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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plica Nov 01. 2020

자나 깨나 사람 조심

외롭다고 약속을 함부로 잡아서는 안 되는 이유




작가 김영하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마흔 넘고 보니 친구는 생각보다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고, 친구들 덜 만나고 쓸데없는 술자리 덜 갔으면 인생이 훨씬 풍요로웠을 거라고. 이거다 싶어 간직하고 프사에 걸어둘  세련된 문장은 아니었음에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펀치를 날린, 꽤 날카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공감하지 않고 넘어갈 사람은 많지 않으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가까운 사람들의 감정, 심리, 기분을 살피고 맞추느라 지금도 소중한 우리의 에너지는 닳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가 인생은 독고다이, 친구고 뭐고 됐으니 홀로 좋은 일이나 더 하라거나 친구 다 필요 없더라 류의 비관적인 우정론을 펼친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글의 핵심은 우정의 중요성을 저울에 매달자가 아닌 친구, 관계를 대하는 우리의 온도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풍요롭고 입체적인 삶의 운용을 위해서도 친구, 주변인 과의 상호작용은 인간적 성장에 매우 주요하다. 허나 우리 사회가 압박하고 있는 수없이 많은 명제 중 친구 만능주의, 즉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관계는 무르익을수록 좋다는 가르침에 감히 한 번 삐딱선을 타보고 싶다. 그게 아주 쉽게 가능하고 얻는 효익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행 자체도 무척 어렵고 심지어 노력했는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가족 뭐 그 소중함의 경중을 다 떠나 인간'관계'를 해낸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소모하는 일이다. 나랑 너무도 다른 생각과 감정을 지닌 타자와 경험을 함께하고 히스토리를 공유하며 심지어 서로 공감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이란 말인가. 실로 다른 우주가 만나 새로운 화학작용을 이뤄내는 과정들인데 유독 우리 사회는 이를 신성시하고 높은 가중치를 매기는 경향이 있다. 문화의 뿌리 자체가 집단주의에 가깝기 때문일까.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무리 인성 좋고 배려심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일단 예민하고 섬세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 시간은 일종의 도전과제와 같다. 심지어 내가 먼저 만나자고 약속을 잡은, 내가 너무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대화를 이어나가고 서로 교류하는데 드는 에너지가 남들보다 곱절은 더 들기 때문이다. 관계에 대한 여러 입장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예민성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좁고 깊은 관계를 지향한다. 한두 명 친해지기도 천릿길 같이 어려운데 그걸 문어발처럼 여기저기 떨쳐놓고 들쭉날쭉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안 되는 소중한 관계기 때문에 심지어 시간을 들여 그와 함께하는 동안은 되도록 너와 내가 모두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하여 상대가 하는 이야기나 곁들여지는 비언어적 요소에 최대한 집중하며(하지 않으려고 해도 하게 될 거다.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있는 사람들이니까) 에너지를 쏟는다. 때론 백 퍼센트의 지지로 때론 인사이트 꾹꾹 담은 코멘트를 돌려주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이 사람과 보내는 이 시간을 의미 있고 다정하게 보내려 굉장히 노력하기 때문에 뭐 맘은 편한 만남이라고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훅 체력이 달리면서 이제 얼른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에 접어들게 된다. 



세상살이 또 어떻게 일대일 만남만 가능하겠는가. 때로는 단톡방 멤버들이 모두 시간을 맞추는 정기모임도 있고, 왕왕 동창이나 동기모임처럼 꽤나 다수의 친구들과 한날한시에 모여 같은 음식을 나누며 비슷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도 맞닥뜨린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십 대의 나는 친구들 모임 주선하고 파티 기획하는 걸 하나의 낙으로 살던 사람이었는지라 한때는 다다익선의 모임 미학을 맹신했더랬다. 기왕지사 시간 맞춰 모이는 거 최대한 많은 애들이 모여 근황도 전하고 같이 웃으면 좋잖아, 싶은 나름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삼십 대가 지나고 어느 순간부턴가 정말로 친밀한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5명이 넘어가는 왁자지껄한 모임보다 셋 정도, 많아도 숫자 4를 넘지 않는 자리가 훨씬 편하게 다가온다. 이유를 잘 모를 땐 그냥 나의 비사회성이 나이 들수록 고개를 드는구나 싶은 자학 비슷한 감정도 들었는데 아니었다. 성향상 그게 당연했던 거다.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이 최대한 비슷한 감정선으로, 누구도 불편하지 않고 즐겁게 오롯이 그 날 모임에 집중할 수 있는 성인 여자 모임의 리밋이 있던 것이다. 하여 어쩔 수 없는 날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셋, 넷을 넘지 않는 숫자, 되도록은 일대일 만남을 지향한다. 그 정도 숫자가 내 에너지로 앞에 앉은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나도 상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으며 서로 즐거울 수 있는 적정 수치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때론 다수의 인원이 모여 축하나 슬픔을 나눌 때도, 다 같이 함께하며 나누는 즐거움도 있지만 대다수의 약속 캘린더는 소규모 인원이 최대한 솔직하고 엇비슷한 감정으로 같은 레벨에서 함께하다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만남을 지향한다.


