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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plica Oct 31. 2020

운을 믿지 않는 기획자  

그래서 (재수) 없는 기획자





나는 기획일을 좋아한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문과생이 월급 받고 직장 생활할 수 있는 업(業) 중 나란 사람과의 공통분모가 가장 확실한 일이 바로 이 지점 같다. 나의 첫 커리어는 광고대행사 AE였다. 말 그대로 ‘기획'이라 불리는 일이었다. 광고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하지만 꽤 진지한 꿈이 있었고 개중 내가 가장 잘할 것 같은 업무를 택해 운 좋게도 첫 커리어를 의지대로 시작하게 된 케이스다. 크리에이티브 쪽에 좀 더 닿아있는 카피라이터가 본래 꿈의 원안에 더 가까웠다만 취업 준비하면서 공모전과 기획서 쓰는 일들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AE롤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회사에서 기획일을 하며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와 그 안에서의 성장통은 지금의 나를 만든 자양분이라고만 하기엔 너무도 버라이어티 해 직장 활극을 한 편 집필할 수 있을 정도지만 확실히 이때 일했던 경험들이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뿌리를 만든 것은 분명한 일이다. 밤새 레퍼런스 찾고 아이데이션 하고 캠페인 방향 잡고 끝없이 난장 토론을 벌이며 아웃풋을 만들어나간다는 일련의 과정들이 참 매력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클라이언트의 의도, 이루고자 하는 캠페인 목적에 따라 정리하고 틀을 잡아가는 과정이 유독 좋았던 것 같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중에 따라 현안을 발라내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이어 붙이는 논리를 요하는 일이었고 더 없는 설득의 예술이었다. 이직 후에도 마케팅 일을 계속 이어가며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아래 있는 여러 업무들을 유사한 구조로 해나갔다. 나의 일은 언제나 시장에 내놓을 제품이나 서비스, 브랜드의 존재 가치에 대한 시대적(소비적) 명분을 유려하고 재밌는 아이디어, 표현들로 설득력 있게 전개해나가는 일에 가까웠다.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 일뿐 아니라 일상에도 나는 기획서를 들이밀었다. 귀여운 수준으로는 모임도 그냥 모이면 그만인데 컨셉 잡아 뭐라도 의미를 하나 더 부여하는 걸 좋아하고 그런 준비과정이 치밀하고 탄탄한 자리들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꼈다. 여행을 가도 도시마다 길목마다 컨셉 방향이 있어야 마음이 놓였고 목적지뿐 아니라 그 날의 음식과 의상들까지 기획의도에 준하여 갖춰졌을 때 얻는 쾌감도 컸다. 글쓰기도 비슷했다. 내 안에 있는 솔직한 이야기를 뱉어내는 행위 자체도 물론 즐거웠지만 내가 정한 테마에 맞게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활자로 구조화해나가는 그 과정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한편씩 읽으면 공감을, 엮어서 보면 큰 의도와 흐름이 느껴지는 그런 글들 말이다. 



인생도 기획의도대로 부드럽게 차근차근 전개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런 기획자의 삶은 꽤나 멋진 일일 거다. 준비한 대로 모든 과정이 그려둔 단계를 순서대로 밟으며 흘러가고 나의 본 의도에 걸맞게 끝맺음을 맞는다면 말이다. 문제는 우리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 나의 기획의도와 전략대로만 가지 않는다는데 있다. 아니 어쩌면 삶이란 계획했던 것들을 끝없이 빗겨 나며 굴러가는 것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른의 세계는 예측하지 못한 것들이 빚어내는 무질서와 탈계획의 연속이었다.  





기획자로 나의 커리어가 굳어갈수록 가장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운, 이라는 것의 존재감이다. 촘촘하게 인생을 기획하고 그걸 잘 실행해내는 것과 행운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다른 이야기 같지만 무서우리만큼 궤를 같이 한다. 인생의 여러 프로젝트를 성실하게 기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삶을 잘 살아가는 방법론 중 하나일 순 있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개개인의 기획력과 준비성보다 훨씬 강력한 건 바로 운과 기운이라는 것의 작용이다. 어떤 명확한 기준도 없이 세워둔 계획이 통하지 않고 무력화되는 경우가 우리 인생에 무척이나 잦다. 어떤 사람에겐 일상처럼 빈번해 그것이 운 덕분이란 걸 체감하지 못할 수도, 누군가에겐 박하리 만큼 박해 로또나 벼락부자 같이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단어로만 존재할 수도 있겠다. 기획력 있게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인생에 허락되는 모든 행운의 총량을 공식처럼 계량할 순 없을 거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점은 이 꼼꼼한 계획러들이 쉽사리 운, 이란 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단 점이다. 



