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 Ception Oct 31. 2020

De Ception의 시작: 졸업 프로젝트

디자인과 마술의 융합, 배트맨스러움을 말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다양한 학과의 졸업전시를 보면서 나는 항상 이런 다짐을 했다. 언젠가 내가 졸업전시를 하게 된다면, 내 자리에 꼭 배트맨을 세워야지. 그러나 막상 졸업 프로젝트가 다가온 2018년 4학년 때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지도교수님이 정한 6개의 주제 중 하나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준비를 하면 할수록 뭔가 개운치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과거에 한 다짐이 떠올랐다. 


언젠가 내가 졸업전시를 하게 된다면, 난 꼭 배트맨으로 해야지.


두려움이 앞섰다. 배트맨을 주제로 졸업전시를 할 수 있을까? 배트맨은 내가 창조한 캐릭터도 아닐뿐더러 나의 졸업전시인데 나를 표현하는 주제로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교수님이 정해주신 주제 중 하나로 할까? 발표 당일 새벽까지 고민은 이어졌고 결국 마지막에 결심했다. 그래 배트맨을 하자.


졸업 프로젝트 주제를 발표하는 데 사용한 포스터 (2018) 

뭔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배트맨이 그려진 포스터를 붙였던 기억이 난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배트맨을 주제로 졸업 전시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기억이 난다. 모두의 발표가 끝나고 각자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교수님이 나에게 말했다. "하고 싶죠? 그럼 가슴이 뛰는 걸 하세요." 






그렇게 나는 군대에서 제작한 배트맨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배트맨 카드로 졸업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 군대에서 이미 만든 것 아니냐, 배트맨 카드는 너무 시각 디자인 분야(본인은 산업디자인학과였다)에 치중된 주제가 아니냐 등등 회의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그러나 디자인과 마술의 융합을 보여주기에 그리고 내가 쌓아온 경험을 녹여내기에 배트맨 카드, 배트맨 마술이 가장 적합했다. 카드를 모아 오면서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직접 마술을 보여주며 느꼈던 경험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환점: 교수님과의 마술


시간이 흘러 중간발표 시간이 되었다. 각 팀별로 자신의 중간과정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 발표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작은 마술 공연을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모든 인원이 내 발표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을까? 단순히 마술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것을 누가 보고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나는 교수님에게 마술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관객이 고른 카드의 뒷면이 사라지는 마술을 시연 중이다.

교수님이 이 마술의 주요 인물이 되자 모든 사람들이 집중했다. 교수님이 카드를 고르고 그 카드가 덱 속에 들어간 뒤 카드를 섞어 고른 카드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된다. 교수님께 덱을 건네고 "교수님이 고르신 카드 기억하시죠? 그 카드의 뒷면이 사라진다고 상상해주시면 됩니다." 잠시 뒤 카드를 확인하자 교수님이 고른 카드의 뒷면만 사라졌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교수님은 즐겁게 즐겨주셨고 교수님의 웃음은 그곳에 있던 모두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진짜 마술이었다. 모두가 내가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고 그 결과로 인해 모든 인원의 긴장이 해소되며 즐거움을 느낀 바로 이 순간이 내가 모두에게 전달하고 싶은 진짜 마술 경험이었다.   


이 발표는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이후 이어지는 모든 발표에서 교수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내 발표에 집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친구는 오늘 또 무엇을 보여줄까? 저번처럼 마술일까? 오늘은 또 어떤 즐거움을 줄까? 나 자신도 변했고 다른 사람들도 변했다. 진짜 마술 아닌가?  




전시 퍼포먼스: 긍정적인 경험을 이어가다


De Ception 프로젝트 졸업전시 다이

전시 다이에서도 마술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동굴 속에 박쥐가 매달려있는 것을 표현함과 동시에 허공에 카드가 떠있는 느낌을 주고자 보이지 않는 실로 카드를 매달았다. 또한, 내가 자리에 없을 때를 대비해 관람객이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카드를 배치했고 배트맨 마술 영상을 준비했다. 


전시에 방문한 마술 동아리 후배들에게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 기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리를 지키며 관람객에게 배트맨 마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산업디자인학과의 전시에서 마술이라는 콘텐츠를 접한다는 것은 관람객에게 의외의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믿었고, 졸업 프로젝트를 하며 마술이 가진 힘을 다시금 깨달았기에 이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전시 기간에서 했던 마술 퍼포먼스는 내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마술을 보여준 경험은 있었지만, 나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진행하는 마술 퍼포먼스는 처음이었다. 또한, 같은 퍼포먼스를 그렇게 많이 반복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전시장에 방문한 관람객에게 배트맨 마술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있다. 같이 졸업전시를 준비한 다른 팀의 인원들이 각자의 지인과 가족을 데려와 나에게 배트맨 마술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그들이 마술을 보며 느꼈던 즐거움을 자신의 지인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 정말 기뻤다. 






졸업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전시 과정을 통해 배트맨 마술의 즐거움이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 같아 좋았다. 아직도 처음 배트맨을 주제로 발표하는 순간의 떨림과, 처음으로 교수님께 마술을 보여준 순간의 떨림은 생생히 기억난다. 나의 틀을 깨는 것은 정말로 두렵고 힘들었으며, 그것을 행하는 동안에도 많은 고민과 의지가 동반이 되어야 했다.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나 자신이 세운 규칙을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순간도 있었고, 디자인이 막혀서 진행이 되지 않았던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매 순간 변하지 않았던 것은 배트맨을 주제로 끝까지 가겠다는 내 결심이었다. 정말 힘들었던 순간에도 나를 지탱해준 것은 배트맨이었다. 그렇게 1학년 때부터 꿈꿔온 순간이 이루어졌다. 나에겐 이것이 진짜 마술이다.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이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이것은 이후 배트맨 카드를 실제로 제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대학교를 벗어나 더 큰 사회로 나아가는 내 첫걸음이 되었다.

이전 03화 디자인과 마술의 융합: 배트맨 카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