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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 Ception Oct 29. 2020

디자인과 마술의 융합: 배트맨 카드

나의 배트맨, 배트맨 카드

2015년 11월 군입대를 했다. 군대라는 장소는 '나'라는 존재를 가정에서, 사회에서, 일상에서 분리시키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 바꿔 말하면 기존의 나의 세상과 편견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인식하고 탐구하게 만들었다. 모든 편견과 틀에서 자유로워진 나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디자인을 하고 싶은가? 마술을 하고 싶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것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걸까? 고민 끝에 나는 대학교를 다니며 입버릇처럼 말했던 디자인과 마술의 융합을 시도해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무엇으로 이것을 보여주냐는 것이었다.


6살 때부터 좋아한 배트맨, 14살부터 시작한 마술, 21살부터 시작한 디자인


6살 때 큰아버지가 사다준 배트맨 만화 영화를 통해 배트맨을 처음 접했다. 그 시절 내 꿈은 배트맨이 되는 것이었을 정도로 배트맨에 푹 빠져다. 어렸을 때부터 배트맨과 관련된 영화, 만화, 책, 장난감, 제품 등 배트맨과 관계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보고 모아 왔다. 지금까지도 배트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며 내 삶의 큰 일부다. 그렇기에 디자인과 마술의 융합을 보여줄 주제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트맨을 선택했다. 



어째서 배트맨 '플레잉 카드' 인가?


배트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그림 카드 마술은 이미 있었다. 그러나 그림이 그려진 카드 몇 장으로는 1가지 정도의 마술만 보여줄 수 있었다. 일반적인 플레잉 카드의 경우 카드가 54장이 있기에 그것을 활용한 수많은 마술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림 카드는 그러한 다양성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림 카드마술의 장점과 기존 플레잉 카드의 장점을 가진 새로운 카드를 만든다면 어떨까? 기존의 플레잉 카드를 활용한 마술도 보여줄 수 있으면서 동시에 배트맨 마술을 보여줄 수 있는 배트맨 플레잉 카드를 만든다면? 이 생각에서 배트맨 카드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나는 마술을 시작하기 전에 다양한 플레잉 카드를 모으는 컬렉터였고, 14살부터 지금까지 약 150여 종의 카드를 모았다. 모았던 카드로 마술을 연습하고 보여주며 카드 마술에 용이한 디자인 요소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앞서 경험한 요소를 기반으로 배트맨 카드를 디자인해나갔다. 



1. 뒷면 디자인: 카드의 틀을 유지함과 동시의 마술 기능을 담다

먼저, 마술 카드의 뒷면 디자인에 필요한 두 가지를 설명하겠다. 왼쪽 카드를 보면 흰색 테두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border라고 한다. 대부분의 카드에는 이 흰색 테두리가 있는데, 이것이 없으면 보여주기 힘든 마술이 상당히 많다. 그렇기에 배트맨 카드에서도 보더가 있어야 할 공간은 비워두었다. 오른쪽 카드를 보면 디자인이 대칭임을 알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게임용 카드는 뒷면이 대칭이다. 플레이어가 카드가 뒤집어져있는 것을 통해 카드를 구별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동시에 대칭인 것이 보기에도 더 편하다. 


배트맨 카드 뒷면 디자인 스케치 (2016)

앞서 말한 보더의 존재와 대칭을 유지하면서 작은 마술 기능을 추가했다. 오른쪽 카드를 자세히 보면 배트맨이 눈을 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활용하여 간단한 마술을 보여줄 수 있다. 관객이 카드를 한 장 고른다. 마술사는 카드를 돌려받고 카드를 섞는다. 이제 배트맨이 관객이 고른 카드를 찾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하며 카드의 뒷면을 확인하다 보면 눈을 뜬 배트맨 카드가 있다. 그 카드가 바로 관객의 카드다!




2. 왕족 카드: 카드의 기능을 고려한 아트워크의 사용


플레잉 카드 1 덱은 보통 조커 2장을 제외한 총 52장으로 구성되어있으며, 12장의 왕족 카드와 2~10까지의 숫자 카드, 그리고 Ace 4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때, 모든 카드에 아트워크가 들어갈 경우 카드를 구별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이에 따라, 왕족 카드와 조커에만 아트워크를 사용했다. 


배경과 실루엣: 만화책 속 칸 레이아웃에서 영감을 받다

일반적인 왕족 카드의 경우 왼쪽 이미지처럼 사각형 틀 안에 아트워크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나에게는 꼭 만화책 속 칸으로 된 레이아웃을 연상시켰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배트맨 세계관 속 캐릭터들을 그들의 실루엣과 그들과 관계된 배경 요소를 칸에 집어넣는 것을 통해 아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백지 카드에 그린 배트맨 왕족 카드 스케치 (2016)
배트맨 카드 속 배트맨과 고든 청장




3. 숫자 카드: 박쥐를 활용한 포인트 적용

모든 카드에 배트맨 관련 아트워크를 적용하지는 않았으나, 숫자 카드에서도 배트맨의 느낌이 나길 바랐다. 그렇기에 2~10까지의 숫자 카드에는 박쥐가 문양 하나를 물어가는 모습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배트맨 플레잉 카드 (2017)

최초의 배트맨 카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기존의 카드 마술을 보여주는데 지장이 없으면서 동시에 그림 카드 마술과 같이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나만의 카드가 탄생한 것이다.  


군 복무를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스케치를 하고 휴가를 나와 디지털라이징을 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배트맨을 정말 좋아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아마도 이때부터 배트맨으로 무언가를 꼭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뚜렷해진 것 같다. 


물론, 이 시기에는 바로 이어서 이 작업을 발전시켜갈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졸업하고 나면 배트맨 관련 작업을 해보거나 관련된 일로 취업을 하고 싶다 정도였다. 그러나 배트맨 카드는 나를 바로 다음 프로젝트로 나아가게 했다. 나의 졸업 프로젝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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