람들을 주의해야 한다. 결정하고 행동하며 성과를 내고 그 책임을 져야 할 자리의 사람이 그걸 하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조직 전체 1/n 타격감으로 분산되기 때문이다. 그 자리 앉으셨으니 다 짊어지시죠 같은 극단적인 전체 책임을 바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쁜 사람이 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며 본인이 정말 해야 할 일들을 방치하고 도망치며 웃는 얼굴로 자리만 지키는 이들에 대한 경보 같은 거랄까.
반면 얕게 알면 세상 쌀쌀맞고 성격 별로인 것 같아 보이는 사람 중 과정에선 약간의 상처를 동반하더라도 주어진 결과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뒤끝 없이 수긍하는 의외의 캐릭터들을 만나기도 한다. 즉 본인이 설정한 목표치와 방향에 관한 한 심지 있게 자기 길을 가고 벌어진 일에 대해서 깔끔히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물론 일하며 오가는 상처들이 얕지 않은 경우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기 행동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개개인의 일하는 스타일로 이해가 가능하단 이야기다. 일을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하는 사람도 있듯 주어진 책임을 다 한다면야 각자 업무 스타일까지 획일화될 필요는 없는 거니까. 비유를 상사에 했지만 책임이란 것이 꼭 어느 조직의 리더나 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므로 이 논리는 바로 옆 자리 동료들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책임회피를 위한 가면성 친절맨보단 조금 가시 돋았을지 언정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 하는 악역 캐릭터가 훨씬 낫다는 것이다.
하여 나 역시 오피스 안에서 맡아 연기하는 본인의 캐릭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좋은 캐릭터는 연기하기가 좋다. 웃으면 되고 친절하면 되고 긍정적인 화법으로 말을 맺으면 된다. 상대가 다소 황당한 주장을 해와도 아, 그러시군요 그럴 수 있죠 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고 긍정하고 보는 건 사실 영혼 없이 백 번도 더 뱉을 수 있다. 반면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 현명하게 악역을 소화하며 방법을 찾고 최선의 아웃풋을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 마음 다 같지 않고 심지어 조직까지 다르면 자기 이해관계만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허접하게 악역 캐릭터로 분했다간 평판마저 작살나고 소문만 더해질 뿐일 테니. 하여 유려하고 똑똑하게 악역을 소화하기란 어쩌면 직장생활 만렙 스킬 중 하나에 버금가는 것일지도. 소중한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해 우린 일이란 걸 하고 그 노동의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그 험난한 과정 속에 일이란 걸 원활히 잘, 해내기 위해 내 앞에 앉은 자의 선악을 가릴 줄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단순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갈라 친하게 지내자는 개념이 아니라 캐릭터를 파악할 줄 아는 눈과 조직의 분위기를 알고 움직일 줄 아는 눈치가 결국 일을 효율적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가르는 키가 될 것이다. 에덴동산에선 몰라도 오피스에선 선악과가 필요한 이유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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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기의 기술이란 타이틀을 걸었지만 실은 똘똘한 악역 소화법에 대한 하우투는 글쎄 나도 아직이다. 지금 단계에선 어떤 사람이 악을 품은 선인지, 종국엔 선이라 불릴 표면적 악인 지를 파악하고 검증하는 연습만 해도 버거운 단계 같다. 적어도 더 큰 책임과 무게를 지게 될 그 어떤 날엔 마땅히 져야 할 무게들을 가면 뒤에 숨어 외면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노라는 다짐 정도 아닐까.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행동을 어느 순간 답습하고 있는 못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케이스의 선악 캐릭터를 만나고 상대하는 실전 연습에 충실하려 한다. 악의 가면을 쓴 진짜 악이 될지 선의 가면 만을 겨우 연습하고 끝나버릴 내가 될지 훗날 이 페이지를 돌아봤을 때 적어도 이불만은 차지 않는 내가 되길 소망하며 글을 닫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