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성을 의심하다

그때 내가 <몬스터 콜스>를 읽었더라면

by 허경심


조리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이가 심한 황달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황달수치를 재고난 간호사는 황달 수치를 보고 놀라며 입원을 서둘렀다. 아이 피부가 노랗다고, 황달 아니냐며 나에게 매일 걱정스럽게 말씀하시던 시부모님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유난을 떠신다 생각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아이 입원수속을 하는데 담당의사가 서명을 하라며 내 준 서류에는 온갖 무서운 말들만 무성했다. 모유한번 제대로 먹여보지도 못했는데 꼬박 일주일을 넘게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가슴이 무너졌다. 아이를 입원실에 놓고 조리원으로 복귀하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그런데 너무나 어이없게도 나는 아이 없이 조리원 생활을 하면서 홀가분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때맞추어 수유를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자고 싶을 때 자도 되니까. 또다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되어서 아이가 입원실에 있는데 그게 홀가분하다니. 이런 내가 너무 위선적이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엄마가 이럴 수가 있을까? 나는 엄마의 자격이 없는 것 아닐까? 나는 모성이 없는 것 아닐까?

식당에서 산모들과 아침을 먹는데 맞은편에 앉은 엄마가 말했다.

“전 애 낳고 너무 힘들어서 애가 꼴도 보기 싫더라고요. 지금도 보기 싫어요.”

다들 아무 대꾸가 없다. 겉으로 보아서는 어떻게 엄마가 돼서 저런 말을 하나 싶은 표정들 같았다. 나의 표정도 같은 표정이었을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나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무서웠다.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하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 당장 몸이 편하다고 홀가분함을 느끼는 내가 뼛속부터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괴로웠다.


뜬금없이 덴마크의 유명한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안티 크라이스트>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주인공이 남편과의 섹스 중에 오르가즘을 느끼는 찰나 여주인공의 눈에 아장아장 걷는 자신의 아들이 창문 밖으로 떨어질 위기를 마주한다. 보통의 엄마들 같으면 앞뒤 보지 않고 아이에게 달려갔겠지만 그녀는 오르가즘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는 창밖으로 떨어져 죽는다. 여자로서 굉장히 찝찝하고 기분 나쁘고 너무 충격적으로 남았던 그 여주인공이 꼭 나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나의 생각은 계속해서 비약적으로 또 자학적으로 흘러갔다.


만약 내가 그때 <몬스터 콜스>를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주인공 코너가 겪은 아픔과 상처를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코너가 몬스터를 통해 진실을 마주한 용기를 나도 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갈 수 있다면 이 책을 꼭 권해주고 싶다.

<몬스터 콜스>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를 둔 코너가 몬스터를 통해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며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열 세 살 난 코너는 자주 악몽을 꾼다. 엄마가 낭떠러지 끝에 있다가 떨어지는 꿈이다. 늘 자신이 엄마의 손을 잡지만 놓치고 만다. 암에 걸린 엄마, 학교 친구의 괴롭힘, 이혼 뒤 다른 가정을 꾸린 아빠. 어느 곳 하나 마음 둘 곳 없는 코너에게 어느 날 몬스터가 나타난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는 권선징악도 아니고, 선과 악의 대립도 아니고, 인과응보도 아니다. 우리가 알던 동화 속 이야기 같지만 하나같이 아이로써 받아들이기 힘든 결말이다. 몬스터는 엄마가 죽을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코너에게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를 직접 완성하라고 한다. 네 번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코너가 자주 꾸던 악몽이다. 엄마의 손이 코너의 손에서 미끄러지며 결국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이 코너 앞에 펼쳐진다.

몬스터가 말한다.

“이게 진실이다. 너도 그 사실을 안다. 네가 엄마를 놓았다.”

몬스터의 말에 발악하며 코너가 아니라고 말한다. 엄마가 떨어진 거라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평생 이곳에 갇혀 살아야 한다.”

“진실을 말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여기 영원히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라고 다그치는 몬스터 앞에 결국 코너는 고백한다.

“엄마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도 견딜 수가 없었어! 그저 끝나길 바랐어! 다 끝나길 바랐다고!”

“내가 엄마를 놓았어. 붙잡을 수 있었는데 놓아 버렸어.”

사실은, 진실은 악몽 속에서 코너가 엄마의 손을 놓은 것이었다. 엄마가 죽는 걸 바라지 않지만 한편으로 엄마가 빨리 죽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기에 견딜 수가 없었기에. 코너는 몬스터에게 이 진실을 말하자 마음이 편안해 진다. 자신의 두 가지 마음을 모두 인정했을 때 엄마의 죽음 또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를 보내기 싫어요.”

사람은 누구나 양가감정을 느낀다. 그 상반된 감정 중 하나만 택할 필요가 없다. 내가 엄마의 아들인데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돼, 내가 엄마인데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돼. 이런 생각은 코너가 느낀 것처럼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내가 이런 감정도 느끼고 저런 감정도 느끼는 구나’ 하고 그냥 인정하면 된다. 우리는 부모의 자식이기 전에, 엄마이기 전에 그저 온전한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코너가 자신의 양가감정을 인정하고 받아 들였을 때 엄마의 죽음을 인정할 수 있었고 자신의 진실을 더 마주 할 수 있었다. 엄마를 보내기 싫다는 것,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코너의 진짜 속마음이다.

수년 전 산후조리원에서 힘들어하던 나는 이제 안다. 어떤 엄마이든 모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 안의 진실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걸 이제 안다.

자신의 모성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를 엄마들에게 몬스터가 코너에게 해준 말을 여기에 옮겨 본다.


삶은 말로 쓰는 게 아니다. 삶은 행동으로 쓰는 거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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