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좋은데 음악하는 남자는 싫다
무수히 많은 레슨 선생님들께 음악을 배웠으나, 그들의 가르침은 모두 다르고 음악에 대한 철학도 달라서 어린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 깐깐한 선생님들의 철학이 일치하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음악하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 것!‘ 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가르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이건 단순한 남성 혐오도 아니고, 모든 남성 뮤지션을 싸잡아 일반화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 눈에 밟히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무슨 자기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도 된다는 일종의 면허증처럼 휘두르는 사람들.
“나 음악 하는 사람이야”라는 말 속에 자의식, 연민, 감성 소비, 왕자병까지 전부 패키지로 딸려 있는 사람들.
검정치마가 대표적이었다.
한때는 그 감정이 참 담백하고 좋아서 열심히 들었다. 근데 듣다 보면 묘하게 구역질나는 지점이 있다.
가사는 슬픈 척하는데, 까보면 결국 자기가 얼마나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말하고 있다.
모든 여자와의 연애는 결국 자기를 위해 소비되는 장면이고 그걸 음악이라는 언어로 예쁘게 포장해서 대중들에게 던진다.
자기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니면 그 감정 자체보다, 그 감정을 품고 있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감정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나를 자랑하는 말투.
“난 이렇게 슬픈데 너는 모르겠지.” ,
“난 알고보면 되게 섬세하고 깊은 사람이야.”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자기 혼자 콘서트 중이다.
클래식 하는 사람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모 남성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좋았고, 특히 그의 쇼팽 발라드 1번을 들을때마다 거의 항상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열광적인 그의 팬들과는 다르게 연주자 본인에겐 전혀 감정이 안 갔다.
너무나 완벽한 연주, 감히 흠잡을 데 없는 루바토.
하지만 그 연주가 예술학교에 같이 다녔던 남자 학우들에게서 나온다고 의식하면 듣기 힘들다.
엄마 차 뒷좌석에 앉아서 편하게 학교 다니는 온실 속 화초로 자랐으면서, 좁은 연습실에 갇혀 자기가 하는 고생이 가장 힘든 일인 줄만 알고 평생 연습실 창 밖을 내다보지 못하는.
음악하는 남자들아!
제발 네가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너의 정서적 미숙함을 정당화하지 마라. 음악은 어떤 미숙함이나 신념, 너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다.
아픈 예술가 코스프레, 상처 있는 남자 서사,
그거 정말이지 지쳤다. 떡볶이집 배경음악으로도 듣기 싫다.
지금은 그냥 음악만 듣고 싶다.
그 음악이 어떤 사람한테서 나왔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음악하는 남자’라는 타이틀은 음악 앞에서조차 자기를 먼저 내세우는 우스꽝스러운 옷처럼 느껴진다. 예술은 나누는 건데 왜 그들은 계속 자신을 보여주고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는지.
음악은 여전히 좋은데,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음악 속에만 남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