어려서부터 사회가, 선생님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내주는 과제를 열심히 소화해 온 모범생 증후군까지 동반한다면(둘은 양립이 아주 쉬운 구조다) 더더욱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운의 존재감이다. 열심히 노력했으면 응당 그에 준하는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 이들에겐 세상의 이치와도 같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학창 시절부터 그 하기 싫은 숙제들을 그리도 열심히 하기 어려웠을 거다. 중간중간 나의 노력에 걸맞은 성취도 얻어가며 동력을 더해갔을 거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더더욱 깊게 믿게 된다. 원하는 바 노력을 하고 그에 맞게 결과를 내는 나 자신을 말이다. 하여 언제 어떤 사이즈로 올지 모를 운을 믿고 여기 기대며 인생을 산다는 것이 좀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을 살아갈수록 이 운이란 것이 세상을 사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점점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때가 제대로 들어온 사람의 일과 삶에 날개가 달리는 속도는 말 그대로 무시무시하다. 툭툭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툭 까놓고 가진 재능 이상으로 포장이 잘된 덕에 남부러울 것 없는 부와 명예를 얻는 경우도 있다. 엎어질 뻔한 위기의 순간이 전화위복 되는 것도, 남들보다 조금 느리지만 10배로 큰 성취로 보답을 받는 경우도 사람이 운때가 맞으면 참으로 훌훌 가능한 일이다. 강연이나 성공스토리를 보면 흔히들 운이 좋았다, 란 말로 말문을 여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나는 이 말이 그 무엇보다 강력한 한 줄이라고 생각한다. 뛰어나기도 했을 거고 숱한 밤 노력을 거듭했을 그에게 운까지 받쳐줬단 거다. 혹자는 운도 실력이 쌓여있을 때 의미를 다한다는 논리를 펴지만 솔직히 진짜 운이 좋으면 실력이건 뭐건 걷지 못해도 날 수 있다. 준비까지 철저히 잘된 사람은 그 운을 딛고 좀 더 크고 멀리 롱런할 수 있는 것이지 세상엔 사람 의지와 노력 위에 작용하는 어떤 힘이 분명 존재한다. 때에 따라 있다 없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의 의지와 진심, 노력만으로 불러올 수 없는 이 ‘운'이라는 것을 마냥 천장만 보며 기다리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획과 계획이 생활화된 이들은 특히나 이 운의 영향력을 때론 얕잡아 보고 때론 무시하다 실행력을 잃는 경우가 많단 것이다. 바꿔 말하면 철저히 그리고 탄탄하게 준비가 서지 않으면 시작이 너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기획이 완벽하게 잘 잡혀 있어도 성공을 할지 말지는 사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완벽한 로직에도 허점은 있고 무릎을 팍 때려 멍들 정도로 날카로운 아이디어도 별 이유 없이 망할 수 있다. 너무 범용적이고 특색이 없어서일 수도, 너무 뾰족하고 마이너 해서일 수도, 그냥 이유가 없을 수도, 원인조차 주관적일 거다. 앞서 설명한 기획 중심 행동가들은 여기에 더해 스스로 100% 납득될 만큼의 퀄리티에 오르지 않으면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완벽을 성실히 추구한단 점에서 이게 꼭 단점이라고 말하긴 좀 뭣하지만 운의 작용과 아님 말고의 힘을 믿는다면 그렇게 엉덩이가 무거워 봤자 나의 확률 카드만 줄어들 뿐이다. 적당히 익었으면 몸을 움직여 시도를 해야 한다. 아니 때로는 아이디어 한 줄, 그냥 한 번 던져보는 얄팍한 시도 한 번에 기회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한다. 실행 버튼을 눌러보지도 않고 기획안만 다듬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적 동력은 떨어지고 투입한 인풋이 늘었다는 본전 생각에 두려움과 실망감에 취약해진다. 







비단 기획일을 하는 이들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천성이 꼼꼼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예민한 이들,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사실 기획을 한다는 거 자체가 꼭 건설적인 차원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과정 속에 실패에 대한 대책을 염두하기도 하고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률을 높이는 작업인데 이 속에서 꼼꼼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이건 이래서 안 될 거야, 이건 너무 뻔하잖아, 이런 건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어 등의 부정적인 안전망과 일종의 자기 보호를 상시 곁들인다. 그런 건 적당히 해도 된다는 거다. 그렇게 온갖 경우의 수를 세며 기획안만 파고 있자면 세상에 성공할 프로젝트도, 새롭게 팔릴 아이템이란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실행에 내던져지고 이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어우러짐 속에 존재하고 그 가운데 운과 결과가 난다. 나의 운을 믿고 기회에 베팅하는 스스로를 요행을 바라거나 철없는 자아로 깎아보지 말자. 말 그대로 운 좋게, 그 행운이 내게 찾아왔을 땐 그게 꽤 멋진 일이란 걸 담백하게 받아들이자. 앞으로 다가올 파도를 즐길 준비가 이미 충분히 된 당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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