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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언 Jul 14. 2023

내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무료한 시간을 채워보고자 몇 년 전 일기를 읽어본다. 인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한다던데. 일기에 한정, 내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퇴보를 한껏 곁들여.

퇴보라니. 상황을 미화시켜 볼 만한 단어를 꼽아 보려도 도무지 적절한 게 없다. 퇴보 말고선 제대로 된 말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점 역시 퇴보를 여실히 증명해 댄다.

앞자리 3의 나는 앞자리 2의 내가 그저 궁금하다. 저런 어휘는 어디에서 배워 온 것인지, 어쩌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물어보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나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기억을 되짚어 보려도 단서랄 게 없다. 그저 침대에 누워 공상을 많이 했다는 것만 떠오를 뿐.

공상으로 치면 지금도 숨 쉬듯 하고 있건만, 그때와 결이 다르긴 하다. 최근의 공상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의 수단이니까. 로또에 당첨되면 어찌할 것인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반면 과거의 나는 답지 않게도 꽤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댔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철학은 먹고살 만할 때 발전하던데. 그땐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만큼 맘이 편했나 보다. 부럽게도.

어릴 적 보던 만화 주제곡 가사가 떠오른다. 이 세상 모든 일 다 마음먹기 나름이야. 그렇지. 세상 모든 일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 마음을 제대로 먹기 힘들어서 문제지만.

몇 년 뒤 이 일기를 본 내가 과거의 나를 가엽게 여기길 바란다. 이때 참 불안정했었지, 이 시기를 잘 견뎌낸 덕에 참으로 단단해졌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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