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이 한창이다.
덥석 과일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혀끝의 달콤함 보단 통장 잔고 앞자리를 더 중요시 여기는.
통장 앞자리는 숫자가 아닌 '이 돈이면'이란 숨이 턱턱 막히는 글귀로 쓰여 있다. 애써 무시한 채, 잔고를 셈한 들 무엇할까. '이 돈이면'으로 시작된 계산은 매번 '나중에'로 귀결된다.
'나중에'는 내가 나를 달래는 가장 쉽고 가벼운 단어다. 하지 않겠다 못 박기엔 너무 박하고 지금 하기엔 지갑 사정이 편치 않으니 말이다.
나중에.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언젠가 하긴 할 건데 지금은 아니야. 잠시만 미뤄두자. 포기 한건 아니야.
나중으로 미뤄진 일 중 제대로 행해진 것이 몇이나 되는지 세어보자면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 말이 미루는 것이지 실질적으론 포기 선언이나 진배없으니.
뱉는 나도 듣는 나도 '나중에'가 참으로 기약 없는 공수표임을 잘 알고 있다. 짜고 치는 고스톱 뭐 대충 그런 느낌이지 아마.
그래도 하지 않겠다 선을 긋는 것보단 낫다 애써 위로한다. 아예 하지 않으리라 선을 그어버리면 적잖이 비참하니.
'나중에'로 미뤄둔 채 포기한 것이 얼마나 많을까. 비단 과일뿐만은 아니니라 감히 단정해본다.
요즘, 나에게 몇 번의 가을이 남아있을지 셈해본다.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많아야 60번. 내가 평균을 까먹는다면 이보다 적겠지.
내년부턴 그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사과 몇 알을 사 먹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될지는 미지수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조차도 내년이란 나중으로 실천을 미루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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