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약간의 강박을 끼고 잠든다
주기적으로 밤을 찾아오는 악몽의 패턴이 있는가? 단순히 꿈자리 뒷맛이 뒤숭숭하다거나 아무래도 쎄한 느낌에 출근길에 기어이 꿈해몽을 뒤져보게 만드는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그런 꿈 말고- 스트레스가 누적되는 상황이나 미묘하게 신경을 긁는 일들이 쌓여갈 때 나는 항상 비슷한 패턴의 꿈을 꾸다 잠에서 깬다. 트라우마에 준하는 공포스런 미장센이나 어디 낭떠러지라도 떨어져 머리털이 쭈뼛 서는 그런 꿈이 아니다. 어찌 보면 아주 일상적이고 별 의미를 찾기 어려운, 흔히 말해 개꿈으로 분류되는 그런 꿈이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성실하고 꾸준하게 말이다.
악몽 패턴의 첫 주자는 부끄럽게도 수능 날 2교시로 돌아간다. 수능 시험을 친 열아홉 이후 10년도 더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수리영역 시험지를 받아 들고 긴장하고 당황하는 단순한 플롯의 꿈을 꽤 오래 반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능시험 2교시는 내가 인생에서 처음 '실패'란 도장을 받은 날이었으니까. 시험 좋아하고 공부를 즐겁게만 한 학생이 어딨겠냐만은 그 날의 그 시험은 몇 장의 시험지 치고는 꽤 두꺼운 잔파도를 내 인생에 남겼다. 수학이란 과목을 좋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성향상 좋아하는 것들은 즐겁게 더 많이, 싫어하는 건 자연스레 빈도와 애정이 떨어져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어 수학이란 과목은 말 그대로 숙제하는 심정으로 견뎠다. 그럼에도 수포자가 되거나 과목을 완전히 놔 버린 적은 없었다. 꾸중을 피하기 위한 억지 숙제처럼 그래도 꾸역꾸역 선행 학습도, 문제풀이도, 과외나 단과 학원도 오갔다. 그래도 얼추절추 등급도 잘 나오고 좋아하지 않을 뿐 적당히 이 과목을 컨트롤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십 대 인생 가장 중요한 날, 역대 최악의 점수를 맞으며 그렇게 수능 실패란 나름의 시린 경험을 한다. 돌이켜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점수가 최악으로 나온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학에 못 간 것도 아니고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해서 인생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삼십 대에 접어들도록 그 작은 책상 위에 숫자가 가득 박힌 시험지와 씨름하며 고통받는 꿈을 반복하냔 거다.
수리 시험 악몽의 핵심은 싫어하는 수학시험으로 다시 친다, 에 있지 않다. 별로 좋아하지 않아 완벽하게 정복하지 못한 어떤 대상이 있음에도 이를 정면돌파하지 않고 아주 적당히, 최소한의 투입으로 연명하다 가장 중요한 시점에 요행을 바란 대가에 대한 무의식의 발현이다. 단순히 시험을 또 치는, 망한 경험을 복기하는 개념이 아니라 무언가에 200% 진심을 다 하지 못한 찜찜함과 그 벌로 아주 긴 후회를 한다는 점이 이 악몽의 패턴이다. 나의 수리 점수와 무관하게 인생은 계속 흘러갔다. 다행히 적성에 맞는 과 선택도 했고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맙게도 깨달은 지라 취업 준비는 더욱 철저하게 이어나가 오늘날까지 왔지만 잊을만하면 그 날의 꿈을 꾼다. 그 정도로 긴 후회를 남길 거면 재수를 할 수도 있었고 남들 다 하는 반수라도 꿈꿔볼 수 있었을 텐데 스무 살의 나는 무조건 한 번의 기회에 100%를 해야 한다는 꽤 단단한 강박이 있었다. 고작 1년의 숨 고르기일 뿐인데, 인생은 생각보다 꽤 길고 세상에 중요한 것들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도 될 만큼 난 어렸는데 말이다. 단 한 번의 기회 속에 나를 가뒀고 그 날의 실패로 내가 세워둔 기준점에 못 미치는 진학을 했다는 내적 컴플렉스가 꽤 오래 나의 삶에 드리웠다. 목표했던 학교에 갔다고 인생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나의 모교가 누군가에겐 꿈의 학교일 수도, 이때의 실패를 발판으로 지금껏 더 부지런하고 명확한 삶을 살아왔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독한 문과생의 수능시험 실패담과 잔혹한 대한민국 입시 스토리 그 이상으로 이 악몽이 무거운 이유는 어린 날 진짜 실패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그 의미를 잘 몰랐던 내 모습에 있다. 목표는 말 그대로 그걸 설정하는 시점의 내가 정한 하나의 깃발일 뿐 상황과 운명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는 변동 값이다.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때마다 나는 수능 2교시, 그 날 그 자리 열아홉의 나로 돌아갔다.
재밌는 사실은 이 악몽의 패턴에도 변화가 있단 사실이다. 최근 자주 꿈에 오르는 상황은 이런 거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얼른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서야 하는데 짐 싸기가 무척 갑작스럽게 진행된다거나 그 촉박한 상황 속에 완벽을 가하지 못한 채로 여행길에 오르는 상황들. 특히나 집 떠나 잠자는 경우는 국내외, 체류기간을 막론하고 철저히 대비하는 스타일이라 관련해서 아쉬운 경험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여행 중 단 한 번도 크리티컬 한 무언가를 빠뜨린 적도, 공항에서 짐을 분실해 여행을 망쳐본 경험도 없는데 말이다. 지금 떠나도 비행기를 놓칠 것 같은 촉박한 상황에 촘촘히 적어둔 준비물 리스트 없이, 그냥 눈앞에 보이는 걸 대충 담아 넣는 상황이 무척 스트레스인 데다 꿈인 와중에도 이걸 놓고 가면 이 도시에서 이걸 못하게 되고 이걸 두고 가면 분명 바뀐 잠자리가 더 불편해질 텐데 하는 감정들은 심지어 너무도 생생해서 진짜 큰 휴가라도 망친 사람처럼 황망한 감정으로 눈을 뜨곤 한다. 전에 자주 꾸던 수능 망치는 꿈 보다얀 캐주얼하다만 문제는 이 꿈의 빈도가 너무 잦다는 데 있다. 뻑하면 비슷한 꿈을 꾼다. 어디는 뭘 빠뜨렸고 어디는 뭘 준비하다 마음 졸이고 하며 가장 편안하게 쉬어야 할 시간에 짐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다 눈을 뜬다.
꿈은 곧 우리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했던가. 여행 준비가 미비한 꿈의 반복 그 이면엔 내가 중요하다 여기는 것들을 누구보다 철저히, 내 속도대로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은 나와 그렇지 못한 현실이 부딪치는 충돌점이 있다. 매일 드는 잠 속에, 자주 꾸는 꿈속에 우린 어린 시절 경험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반복하기도, 무의식 속 잘 개켜진 마음의 아킬레스건이 튀어 오르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우리 머리맡을 찾아오는 그 패턴을 잘 들여다보면 가끔씩은 보인다. 지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어떤 결핍이, 이상과 현실의 온도 차 속에 방치된 어떤 감정이, 때론 그런 내가 지금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떤 다짐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