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원수는 외나무다리가 아닌 직장에서 만난다 했던가
전생의 악연이나 원수는 외나무다리가 아닌 직장에서 만난다 했던가. 대한민국 인구 분포 전체를 놓고 보면 나름 비슷한 공통분모를 쉐어하며 표준 분포도 상의 유사성을 품은 이들이 분명하건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업무적 경험이나 스킬 못지않게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생생한 경험치를 쌓게 된다. 처음엔 어떻게 저런 류의 인간을 같은 오피스 지붕 아래 만날 수 있지 싶어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이 또한 인생의 경력을 쌓아가는 차원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 정규 교육 코스를 밟고 취업준비를 하는 나이 까지야 어느 정도 비슷한 표본의 또래 집단 안에서 관계를 맺지만 우리네 인생 울타리란 것이 그렇게 자그맣고 간단한 것은 또 아니니까. 여러 세대와 성향 그리고 조직생활 안에서 굳어진 캐릭터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는 이곳에서 오늘도 인물 도감을 업데이트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이해를 하려고 하려고 노력해도 좀처럼 상호교류가 쉽지 않은, 몇 가지 인물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보고자 한다. 관찰자인 나의 주관적인 시점이므로 전 지역 오피스 조직도 내 공통의 빌런이라고 까진 할 수 없겠으나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닌가. 퇴근을 해도 갑갑함이 내려가지 않아 죽을 맛인 당신 마음 한 구석에도 이런 자들의 잔상이 박혀 있을지!
#관찰일지 1.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지능의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대부분 빡센 채용과정을 거쳐 나름의 검증을 받고 시험대에 올라 선발된 이들일 거다. 맞은편 앉은 선배나 옆 팀의 대리나 동기 혹은 일하다 친해진 동료들이 말이다. 심지어 이들과의 관계성은 대부분 업무란 틀로 묶여 있다 보니 우리의 기대 속엔 표준화된 수준의 지적능력, 그러니까 업무를 이해하고 솔루션을 찾아 실행하는 그 과정 과정의 상식적인 지능 그리고 지식의 레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마케팅에서 이게 무슨 뜻이게? 지금 이 프로젝트의 디지털 솔루션에 대한 모범답안을 서술해봐 하는 식으로 아는 것과 업무의 정답을 1:1로 매칭 시킬 수는 당연히 없다. 일머리는 지능 지식으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조직 내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얼마나 똑똑하냐에 따라 갈리는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오피스 라이프 중 겪는 답답함과 골 때리는 전시 상황의 대부분이 이 간단한 지능 수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지능은 단순히 우리가 처해있는 비즈니스 상황에 대한 이해도나 솔루션의 퀄리티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정확하고 명료한 현상파악 그리고 이를 함께 헤쳐 나가야 할 사람과 분위기에 대한 공감, 업무 로드에 대한 시공간감과 우선순위의 경중을 따지는 감각 이 모든 것이 기본적인 지능 수준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회사에선 특히나 어떤 사람의 뾰족한 성질이나 에피소드가 구전되기 마련이지 대놓고 저 사람 멍청해, 지능이 낮은 것 같아 류의 다소 인신공격적인 평가를 내리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분명 적당히 교육과정을 밟아 어렵게 취업문을 뚫고 지금 내 옆자리에 앉아있을 거란 믿음과 신뢰가 있으니까. 하지만 본질을 잘 들여다보면 지금 일이 망가져가는 이유나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며 화병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 대부분은 못되고 나쁜 사람 보단 약간 덜 떨어지고 멍청한 사람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격이 안 맞거나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케미스트리의 영역은 어느 정도 돌파구 마련이 가능하다. 양보를 한다 거나 문제의 본질을 보고 다른 전략을 더할 여지가 있다. 