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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plica Oct 30. 2020

나의 악몽 패턴

모두가 약간의 강박을 끼고 잠든다




주기적으로 밤을 찾아오는 악몽의 패턴이 있는가? 단순히 꿈자리 뒷맛이 뒤숭숭하다거나 아무래도 쎄한 느낌에 출근길에 기어이 꿈해몽을 뒤져보게 만드는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그런 꿈 말고- 스트레스가 누적되는 상황이나 미묘하게 신경을 긁는 일들이 쌓여갈 때 나는 항상 비슷한 패턴의 꿈을 꾸다 잠에서 깬다. 트라우마에 준하는 공포스런 미장센이나 어디 낭떠러지라도 떨어져 머리털이 쭈뼛 서는 그런 꿈이 아니다. 어찌 보면 아주 일상적이고 별 의미를 찾기 어려운, 흔히 말해 개꿈으로 분류되는 그런 꿈이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성실하고 꾸준하게 말이다.



악몽 패턴의 첫 주자는 부끄럽게도 수능 날 2교시로 돌아간다. 수능 시험을 친 열아홉 이후 10년도 더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수리영역 시험지를 받아 들고 긴장하고 당황하는 단순한 플롯의 꿈을 꽤 오래 반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능시험 2교시는 내가 인생에서 처음 '실패'란 도장을 받은 날이었으니까. 시험 좋아하고 공부를 즐겁게만 한 학생이 어딨겠냐만은 그 날의 그 시험은 몇 장의 시험지 치고는 꽤 두꺼운 잔파도를 내 인생에 남겼다. 수학이란 과목을 좋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성향상 좋아하는 것들은 즐겁게 더 많이, 싫어하는 건 자연스레 빈도와 애정이 떨어져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어 수학이란 과목은 말 그대로 숙제하는 심정으로 견뎠다. 그럼에도 수포자가 되거나 과목을 완전히 놔 버린 적은 없었다. 꾸중을 피하기 위한 억지 숙제처럼 그래도 꾸역꾸역 선행 학습도, 문제풀이도, 과외나 단과 학원도 오갔다. 그래도 얼추절추 등급도 잘 나오고 좋아하지 않을 뿐 적당히 이 과목을 컨트롤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십 대 인생 가장 중요한 날, 역대 최악의 점수를 맞으며 그렇게 수능 실패란 나름의 시린 경험을 한다. 돌이켜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점수가 최악으로 나온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학에 못 간 것도 아니고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해서 인생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삼십 대에 접어들도록 그 작은 책상 위에 숫자가 가득 박힌 시험지와 씨름하며 고통받는 꿈을 반복하냔 거다. 






수리 시험 악몽의 핵심은 싫어하는 수학시험으로 다시 친다, 에 있지 않다. 별로 좋아하지 않아 완벽하게 정복하지 못한 어떤 대상이 있음에도 이를 정면돌파하지 않고 아주 적당히, 최소한의 투입으로 연명하다 가장 중요한 시점에 요행을 바란 대가에 대한 무의식의 발현이다. 단순히 시험을 또 치는, 망한 경험을 복기하는 개념이 아니라 무언가에 200% 진심을 다 하지 못한 찜찜함과 그 벌로 아주 긴 후회를 한다는 점이 이 악몽의 패턴이다. 나의 수리 점수와 무관하게 인생은 계속 흘러갔다. 다행히 적성에 맞는 과 선택도 했고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맙게도 깨달은 지라 취업 준비는 더욱 철저하게 이어나가 오늘날까지 왔지만 잊을만하면 그 날의 꿈을 꾼다. 그 정도로 긴 후회를 남길 거면 재수를 할 수도 있었고 남들 다 하는 반수라도 꿈꿔볼 수 있었을 텐데 스무 살의 나는 무조건 한 번의 기회에 100%를 해야 한다는 꽤 단단한 강박이 있었다. 고작 1년의 숨 고르기일 뿐인데, 인생은 생각보다 꽤 길고 세상에 중요한 것들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도 될 만큼 난 어렸는데 말이다. 단 한 번의 기회 속에 나를 가뒀고 그 날의 실패로 내가 세워둔 기준점에 못 미치는 진학을 했다는 내적 컴플렉스가 꽤 오래 나의 삶에 드리웠다. 목표했던 학교에 갔다고 인생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나의 모교가 누군가에겐 꿈의 학교일 수도, 이때의 실패를 발판으로 지금껏 더 부지런하고 명확한 삶을 살아왔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독한 문과생의 수능시험 실패담과 잔혹한 대한민국 입시 스토리 그 이상으로 이 악몽이 무거운 이유는 어린 날 진짜 실패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그 의미를 잘 몰랐던 내 모습에 있다. 목표는 말 그대로 그걸 설정하는 시점의 내가 정한 하나의 깃발일 뿐 상황과 운명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는 변동 값이다.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때마다 나는 수능 2교시, 그 날 그 자리 열아홉의 나로 돌아갔다. 



재밌는 사실은 이 악몽의 패턴에도 변화가 있단 사실이다. 최근 자주 꿈에 오르는 상황은 이런 거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얼른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서야 하는데 짐 싸기가 무척 갑작스럽게 진행된다거나 그 촉박한 상황 속에 완벽을 가하지 못한 채로 여행길에 오르는 상황들. 특히나 집 떠나 잠자는 경우는 국내외, 체류기간을 막론하고 철저히 대비하는 스타일이라 관련해서 아쉬운 경험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여행 중 단 한 번도 크리티컬 한 무언가를 빠뜨린 적도, 공항에서 짐을 분실해 여행을 망쳐본 경험도 없는데 말이다. 지금 떠나도 비행기를 놓칠 것 같은 촉박한 상황에 촘촘히 적어둔 준비물 리스트 없이, 그냥 눈앞에 보이는 걸 대충 담아 넣는 상황이 무척 스트레스인 데다 꿈인 와중에도 이걸 놓고 가면 이 도시에서 이걸 못하게 되고 이걸 두고 가면 분명 바뀐 잠자리가 더 불편해질 텐데 하는 감정들은 심지어 너무도 생생해서 진짜 큰 휴가라도 망친 사람처럼 황망한 감정으로 눈을 뜨곤 한다. 전에 자주 꾸던 수능 망치는 꿈 보다얀 캐주얼하다만 문제는 이 꿈의 빈도가 너무 잦다는 데 있다. 뻑하면 비슷한 꿈을 꾼다. 어디는 뭘 빠뜨렸고 어디는 뭘 준비하다 마음 졸이고 하며 가장 편안하게 쉬어야 할 시간에 짐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다 눈을 뜬다. 






꿈은 곧 우리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했던가. 여행 준비가 미비한 꿈의 반복 그 이면엔 내가 중요하다 여기는 것들을 누구보다 철저히, 내 속도대로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은 나와 그렇지 못한 현실이 부딪치는 충돌점이 있다. 매일 드는 잠 속에, 자주 꾸는 꿈속에 우린 어린 시절 경험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반복하기도, 무의식 속 잘 개켜진 마음의 아킬레스건이 튀어 오르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우리 머리맡을 찾아오는 그 패턴을 잘 들여다보면 가끔씩은 보인다. 지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어떤 결핍이, 이상과 현실의 온도 차 속에 방치된 어떤 감정이, 때론 그런 내가 지금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떤 다짐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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