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을 겪다

by 허경심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매일 아이와 씨름한다. 소변으로 퉁퉁해진 기저귀를 갈아준 지 얼마 안 지나 아이는 똥을 싼다. 똥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겨우 한숨 돌리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는 운다. 젖을 물린다. 젖을 먹고 나면 자야 할 텐데 안 잔다. 내려놓으면 울고 안아주면 그친다. 한참을 안고 얼러주고 놀아주다 보면 어느새 기저귀가 퉁퉁해져 있다. 다시 기저귀를 갈아준다. 아이가 운다. 젖을 물린다. 이번엔 좀 자나 싶어 침대에 내려놓는다. 또 운다. 안아준다. 똥을 싼다. 엉덩이를 씻기고 새 기저귀로 바꾼다. 젖을 물린다. 어느새 해가 진다. 하루 종일 아이 얼굴만 바라보니 내 얼굴이 아이 얼굴인지 아이 얼굴이 내 얼굴인지 분간이 안 된다. 이런 걸 일컬어 호접지몽이라고 하는 건지 긴가민가하다. 밤에는 1시간에 한 번씩 깨어 운다. 그때마다 젖을 물린다. 단 세 시간만이라도 연속해서 자고 싶다는 소망을 갖는다.


매일 반복되는 이 모든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포유류의 대부분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걸어 엄마 젖을 문다. 사람은 달랐다. 아이는 단 1%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게 충격이었다. 온전히 나에게 의존하는 존재. 그 존재가 신비하고 버거웠다.

한편 이렇게 약한 존재, 너무나 작은 존재가 한순간 어떻게 될 까 봐 너무나도 불안했다. 매일매일 불안한 마음속에 지내다 꿈을 꾸었다. 아기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숨을 쉬지 않았다. 너무나 놀라 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으아앙~”

아이 울음소리에 어안이 벙벙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고 있던 아이를 안아 들었던 것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져 보긴 처음이었다.


1시간에 한 번씩 깨어 젖을 물리는 생활을 5개월째 하던 어느 날이었다. 나의 육체와 정신은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할 만큼 피폐해져 있었다. 잠이 들려던 찰나 아이가 울어 재쳤다. 젖을 물려도, 얼러줘도 소용없었다. 아이는 계속 울어댔다. 우는 아이를 아기띠에 안아 들고 그만 폭발해버렸다. 이 악몽 속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절규했다. 비명 소리에 놀라 아이가 나의 쇄골에 부딪혔다. 아이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문득 베란다에 보이는 기다란 빨래 걸이를 보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래걸이는 튼튼했고 내 발이 닿지 않는 높이에 위치해있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 집단은 환경에 적응하는데 유리한 유전형질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불리한 형질은 사라지게 된다. 즉 생물은 처한 환경에 맞게 잘 살 수 있도록 변해간다는 말이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막여우와 북극여우의 귀 크기 차이가 그것을 증명한다. 코주부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들에게 먹을 것을 뺏기자 안 익은 과일만 먹는 것으로 진화했다. 이들은 익은 과일을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서 사망한다.

이러한 진화는 종족 보존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환경에 적응해 잘 살아야 종족보존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진화론에 맞지 않는 생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열대어 구피와 사람이다. 구피는 출산하고 자기 새끼를 잡아먹는다.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면 보호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자식을 잡아먹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구피는 왜 이렇게 진화한 걸까?

구피는 보통의 어류와 달리 알에서 부화하는 게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난황을 뚫고 나와 헤엄친다. 그때 새끼가 어미의 눈에 보이면 바로 잡아 먹힌다. 어미뿐만 아니라 다른 성어들 또한 치어를 잡아먹는다. 결국 끝까지 버티는 치어가 살아남는 것이다.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구피는 살아남는 방법을 ‘도주’로 택했다. 어차피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에 도주 기술이 가장 좋은 개체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다.


대부분의 산모는 출산 뒤 뇌신경전달 물질의 불균형과 급격한 호르몬 변화, 아기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걱정 등으로 인해 산후 우울감이 생긴다. 우울감이 지속되면 산후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산모 10명 중에 1~2명이 앓게 된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슬픔과 무기력감, 불안감, 조급증 등이 있다. 그러한 증상들은 누가 봐도 아이를 키우는데 엄청난 장애물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왜 출산 뒤 우울증이 생기도록 진화된 것일까? 아이를 잘 키우려면 기쁘고, 활력 있고, 편안하고, 여유로워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오히려 ‘우울증’이 아니라 ‘조증’으로 진화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진화 심리학에서는 산후 우울증이 자손 번식을 결정하는 데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출산한 엄마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다음 자손을 번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엄마가 처한 환경과 상황이 아이를 키우는데 적합하지 않을 때 또 다른 자손을 만드는 것은 지금의 아이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화 심리학대로라면 출산 뒤 나의 환경과 상황은 최악 중에 최악이었나 보다. 나는 지금까지도 또 다른 자손 번식은 하지 않고 있다.


산후 우울증은 아이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표면적으로는. 이후 내가 겪은 마음의 병들은 어쩌면 당시에 덮어 두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 결과 일지 모르겠다. 혹은 더 나아가 어린 시절에 덮어둔 감정일지도.

어쨌든 그렇게 힘든 시간들은 또 지나갔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나날들은 찰나의 감정과 장면으로 남았다. 모유는 영원히 먹이는 게 아니었고, 아이는 영원히 1시간에 한 번씩 깨는 게 아니었다. 온전히 나에게 의지하던 아이는 오히려 나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있다.


출산 후 우울감 혹은 우울증으로 힘든 엄마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우울한 게 당연한 거라고. 내 몸이 다 회복 되기도 전에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온전히 책임지고 돌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진 일상을 만나는 것,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 그러한 현실 앞에서 우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아무리 책이나 영상을 보고 배워도 내가 직접 경험하는 건 너무나 다르다. 그러니 인정해야 편하다. 내가 우울한 건 당연한 것이고, 내가 아이를 돌보는 데 서툰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그리고 그 상황과 감정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위기를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영원하지 않다.

당시 자주 베란다 빨래걸이를 보며 무서운 상상을 했다. 나 같은 경우는 전문가의 상담이 꼭 필요했던 경우였다. 그러지 못해 너무나 힘든 시간를 보냈다. 만약 이런 상상을 자주 한다면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그때 만약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면 나는 또 다른 자손을 번식시켰으려나 하는 상상.


산후우울 검사 참고하세요. 혼자서 힘들어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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