 



외롭다고 함부로 약속을 잡아서는 안된다. 우린 때때로 순간적인 고독감을 마주한다. SNS엔 다들 어딘가 경치 좋고 감성 넘치는 곳에서 우정을 전시하고 관계를 자랑하는데 나만 아무런 약속이 없을 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그때 그 감정 그대로를 기대하고 나갔건만 어딘가 변한 것 같은 절친들이 유독 낯설 때, 놀 땐 분명 너무 즐거워서 목이 쉴 정도로 수다를 떨었지만 돌아오는 지하철 계단이 유난히 높고 가파르게 느껴질 때. 관계를 잘 이어나가고 있어도, 어딘가 문제가 생겨도 비슷하게 찾아오는 고독한 감정들이다.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고립감이나 소외감에 휩쓸려 그래 얘네라면 다를 거야 하며 또 다른 약속을 잡거나 지나가는 말로 나왔던 다음 약속을 무리하게 진행시키며 스스로를 낭비할 필요 없다. 그 날의 고독감은 끈끈했던 내 친구가 나와는 다른 스테이지에 접어들어 오는 실제적인 고독감일 수도, 내가 나 스스로 회복하는 감정의 면역이 약해진 상태일 수도 있다. 그 이유를 명확히 발라서 분간하기 쉽지 않고 특히나 사람 간의 감정 교류에 예민한 이들은 현상을 더욱 나노 단위로 쪼개 몰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그때의 감정 판단이 더욱 복잡하다. 그러니 캘린더 채우는 일은 우선 멈춰야 한다. 어떤 것이 문제의 핵심이고 무얼 먼저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순서다. 사람에게 얻은 상처를 우린 곧잘 또 사람에게서 치유하려 하는데 대개 문제는 그 사람을 해석하는 나의 관점이나 내 감정이 다쳐 약해있는 경우가 많기에 긍정적인 효과보단 악순환을 맞기 쉽다. 날 좋은 날 나만 방구석이라니, 나도 멀쩡하게 차려입고 힙한 카페에서 누군가와 어울려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와 먼저 만나보는 거다. 그냥 침대에 누워 남의 SNS만 들락거리는 뒹굴거림 말고 그동안 무의식 중 도망치기만 했던 현재 나의 진짜 결핍된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나 오롯이 내가 좋아하고 필요한 것들, 잠이 부족한 만성 피로의 상태라면 푹 잠을 자고 명쾌한 상황 판단이 절실한 상태라면 자리 잡고 앉아 진지하게 고민의 가지들을 정리해보고, 기분이 좀 가라앉은 상태라면 계절 맞이 옷장 정리라도 하면서 몸을 움직여보는 거다. 나와의 시간은 거창한 목적의식과 특별한 아이템으로 채워질 필요 없다. 말 그대로 내가 나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그 소중한 의식에 남들의 취향과 상황을 끼워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 날카로운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예민한 사람은 자나 깨나 사람 조심을 해야 한다. 꼭 경계하고 낯을 가리라는 의미가 아닌, 소중한 관계일수록 더욱 조심히 그 관계를 다져나가는 과정들에 공을 들이고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상대는 지난번과 똑같은 온도와 마음으로 내 앞에 있을 뿐인데 나의 마음가짐과 상황에 따라 아주 다른 타인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중하고 오래 보고 싶은 사람일수록 그래서 더욱 조심히, 내 마음의 상태와 체력 안배를 잘 고려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반복되는 일정들에 어딘가 계속 공허하고 더욱 헛헛해진 마음만 앞설 뿐이라면 잠깐은 멈춰도 좋다. 약속 몇 번 파투내고 얼굴 좀 안 비춘다고 나의 우주가 전복되거나 무 자르듯 연이 끊기지는 않는다. 때로는 멈춤 버튼을 누르는 거다. 더 돈독하고 건강한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 말이다.


저는 저랑 오늘 약속 있는데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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