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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언 Mar 28. 2023

쓰이고 쓰는 사람

나는 쓰이는 사람이자, 쓰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위해 쓰이는 사람이자, 못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약간 덧붙이자면, 단맛이라곤 조금도 없는 쓴 사람이기도 하다.


별 볼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여긴 나를, 언제부턴가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집 안, 침대 위에서 보낸 이 년이란 시간. 모두에게 내려진 세월의 공백은 어쩌면 성찰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기 위해 여덟 시간을 보낸다. 아니, 오롯이 쓰여진다. 빈 시간이라곤 조금도 용납되지 않은 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때때론 목이 아려오기도 한다. 노동의 결과로 남는 것치곤 꽤 퍽퍽하다.

허나, 육체의 고통이 달갑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나를 쏟았다는 증거가 남은 셈이니 말이다.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들이켜고선 집으로 향한다.

소파에 앉아 멍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잠시. 곧장 책상에 앉는다. 쓰여지는 게 아닌, 쓰는 존재가 되기 위해.


글을 쓴다. 아니, 뱉는다. 아픈 심경을, 아린 마음을 있는 힘껏 담아 본다.

본디 내가 어떤 존재인지 되뇐다. 슬픈 존재인지. 슬픔을 알아가는 존재인지 생각한다.


본질을 파헤칠 때마다 손톱 아래가 쓰라리다.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입 안은 쓴 맛으로 가득 찬다.


지금의 쓴맛은 무엇을 위함일까. 이 모든 게 다디단 미래를 위한 하나의 과정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미래는 언제일지, 오늘도 예상해 본다.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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