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년 전부터 키우던 알로카시아 화분이 있었습니다. 가로 세로가 7*7cm 정도 되는 화분 었는데 알로카시아도 15cm 정도에서 화분의 크기에 맞게, 딱 그만큼에서 성장을 멈추고 겨울도 잘 나고 여름도 잘 견디며 커왔습니다. 큰 화분이 여럿 있어서 알로카시아가 작은 게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기 때문에 분갈이를 미루고 미뤄왔었죠. 그런데 올해 봄. 알로카시아 옆에 작은 아기들이 두 가지나 뻗어 나왔습니다.
더 미루다 보면 엄마와 아기 다 너무 좁은 곳에서 죽을 것 같아 한 달 전에 아주 커다란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었습니다. 문갈이를 해준 지 한 달 정도 지난 지금, 지난 4년 동안 자라지 않았던 알로카시아는 두 배가 되어있었습니다.
단지 조금 넓어진 화분으로 갈아탄 것 밖에 없는데 이렇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알로카시아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엄마인 내가 혹시 우리 아이들에게 7*7cm의 화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크기만큼 혹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기준치에 따라 아이를 다그치거나 더 억압하려고 들지는 않았는지 반성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좁디좁은 내 안의 틀에 무한한 씨앗인 아이를 가둬 키우지 않도록 더 넓어지고 더 믿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나 스스로 내가 사는 세상을 7*7로 규정해두진 않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저는 MBTI를 좋아하지 않아 제가 어떤 유형인지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B형 혈액형의 인간이 아닌 것처럼 특 I라거나 그 사람 완전 F야 라는 말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 유형을 나누면 어떤 게 좋을까 싶어 생각해 보면 나누기 쉬우니 판단을 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그 속에서 안심하거나 그만큼의 시각으로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시각 때문에 그걸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만 그걸 통해 나 스스로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틀을 은연중에 세기는 것이 싫을 뿐입니다.
하늘이 비를 내리고 바람으로 지붕을 날리고 뜨거운 햇볕으로 갈증을 일으킨다고 해서 변덕스럽다거나 모두에게 보이는 하늘이어서 극 외향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늘은 그저 하늘이고 그렇게 변하는 것은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진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진화가 더 멋있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의 틀을 늘려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무언가 루틴처럼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더라, 어떤 차를 가지고, 어떤 곳에서 먹고, 어떤 것을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터를 넓힐 수 있는 사람. 새로운 곳에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의 반경을 넓힐 수 있는 생각과 노력과 믿음이 있는 사람이 성장하고 성공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넓은 세계에서 더 크게 자라고 그만큼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음에도 7*7cm의 화분에서 4년 동안 아무런 성장 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던 나의 알로카시아에게 미안함과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제가 서 있는 스스로의 자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