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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plica Oct 24. 2020

이 또한 한 편의 연극이었음을

무대 위에서의 감정과 몰입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만. 딱 거기까지만-




삼십 대의 직장생활, 각자의 오피스라는 다변적이고도 유기적인 공동체이자 고귀한 밥벌이를 몇 가지 문장들과 주관으로 규정한단 건 어쩌면 오만이자 찰나의 편견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러나, 앞서 논했던 모든 이야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확실한 직장인의 세팅값이 아닌가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이 또한 한 편의 연극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하루의 대부분, 누군가는 삶의 아주 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자의적 타의적 몰입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할 지라도 어디까지나 오피스는 오피스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곳이 내 삶의 전부란 생각에서 벗어나 타자화 시키는 작업이 원활한 직장생활, 나아가 행복하고 주체적인 삶에 있어 정말로 중요하단 이야기다. 역설적으로 어쩌면 가장 어려운 생각의 전환이기도 하고 그걸 능숙히 할 줄 알았으면 나 또한 회사일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손바닥 뒤집듯 일상에 영향을 받겠나 싶기도 하다. 그러므로 점점 더 그 몰입의 빈도와 무게를 조정해가는 연습을 통해 회사는 회사, 나는 나 둘의 관계가 독립적이고 공평한 관계로 컨트롤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 연습과 구분이 수월해질 때 우린 직장이 주는 월급과 사회적 인정, 그들이 나눠 둔 직급 체계 속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개체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내가 정한 삶의 가치에 따라 내 시간을 움직일 용기를 가지게 된다. 그 누구보다 강력한 모범생 증후군 DNA와 인정욕의 노예이자 사회 속 적당한 위치를 탐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욕망을 가진 사람 역시 나여서 어쩌면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걸고 있는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삶엔 여러 목표와 방향이 있지만 당장에 사표를 던지고 다른 길을 걷지 않는 한 적절한 타이밍에 주어지는 사회적 타이틀과 성공, 지위와 같은 단어로 대변되는 성취들은 역시나 인생에 중요한 지표다. 무조건적으로 그 시스템에 반하는 선택과 정신무장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고민과 가치 분배를 통해 내가 중심이 되는 행복한 하루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각자의 비중과 정도를 잘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연차가 거듭될수록 오피스 안에서의 9 to 6는 좀 더 뻑뻑하고 고된 형태로 굳어지기 쉬운 사회를 살고 있기에 나와 회사를 분리해보고 각자의 자리를 고민하는 작업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스스로의 인생에 뭐가 중요하고 또 어떤 일을 했을 때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지 모른 채로 건강마저 무시한 채 하루를 쳇바퀴처럼 가동하다 뒤늦게 후회하는 이들을 우린 꽤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지 않은가.  



내가 하는 일이 곧 내가 아니라는 분리감을 계속해서 연습해야 회사 안에서 얻는 상처와 좌절감, 업무적 실패를 내 인생 영역까지 끌고 들어가 함께 침전되는 세기의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이건 솔직히 나 역시도 여전히 쉽지 않은 영역임을 고백한다. 나는 하라는 일을 맡았을 뿐이고 (업무 분장이란 것을 누가 하는지 생각해보라) 심지어 열심히 했고 그 일은 성공 혹은 실패라는 두 가지의 옵션이 5:5로 적용될 뿐인데 조금 어그러지고 가끔 뭐 폭망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란 인간의 실패가 되거나 자질에 대한 의심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 사익 즉 돈을 좇는 회사의 프로젝트란 인간 하나가 홀로 성공시키기 어려운 만큼 혼자 망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근데 또 착실한 일개미들은 열심히 노력을 기울인 일이 조금이라도 실패의 프레임을 쓰면 자기 가치와 자기 인생까지 망한 것처럼 결부시키며 가슴을 치고 자괴감을 얻곤 한다. 가끔씩은 또 궁금하다. 실패의 기준은 대체 뭐란 말인가. 높은 자리의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똘똘하게 해낸 일은 아쉬운 일로, 의미 있는 업무적 도전은 가성비 떨어지는 일로 폄하되기 너무도 쉬운 곳이 회사가 아닌가. 반면 코드가 맞는 사이라거나 단순히 운이 좋은 경우 실은 별 거 아닌 작은 일도 대단히 유의미한 성과로 추켜세워지기도, 심지어 문제가 매우 많은데도 당장은 양자 간 그걸 모른 채 박수갈채를 주고받으며 마무리되는 일들도 허다하다. 회사가 잘 된 일을 오롯이 나의 것이라 칭해주지 않듯, 망한 일도 유대감을 가지고 회사와 나눠 보길 권장하는 바다.
 
 

오늘도 무대 위에서 참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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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이건 어디까지나 연극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극이 진행될 때는 맘껏 울고 웃고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월급을 받는 배우로서 우리의 사명이지만 막이 내린 뒤엔 그러지 않아도 좋다. 연극이 끝난 뒤엔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고 방구석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나 혼술을 해도 좋고 그냥 넷플릭스 틀어놓고 멍을 때려도, 생산성을 전혀 고려할 필요 없는 취미생활에 몰입해도 상관없다. 저녁에 마친 연극이 세상 사람 눈물 다 짜내는 각막 폭격 신파극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나 자신에게 가장 크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업무가 다소 가파르게 진행된다고 해서, 자주 엎어지고 꼬인다고 해서, 이렇게 진심으로 쥐어짜도 망하고 있단 기운마저 느껴진다고 해서 마음 한 켠에 또 셀프 반성 모드를 켜서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자고. 할 수 있는 소스들로 최선을 다했고 나의 인생은 이 일과 상관없이 그럼에도 순탄히 내 방식대로 잘 흘러갈 것이라고. 그렇게 오늘 밤은 나부터 오피스 인간의 기본값을 한 번 더 단단히 조여 본다. 내일의 출근을 또 그렇게 평범하게 준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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