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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 Ception Oct 29. 2020

마술을 통해 나를 말하다

표현의 수단: 그림 카드 마술

14살 정도였던 것 같다. 마술을 시작하게 된 시기가. 마술사의 마술을 보고 신기해서, 마술을 배우고 싶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 시기에 나는 플레잉 카드(트럼프 카드)를 모으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문제는 많은 카드를 모았는데 그것으로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친구들과 카드 게임을 하려고 해도 학교에 가져오면 도박을 한다는 명목 하에 뺏어가기 일수였다. 그렇게 카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찾던 중 우연히도 마술을 배운 전학생이 전학을 왔다. 덕분에 카드 마술을 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마술은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모교의 마술동아리에 가입했다. 중학교 때 마술을 알려주던 친구와는 고등학교를 가면서 떨어지게 되었고, 주변에 마술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거나 마술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지라 독학으로 마술을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동아리에 들어가서 여러 사람의 마술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같은 마술을 보여줘도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고 정말 다양한 마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마술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마술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마도 그 시기가 처음으로 나만의 마술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게 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나만의 마술, 그림 카드 마술


그렇게 내가 관심 있어하고 좋아하는 소재를 마술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백지 카드에 그림을 그려 마술을 보여준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일반적인 카드로는 표현하기 힘든 이야기나 소재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 그림 카드 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림 카드 마술의 장점: 제스처, 캐릭터, 스토리텔링


제스처: 다양한 연기로의 확장
와인 패킷 트릭 2015년에 제작

그림 카드 마술의 장점 중 하나는 마술을 하는 도중에 할 수 있는 제스처가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비어있는 잔 카드에 와인으로 채운다고 할 때 빈 와인잔 카드에 병 카드를 따르는 모습을 통해 이를 표현할 수 있다. 차 있는 잔을 빈 잔으로 바꾸고 싶을 때 마술사가 와인을 마시는 연기를 통해 차 있는 잔 카드를 비어있는 잔 카드로 바꿀 수 있다. 일반적인 카드였다면 카드가 바뀌는 현상이었겠지만 그림 카드 마술은 일상의 소재를 끌어옴으로써 현상을 보다 다채롭게 표현이 가능했다.



캐릭터: 나의 페르소나 전달

그림 카드 마술은 나라는 사람의 배경과 캐릭터를 자연스레 반영한다. 당시 나는 미술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동시에 같은 학교의 마술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마술을 한다. 이 행위 자체가 내가 보여주는 마술에 특별함과 진정성을 부여했으며, 그려진 그림은 나의 이미지에 대한 취향과 생각이 담겨 있어 그림 그 자체만으로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스토리텔링: 복잡한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전달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조커 갱단과 경찰의 대결〉 마술을 시연하고 있다 (2019)

조커 갱단이 경찰과 대결을 펼친다. 경찰이 조커의 부하를 잡았다가 놓치고, 조커를 잡았다가도 놓친다.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조커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경찰이 배트맨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배트 시그널을 켠다. 어둠 속에서 배트맨이 등장하여 경찰과 함께 조커 갱단을 모두 잡는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림과 마술 현상을 통해 쉽고 재밌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림 카드 마술, 디자인과 마술의 융합으로 이어지다.


그림 카드 마술은 나에게 마술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마술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하고 연구하게 만들었다. 마술을 통해 단순히 신기한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것을 넘어 내 생각과 이야기를 함께 전달하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와 마술을 결합하는 데에 흥미가 생겼다. 이는 곧 디자인과 마술을 융합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마술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디자인에서 배운 원리를 마술에 적용할 수 있을까? 반대로 마술에서 배운 것을 디자인에 응용할 수 있을까? 둘의 조화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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