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우연히 미셸 오당의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출산>이란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책인데 그 내용을 읽고 어찌나 감화되던지 나는 그만 책 내용에 푹 빠져버렸다.
자연주의 출산이란 의학적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며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때에 가장 편안한 방법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주의 출산의 한 예로서는 수중분만을 들 수 있다. 수중분만은 2000년 SBS 신년특집 <생명의 기적>에서 뮤지컬 배우 최정원의 수중분만이 방영 된 이후로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개그우먼 정주리, 배우 이현경 등도 수중분만을 했고, 수중분만을 선택하는 일반인도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양다리를 분만대에 올리는 자세는 산모를 위한 자세가 아니라 의사 편의를 위한 자세라고 한다. 이 자세는 남자 의사가 분만실에 처음 들어가 조산사의 역할에 임했던 17세기 프랑스에서 유래된다. 그렇게 했을 때 의사가 겸자(아기의 머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한 집게)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세는 출생물리학적으로 아기와 산모에게 가장 나쁜 자세라고 한다. 엄마가 등을 대고 누우면 자궁이 주요 혈관을 누르게 되어 오히려 출산을 어렵게 만든다. 사실 출산을 할 때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면 아이가 잘 나올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단다. 실제로 나는 옆으로 웅크리고 누웠을 때 힘주기가 훨씬 수월했는데 의사는 자꾸 똑바로 누워야 한다고 했었다.
아이가 태어나 밖으로 나왔을 때 너무 밝은 조명과 요란한 소음은 아이를 놀라게 한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뱃속은 아주 깜깜할 텐데 나오자마자 서치라이트가 비추는 환경에서 아이는 얼마나 눈이 부실까.
나는 미셸 오당의 책을 읽고 출산에 대한 환상을 그렸다. 나는 꼭 재왕절개가 아닌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아야지. 인위적인 무통주사는 안 맞겠다고 해야지. 의료진에게 아이가 나올 때 조명을 줄여 달라고 말해야지.
출산에 대한 환상을 깨다
양수가 적어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분만 날짜를 일주일 앞 둔 날 아침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진진통인지 가진통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무지하게 아팠다. 신랑은 출근했기에 가까이 살고 계시는 시부모님께 연락해 병원에 갔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배가 안 아팠다. 하지만 의사는 오늘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그길로 나는 입원수속을 하고 유도분만 주사를 맞았다. 참을 만 했다. 얼마 뒤 간호사가 약의 강도를 높였는지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심호흡을 하며 견디려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이런 고통이라니! 언젠가 지인이 진통은 생리통의 천배는 더 아프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고통이었다. 반나절이 지났을까. 의사는 반 죽어가는 나를 보더니 오늘은 도저히 분만이 힘들겠다며 내일 다시 시도하자고 했다. 아니 이게 무슨! 그렇게 나는 텅빈 병실에서 혼자 밤을 세웠다. 진통은 유도분만 주사를 맞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왔다. 허리가 두동강 나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정말 칼로 내 몸통을 두동강 내는 듯한 느낌! 밤새 진통을 하고 나서 나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저, 그냥 수술 시켜주세요!”
자연주의 출산이고 뭐고, 조명을 줄이든 말든 그냥 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그러나 너무나 감사하게도(당시에는 절망했지만) 간호사님은 자연분만을 권했다. 의사 선생님 또한 큰 힘이 되어 주셨고 나는 자연분만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간호사님과 의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수술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유도 분만을 시작하고 9시간 만에 아이를 만났다. 아이가 나오는 동시에 진통은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밖에서 기다리던 시부모님과 우리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TV에서 아이를 낳은 엄마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많이 봐 왔다. 나는 그런 감격의 눈물 따위는 나지 않았다. 그저 출산의 과정이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엄청난 고통과 분만대에 양 다리를 올리고 있는 나의 모습, 얼굴의 있는 핏줄이 모두 터져버릴 듯이 힘주는 나를 여러 명의 의료진이 지켜보는 광경만 자꾸 떠올랐다.
내가 아이를 출산한 병원은 모자동실로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보통의 병원은 아이를 신생아실에서 따로 돌보지만 이곳은 신생아실이 아예 없었다. 아이는 목욕과 각종검사를 마치면 바로 엄마와 함께 지낸다. 아이가 검사를 받는 동안 나는 병실로 가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은 천근만근 너무나도 힘든데 눈만 감으면 출산의 현장이 트라우마처럼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다 겨우겨우 잠이 들 무렵 검사를 마친 아이를 간호사가 데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작은 침대가 보였다. 아이의 침대가 높아 나의 시선에서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망설였다. 그렇다 나는 망설였다. 얼른 일어나서 아이를 봐야하는데 그냥 자고 싶었다. 엄마가 이래도 되는 걸까? 엄마가 돼서 어떻게 아이를 볼 생각도 안 할 수가 있어? 엄마라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찰나의 죄책감을 느끼며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내 품안에 안아들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