아예 화끈하게 한 판 붙고 생태계 서열을 정리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조직적인 어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안을 바라보는 레벨이 현저히 다른 사람과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면 정말인지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 백날 말해도 내가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지(이해가 안 가니 당연 나의 리액션을 그저 성격이나 스타일로 치부할 확률이 높다. 하여 팩트를 말하는 것인데 까칠하거나 화가 났다는 식의 감정적인 해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대화 후에 우리가 무얼 해야 하는지 깨우쳤을 리 없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에 있어 업무능력을 가르는 핵심과도 같은 분위기 스캔 능력, 눈치의 영역도 실은 다 지능 수준에 기반을 둔다. 공감능력도 지능이란 이야기를 나는 정말 신뢰하는데 이해를 못하니까 공감을 못하는 거고 눈치껏 행동하려고 해도 상황 판단이 안되니까 불가한 거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사이코패스 과는 어쨌든 상황을 다 꿰고 컨트롤하려는 빌런이니 지능 저하류의 캐릭터와는 분명 다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부류는 때론 일을 답답하게 망치거나 뭉개거나 조용히 혼자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칭하는데 어떤 연유로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닌 이상 그건 머리가 나빠서, 란 심플한 결론에 닿는다. 사원증 달고 회의실에서 만난 사이란 이유로 우린 어쩌면 이 건물 속 나의 동료가 멍청한 바보가 아닐 거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사는지 모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과 힘든 이유는 성격도, 취향도, 스타일 차이도 아닌 지능 문제일 수 있다. 아니 꽤 많은 비율이 그럴 것이다.
#관찰일지 2. 캐릭터의 일관성
두 번째 관찰 일지는 어쩌면 직장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나의 개인 랭킹 1순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바로 일관성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 경험이 쌓여가면서 이 정도 나이에 세상 사람 모두 선하고 나와 같은 맘일 거란 나이브한 자세로 출근길에 오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성선설을 믿던 사람조차 성악설 지지자로 변모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경험일 테니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 세상 모든 이가 꼭 내 맘 같지 않을 것이란 각오를 품고 출근을 하였음에도, 대응과 수습이 어려운 인물들을 맞닥뜨린다는데 있다. 심지어 그들과 가족보다 긴 시간을 한 사무실 안에 생활하며 때론 상하로 엮어 일을 하고 감정을 나누고 소통을 해야 한단 점이다. 오피스에서 마주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큰 기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처하기 어려운 케이스 중 하나는 그리하여 일관성 없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다. 한쪽으로 매우 뾰족한 특성을 보이면 사실 그에 맞춰 나의 기준값을 조정하거나 그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 모드를 변속하면 될 일이다. 평생 인연을 맺을 사이도 아니고 잠깐잠깐씩 사회적 가면의 모양을 바꾸면서 충분히 지낼 수가 있는데 두 번째 부류의 문제점은 그 캐릭터의 세계관에 일관성이 하나도 없다는 데 있다. 시시각각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감정적 기복이 큰 파도와 같아 그에 맞춰 대화든 소통이든 하려고 하는 나마저 지금 어떤 상황에서 어떤 온도로 저 자를 대하고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 단순히 성격적인 부분이나 생활에서의 무논리면 모르겠지만 당연히 일하는 스타일에도 특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기준이 없고 히스토리에 대한 학습과 선순환이 전무하며 어느 장단에 어떤 템포로 북을 쳐야 할지 장구를 쳐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들의 연속인 거다. 