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라는 왜 오케스트라의 가운데에 있을까?

연주자 시점으로 본 고립의 감각

by 서유진


밖에서 내가 비올라 전공이라고 말했을 때, 보통 다음 두 가지 반응 중에 하나를 듣게 된다.


1. “우와~” (그게 뭔지 모르지만 일단 호응해주는 반응)

2. “아, 그 바이올린보다 좀 큰 거?”


-> 맞는 말이라서 나는 그냥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맞다”는 말에는 사실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완전 5도 낮은 C–G–D–A 튜닝의 4현 구성으로,

사운드의 중심축인 중음역(mid-range) 을 담당하는 현악기다.

귀에 꽂히는 바이올린의 높고 화려한 선율과

첼로의 안정적인 베이스 사이에서,

비올라는 화성을 채우고 선율을 잇는 연결의 역할을 맡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음역대는 인간의 음성 범위(약 250~2000Hz)와 겹쳐 풍부하고 따뜻하지만, 동시에 다른 소리에 묻히기 쉬운 음색 특성을 가진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내에서 비올라는 솔로보다

내부 보이싱(inner voice) 을 담당하는 일이 많다.


그렇다면, 왜 비올라는 항상 무대 ‘가운데’에 배치될까


전통적인 독일식 오케스트라 배치에서는 좌측부터 제1바이올린 – 제2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 순으로 배치된다.


비올라는 정확히 고음역(바이올린)과 저음역(첼로)의 사이, 음향적으로 ‘경계선’이 되는 지점에 놓인다.


이 배치는 단순히 시각적 균형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음향적 분산(Spatial Sound Separation) 을 위한 구조다.

고음은 무대 좌측, 저음은 우측으로 퍼지고,

중음(비올라)은 사운드를 고르게 퍼뜨리기 위해 중앙에 배치된다.

즉, 비올라의 위치는 오케스트라 전체 밸런스를 위한 음향학적 선택이다.


하지만, 그 ‘밸런스’ 속의 연주자는?


가운데 있다는 건 양쪽 소리를 정확히 듣고 섬세하게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제1바이올린이 선율을 주도하고 첼로가 리듬을 잡는 동안 비올라는 둘의 간극을 메우며 조화의 매개체가 된다.


그러나 이 역할은 종종 연주자에게

“소리를 내되, 존재감은 드러내지 말라”는 요청으로 다가온다.

소리는 내지만, 청중의 귀에 직접 닿지는 않고

무대의 중심에 있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이 감각은 단순한 중립이 아니라, 정제된 고립에 가깝다.



비올라는 왜 쉽게 묻히는가?


비올라는 태어나길 불완전한 악기다.

바이올린보다 완전 5도 낮은 음역대를 음향적으로 제대로 표현하려면 바이올린의 1.5배 크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비올라는 그렇게 크지 않다.


비올라는 어깨에 올려 연주하는 다 브라치오(da braccio) 악기로, 그 이상 커지면 인간의 신체 구조상 연주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크기와 울림판 구조는 신체 조건에 맞춰 타협된 상태다.

그로 인해 중음역 특유의 울림은 다소 제한되며음색은 온화하되, 명확한 투사력에는 불리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청중은 고음(멜로디)이나 저음(리듬)에 먼저 반응한다.

비올라는 그 둘 사이에서 음악을 연결하지만, 기억에는 덜 남는 소리다. 특히 강한 악기들과 함께 연주될 때 다른 소리에 쉽게 묻히는 특징을 가진다.


나는 그 소리가, 그 역할이 결국 연주자의 감정을 고립으로 밀어넣는다고 느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항상 가운데에 있었지만, 주인공은 아니었고,

그 사이에서 적당히 묻혀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비올라는 감정을 격하게 드러낼 기회가 적다.

그것은 악기의 음향적 특성이자,

작곡가의 의도이며,

전체를 위해 감정을 지워야 하는 연주자의 위치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감정을 안으로 끌어안는 법을 배운다.

고립은 결국,

하나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 방식이 된다.


나는 그 고립까지도 사랑했다.


음악 이론적으로 볼 때, 비올라는 선율을 직접 끌고 가지 않는 대신 보강 화성(enhancing harmony) 이나

선율 연결(line-bridging)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복잡한 화성 구성에서는 감정의 방향을 암시하거나 부조화 없이 이음매를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비올라의 내적 기능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존재로도 불린다.


이 모든 점은 결국 비올라의 존재론적 특징으로 이어진다. 음향적으로, 음악적으로

드러나지 않되 존재해야 하는 악기,

들리지 않더라도 전체 구조를 지탱하는 소리, 그것이 비올라다.


나는 무대를 떠났고,

이제는 소리를 내며 남들에 맞출 필요는 없지만

그때의 감각은 지금도 삶의 많은 장면에서 스쳐 지나간다.


가장 들리지 않는 곳에서

가장 많은 것을 들어야 했던 시절.

그것이 비올라의 자리였고,

내 자리이기도 했다.


***


덧붙이는 이야기


내가 감명 깊게 본 애니메이션 중에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말한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타인을 원하지만, 결국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 명제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비올라를 생각한다.


비올라의 음역대는 성인 여성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며, 그 불완전한 크기와 구조, 항상 중간을 메우는 역할은 우리 인간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 그리고 비올라는 그 불완전함 자체로 많은 사랑

은 아니고 어쨌거나 사랑받고 있다.



비올라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그래서 사랑스럽다.


혹시 여러분이 비올라를 시작하게 된다면, 처음에는 생각한 소리가 잘 나지 않아 답답할 수도 있다.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럴 때 꼭 당신뿐만 아니라, 이 악기 역시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래서 오히려 아름답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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