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를 다쳤을 때
생후 19개월 아기의 체력은 놀라웠다. 한 달 전부터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더니 놀이터 순례를 날마다 하자고 한다. 한여름에도 쉬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행여 아기가 다칠까 봐 늘 따라다녔다. 아기를 따라 놀이터의 좁은 통로를 낑낑대며 기어 다녔다. 아기가 미끄럼틀을 타면 뒤따라 내려왔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기와 달리 나는 점점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쿵!"
"으앙~"
작년 여름 남편 휴가를 맞아 친척 집으로 놀러 갔다. 때마침 사건이 벌어졌다. 식탁의자를 기어올라가던 아기가 미끄러지면서 앞니를 찌었던 것이다. 아기는 몹시 놀라서 울었다. 벌어진 입으로 붉은 피가 보였다. 마른 거즈를 찾아 앞니를 눌렀다. 다행히 흔들리거나 깨진 치아는 없었다. 나 대신 아기를 보고 있던 남편에게 눈을 흘겼다. 남편도 머쓱하고 걱정하는 눈길로 아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갑자기 벌어진 일에 얼음이 되었다. 모두들 아기만 바라봤다.
아기는 오랫동안 울었다. 좋아하는 스마트폰 동영상을 틀어주니 훌쩍 거리는 정도로 울음소리가 줄어들었다. 앞니에 흐르던 피는 금방 멈췄다. '얼마나 아팠을까...' 피를 보고 놀라고 걱정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기가 진정되자 부루펜시럽을 먹였다. 우느라 땀으로 온몸이 젖었던 아기는 달달한 시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아기를 자리에 눕히고 처음에 아기가 넘어졌던 곳을 살펴봤다. 나무의자에 앞니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새벽 4시 아기가 자다 깨서 울기 시작했다. 고요한 밤을 깨우는 아기 울음소리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일어날 것 같았다. 이가 아프고 놀랐던 기억 때문이었으리라... 다시 한번 해열진통제를 먹였다. 이번에는 동영상으로도 울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잠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 남편과 옷을 입고 동네 놀이터로 향했다. 아기는 좋아하는 놀이터로 나가니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며 해맑게 웃기도 했다.
다음날 아기 입은 부어올랐다. 과장을 하자면 마치 오리주둥이 같았다. 치과를 다녀와야 할지 고민을 했다. 이가 흔들리거나 잇몸 색이 변했으면 바로 병원에 가려고 했다. 아기는 전날 밤처럼 울지도 않았고 컨디션이 좋았다. 사촌 언니들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놀았다.
전날 저녁의 일을 모르셨던 어머님은 아기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쪄오셨다. 아기의 잇몸이 부어있는 상태라 자극이 될 것 같아 먹일 수는 없었다. 옥수수를 먹고 싶은 사람들은 숨어서 아기 몰래 먹었다. 대신 아기에게는 죽을 먹을 줬다. 음식을 평소보다 작게 잘라주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였다. 하루가 지나서 아기는 죽보다는 밥을 원해서 밥을 먹였고 음식을 먹고 씹는 것에 별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칫솔질을 당분간 하지 않고 대신 밥이나 간식을 먹은 뒤에는 물로 입을 헹구게 했다. 1주일쯤 지나자 아기 입은 평소대로 돌아왔다.
아기는 자라 31개월이 되었다.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다. 그래도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다쳤던 시기는 좀 지났다. 아기가 29개월쯤 되니 혼자서 놀이터 미끄럼틀에 올라가고 내려왔다. 지금은 놀이터 아래에서 아기가 노는 것을 지켜본다. 아기가 자라니깐 엄마의 서있어야 할 위치가 달라지는 것 같다. 아기는 자란다. 걱정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