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소파 위에만 나를 올려두기 아까운 이유들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을 따라 항해하던 어느 날 밤, 예능 단골 가수에서 로마 공주를 거쳐 아티스트 라이프까지 겸직 중인 멀티플 자아를 가진 한 연예인의 클립을 보게 된다. 본인 작업실에서 이루어진 촬영에서 새 앨범 홍보를 겸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뇌리에 딱 박힌 한 마디가 있었다. 사람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가져야 한단 한 줄이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고 이를 실천하려 심지어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던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한 줄이었다. 말 그대로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인간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든다. 특히 루틴한 직장에 일상 대부분을 잠식당하고 있는 일개미들에게 거창하게 말하면 사이드 프로젝트, 간단히 표현하면 ‘딴짓’은 있는 힘없는 힘을 쥐어짜서라도 해볼 가치가 충만한 것이다.
일만 하고 돌아와도 지치고 힘들기에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충전에 할애해야 한다는 의견도 물론 존중한다. 개개인의 건강상태나 취향은 말 그대로 천만 가지여서 굳이 모두가 이런 피곤한 삶을 지향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들도 간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시간에선 대부분 앞으로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나 회사는 답이 아닌 것 같아 류의 문장을 뱉는다. 큰 노력 없이도 직장생활이 너무 체질인 극소수를 제외하고 월급을 받고 조직생활을 하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한다. 밥벌이의 무게감은 너무도 무거운 것이어서 나이가 들수록 엉덩이는 무거워지지만 일이 손에 익은 만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 역시 비례한다. 결단력 있게 두 번째 꿈을 찾아 길을 선회하거나 새벽까지 쉬지도 못하고 투잡을 한다 거나 이직 준비, 공부 등을 하기엔 하루가 빡세고 몸은 피곤하다. 적절한 수위에서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체크하고 미래에 대한 방향도 타진하며 다른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추천하는 것이 그래서, 적극적으로 딴짓 하기다.
회사에서 매 년 세우는 혹은 할당되는 KPI 외에 자기 인생의 그 해 혹은 반기, 분기마다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골 셋팅을 하고 실행안을 짜듯 그 사이즈와 무게는 기간과 가용한 에너지를 고려하여 유동적으로 잡아본다. 거창한 설명이 부끄러울 정도로 사소한 것이어도 좋고 지금 업으로 삼고 있는 일과 무관하면 더 좋다. 그냥 하고 싶고 굳이 목표 삼아 실천이란 걸 해볼 에너지가 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일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딴짓 토크를 오피스 카테고리에 넣은 이유는 자명하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똘똘하게 가동될수록 현재 하고 있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 업무 연관성이나 선순환의 개념이 아닌 에너지의 영역이다. 직장생활의 9할은 대개 내 의지와는 무관한 일들로 채워진다. 본인이 보스거나 자유도가 매우 높은 직업이라면 모를까 대다수의 직장생활은 누군가 내려준 과제를 누군가의 해석을 거쳐 말단에 내 손발로 치우는 행위들이 다수다. 주체가 상사가 아니라 시장일 수도 있고 매출이나 어떤 숫자 들일 수도 있다. 반복되는 회사생활에 지치는 이유들은 대개 여기서 발생한다. 하기 쉬운 일도 아닌데 내 맘대로 하고 있지도 않고 뜻대로 흘러가는 건 점심 메뉴 선택 정도니까. 사이드 프로젝트가 그 진도율이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존재 만으로 어떤 해방감을 주는 이유다. 자유의지를 습관적으로 저지당하며 지내는 오피스맨들에게 내가 직접 내 맘대로 기획하고 컨펌하고 실행하는 어떤 딴짓들은 구상만으로도 삶에 삶에 생기를 준다. 퇴근하고 추가적인 무언가를 하면 힘들어 죽는 줄 아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인간은 적응과 동기부여로 빚어진 동물인지라 육체적 고단함보다 정신적 자기 최면과 만족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다. 하면서 즐겁고 에너지를 얻으면 잠 좀 덜자고 덜 누워있는 거 정도는 큰일이 아니란 이야기다.