대개 업무 지향적 캐릭터라면 시간 압박에 마이크로 매니징을 즐겨하고 내게 거는 챌린지의 수준이 높을지 언정 일만 똑디 하면 기타 생활이나 다른 측면에선 자유도가 어느 정도 보장되기 마련이고 반면 일은 어떻게든 굴러가면 그만이지만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 감정 케어와 조직 간의 위계에 굉장히 민감한 자라면 관계성에 연관된 일들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이 균형감이 무너진 자들이 우리가 미워하는 빌런들의 공통 속성이지만 그 경계가 모호하고 오늘의 아웃풋이 심각하리 만큼 예측불허인 케이스들이 존재한다. 그런 그들을 곁에서 보좌하거나 함께 공동의 프로젝트를 해 나가야 할 때 심연의 고통과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대응 방법을 짤 수가 없기 때문이다. 킥오프 때 표현했던 의사결정의 결은 분명 A였는데 며칠 뒤엔 F쯤에 준하는 피드백을 남발하고 고생 고생해서 팀웍을 이 정도 다졌다 싶은 공감대와 확신이 내겐 있는데 그 날 오후부터 일교차가 어마하다 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캐릭터 파악이 덜되었을 때야 그에 맞춰 기민하게 설정값도 바꿔보고 내 마음의 자세도 고쳐 먹어보고 하지만 한계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저지르는 자조차 기준이 없는데 그에 맞는 메뉴얼이 존재한단 기대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일 수도. 여튼 일관되지 못한 세계관은 결국 파행과 감정적 상처만을 남긴다. 대개 이 경우 업무 성향의 범주 외에도 세상만사 전반에 일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범용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높다. 특정한 목적을 두고 누군가 하나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정치적 담합을 하지 않는 이상, 평범하고 건강한 수준의 교류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다. 여러 번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 삼을 거점이 없고 쌓여가는 히스토리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당사자도 자기 마음이 어떤지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마 잘 모를 거다. 본인도 답을 모르는데 옆에 있는 난들 답을 알겠는가. 두 번째 자들에게 서는 되도록 빨리 그리고 멀리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이다. 지금까지의 관찰 결과로는 말이다.
#관찰일지 3. 감정의 공과 사
꼰대에 대한 화두는 요즘 세상에 너무도 많은 코멘트들이 넘쳐나기에 굳이 페이지를 할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나이나 입사 연도, 성별이나 직군 관계없이 꼰대란 존재는 공기처럼 우리와 공존한다. 예민도가 높아졌다고 해야 할까- 조금만 선을 넘으면 너도 꼰대고 나도 꼰대가 되는 세상이다. 나 정도 연차도 이미 젊꼰의 에이지로 접어든 터라 내가 뭐라고 여기서 꼰대의 정의나 그에 대한 힐난, 자격론을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심각한 수준의 진성 꼰대나 혹은 그런 부류들로만 단독 구성된 조직문화라면 모를까 나이가 들고 짬이 차면 누구나 꼰대가 되고 누구나 세대 갈등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내 보고 싶은 화두 하나는 꼰대력을 판가름하는 하나의 기준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꼰대라 불리우는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오피스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깡그리 뿌리부터 무시한다는데 있다. 뭐 개인의 역량이나 능력, 업무 경험, 사생활과 언행 이런 디테일 다 떠나서 기본적으로 회사 안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자기 멋대로 무시하고 표현하는 데서 오는 반감을 그들은 유발한다. 주특기인 폭언과 인신공격부터 들여다보자면 그 카테고리가 상하관계를 이용한 과도한 비난이든 업무에 대한 선 넘은 피드백이든 성희롱이든 그냥 회사에서 파생된 관계 사이에 뱉을 이야깃거리가 애초에 아닌 것이 문제다. 사실 아주 기본적인 매너인데 꼰대짓 마저 관성이 되어버린 분들은 본인이 지금 뱉고 있는 말들이 얼마나 저열한 멘트인지 인지조차 못한 채 숨 쉬듯 뱉고 또 이를 반복하는 듯하다. 쉽게 말하면 공과 사 구분이 안 되는 거다. 아마 꼰대 멘트 레퍼토리 하나에도 회사에선 말이야 공과 사를 구분해야지 류의 문장들이 껴 있을 수 있는데 뱉는 사람 본인이 실은 가장 실천을 못하고 있는 형국. 꼰대맨들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들 중 상당수는 하여 그냥 이 말이 업무 하려고 만난 회사 지붕 아래 건넬 말인가 아닌가의 필터만 넣어도 해결될 문제다. 그게 뭐 쉽지 않으니 그 길을 가고 있는 거겠지만.