하고자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가 심지어 생업에도 도움을 주면 더 고마울 일인 거고 굳이 그렇지 않아도 딴짓이 명백한 직장인에겐 은은한 자신감과 배짱의 아우라가 스며 나온다. 스스로 살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 필요 이상으로 비굴해진다 거나 일희일비하는 일들이 줄어든다. 퇴근 후에도 하던 업무와 분리 장애를 겪으며 끙끙 싸매고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일도 줄어들고 소위 말해 회복 탄력성이란 것에도 긍정적인 도움을 준다. 삶에 일 밖에 없고 이게 망하면 내 인생도 망할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불안감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인생도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담으면 수월해지는 이치 랄까. 오피스 바구니에 담아둔 계란이 상하거나 깨져도 뭐 딴짓 바구니 계란들은 아직 싱싱하니까. 꼭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 차원이 아니라 심정적인 자기 케어나 자존감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한다. 너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작은 실수도 크리티컬 하게 느껴지고 되려 본연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해 서글프게 끝나 버리는 연애처럼, 일 역시 다른 바구니를 찬 사람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자기 캐릭터를 발휘하며 성과를 내기 좋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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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딴짓 리스트는 꽤 다양한 경중에 다양한 카테고리로 채워지는데 그중 제일은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삼십 대엔 꼭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막연하지만 진지한 꿈이 한 줄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 삼십 대는 일찍 찾아오더라.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출판의 허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낮아진 세상이라지만 쨌든 출간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아주 특이한 이력을 지녀 스스로 셀링 파워를 가지거나 날카로운 기획과 좋은 글로 여러 문을 두드리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어디 내놔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문장들이길 바랬고 그 기약 없는 습작의 길을 걸었던 것이 블로그였다. 파워블로거의 재질도 아니거니와 우선 글을 내 의지대로 짓는 연습의 구간이 필요하단 생각에 그저 꾸준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글로 옮겨내는 연습을 했다. 글도 근육처럼 늘고 또 연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사실을 이 과정들을 통해 여실히 느꼈다. 몇 년 안 되는 역사지만 불과 반년 전에 쓴 글만 다시 보더라도 사지가 오그라들고 전하려는 바가 작성자인 나도 헷갈리는 경우들이 태반이었다. 예전엔 어떤 의도를 담고 글을 쓰는데 10의 시간이 걸렸다면 지금은 보다 명료하고 짧은 문장들로 같은 메시지를 5 정도에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글이야 말로 생각과 논리를 요하는 일이고 그 무엇보다 엉덩이 붙이고 다시 일하는 기분으로 원고를 써야 하는 작업인데 이상하게 같은 컴퓨터 앞인 데도 낮의 시간과 밤의 그것은 느낌이 너무도 달랐다. 가끔 뭐라도 오신냥 글이 술술 써지고 스스로 읽어도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뱉어 낼 때가 있는데 이 날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끔 예전에 쓴 글들을 꺼내 읽는 새벽이 있는데 그 당시의 내 생각을 생생하게 복기해볼 수 있어 좋은 데다 심지어 다시 읽어도 훌륭한 문장을 만나면 단전부터 자기애가 차오르는 변태적인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썼어도 참 괜찮은 글이군, 하며 말이다. 스스로 만족의 기준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한 효용인데 블로그란 플랫폼의 특성상 가끔 나의 글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분을 만나거나 더 직관적으로 글 너무 좋다란 피드백이라도 받는 날이면 그간의 노고나 심지어 낮에 받았던 업무 스트레스까지 눈 녹 듯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본업이 아닌 데서 오는 칭찬이라 되려 더 짜릿하고 얻기 힘든 기쁨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긍정적인 에너지는 꽤나 길게 곁을 머물기에 회사에 앉아있는 내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일이 좀 덜 풀리더라도 기분 좋게 감정이 피신할 곳이 내겐 있고 지금 이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나의 존재를 탄탄히 증명해줄 어떤 행위가 있다는 것으로부터 얻는 자신감도 적지 않다. 실제로 책을 출판한다 거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주고 인정을 받는 데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그 과정을 준비하는 딴짓의 미학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꼭 글처럼 물성적인 결과물이 어떤 플랫폼에 쌓이는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딴짓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때론 집 꾸미는데 미쳐서 몇 주 내내 온갖 페브릭 쇼핑에 셀프 인테리어에 푹 빠져 있을 수도 있고 발레에 열이 오르는 구간엔 음악도 발레 음악만 듣고 자기 전까지 유튜브 영상 보면서 반 무용수의 심정으로 세상을 살기도 한다. 어떤 자격증이나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응당 시험일까진 수험생 모드를 풀가동해 보는 것이고 소중한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면 파티플래너에 빙의해 잠시 업태를 바꾼듯 살아보는 거다. 한번쯤 궁금했던 영역의 원데이 클래스를 들어볼 수도 있고 어릴 때 엄마가 안시켜줘서 한이 될 뻔 했던 악기나 취미를 배워볼 수도 있다. 와인이 너무 꽂히는 계절이면 좋은 와인바 찾아다니며 퇴근 후의 시간과 지갑을 탕진해도 좋고 갑작스런 지인의 알바 제안에 전혀 다른 영역에 머리를 쓰고나 때로 몸을 써봐도 좋다.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해서 꼭 생산성과 의미가 보장된 일들을 할 필요 없단 이야기다. 현실에서 약간 비껴 진짜 내 모습에 가까울 수 있는, 기분 좋은 일들이면 그것이 곧 나의 딴짓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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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이런 딴짓들이 지겨워져 본업에 대한 반작용적 애정이 피어나기도 한다. 취미나 여가생활 말고 새로운 진로에 대한 탐색이나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던 어린 날의 꿈같은 걸 프로젝트에 올렸다고 가정해보자. 운이 좋게 제2의 인생의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별로인 경우도 은근 많다. 치사하고 지겨워도 꼬박꼬박 월급 주는 지금 직장이 그래도 나쁘지 않았네를 깨달을 수도 있으니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 딴짓을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해보니 정말 업을 바꿔야 살 것 같고 혹은 이렇게 투잡을 뛰어도 좋겠다 싶으면 뭐 더 고마운 거고. 미래 먹거리 개발이나 자아실현은 덤이요 적극적 딴짓은 평범한 오피스 라이프에 어떤 의미로든 활력을 준다.
퇴근 후의 자아를 소파 위에만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은 놀더라도 의식적으로 더 능동적으로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다. 하루를 두 번 사는 것이다. 9 to 6의 직장인으로서 한 번, 적극적으로 딴짓에 몰입하는 사이드 프로젝트의 리더로서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