서로 간 어느 정도의 위계는 조직을 굴러가게 하는 데 있어 필수라고 생각하지만 공사 구분 못하고 선을 넘으면 꼰대질이 된다.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얻은 노하우를 풀어주는 건 사실 리터럴리 경험과 지식의 대물림이라는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걸 전달하는 목적이 후배에 대한 도움에 포커스가 맞춰져야지 자기 자랑이나 난 이런데 넌 왜 그렇게 못해 류의 꾸중으로 떨어지면 곤란하다. 듣기 거북한 그런 언행과 간섭들도 본인 업무들을 또렷하게 하면서 내뱉으면 그래도 선배니까 하는 이해심을 품어보는데 충분히 예상을 했겠지만 선배로서 선임으로서의 역할을 잘하는 분들은 대개 이런 노선 위에 없다. 꼭 어딘가 함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본인의 부덕함과 실력을 채우기 위한 그릇된 접근방식으로 꼰대 웨이를 택하기 마련이기 때문.
부서마다 꼭 껴 있는 아이코닉한 꼰대까진 아니어도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선을 넘어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건 회사에서 만나는 여러 빌런들의 공통점이다. 특히나 감정적인 영역에서 이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과 오래 붙어있다 보면 인내심이 바닥나고 멀쩡했던 나의 멘탈까지 말리는 경우가 다수다. 일을 함께 하며 생겨나는 감정들이야 응당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풀어가고 나누며 해소할 부분이 맞다. 허나 누가 봐도 아닌 영역을 끌어다 붙이거나 혹은 혼자만 처리 못하고 있는 사변적인 잣대를 확대시켜 여럿을 고생시키는 그림은 글쎄. 성인이고 그 정도 연차면 알아서 스스로 여과하고 와야 할 감정들을 무슨 감투 쓴 마냥 동료들에게 휘두르는 사람들이 그래서 좀 불편하다. 정말 친밀한 관계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정도가 그리 깊지 않은, 말 그대로 비즈니스 관계인 우리 사이에 자꾸 끼워 넣으니 말이다. 교묘하게 업무 단위로 내려 표현하는 수준이었으면 관찰일지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다. 딱 들어도 무척 사적인 판단 잣대와 감정 기복인데 오피셜한 모양새로 포장해 공적으로 그걸 마구 휘두른다. 누가 봐도 속이 훤하고 그 방식이 유치해 죽는시늉이라도 해줘야 할지 강단 있게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가야 할지 답도 잘 서지 않는 그런 상황들을 맞곤 한다.
예민함은 무기가 아니다. 회사 안에서는 물론이요 바깥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예민한 감수성과 자잘한 감정들의 기복은 내보기엔 분명 단점인데 그걸 스스로 약간 자랑처럼 먼저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남들의 그런 판정에 약간 우쭐대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까놓고 나야말로 예민한 축에 속하는 사람인데 그건 스스로 해결할 나의 단점이지 결코 일하러 만난 사이에 대놓고 드러내며 감정적 갑질을 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다. 좀 가까워지고 업무도 어느 정도 여러 번 한 사이에서 알고 보니 너 이렇게 예민한 부분이 있더라, 정도가 적절한 노출 수위이지 그게 특권인 양 처리 못한 스스로의 감정을 자랑처럼 여기저기 싸지르고 다니는 건 정말인지 실례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상하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엮였든 서로가 지킬 매너와 존중이라는 것이 회사 안에서는 기본 룰이다. 내 성격 원래 이렇잖아- 류의 안일한 생각으로 자기도 모르게 회사 안에서 변덕으로 죽을 쑤거나 필요 이상의 감정 표현으로 여럿을 곤란하게 하거나 혹 그런 과정들이 심지어 뿌듯하고 즐겁기까지 하다면, 본인의 부덕함을 꼭 한 번 둘러보았으면 한다. 나 역시 누구보다 조심하려고 하는 영역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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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란 존재는 겪으면 겪을수록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 누굴 만나 어떤 프로젝트를 어떻게 어떤 온도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같은 일도 전혀 다른 히스토리가 된다. 결국엔 사람이 하는 일이란 뻔한 명제에 이르게 되는데 그러므로 나부터 돌아봐야 한다. 이상하고 이해 못할 족속들을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그에 대처할 생존법을 구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빌런이 아닐까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자기 검열을 하는 것, 연차가 쌓일수록 우선해야 할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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