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마디에 연주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by 서유진



악보는 음표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특히 오케스트라 악보를 넘기다 보면, 가끔은 약 100마디 동안 내 파트가 쉬어야 하는 곡도 있다.

악보에는 그저 바 위에 숫자가 적혀 있을 뿐이다. 그 공간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실은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쉬는 마디가 음악 안에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소리를 위한 여백, 다른 악기의 선율을 살리기 위한 조율, 혹은 여운을 마련하기 위해서.

쉼표는 멈춤이 아니라 흐름의 일부로써 다른 음표들을 존재하게 만든다.


쉼 없이 몰아붙이는 음악은 오히려 감정을 전달하지 못한다. 숨도 쉬지 않고 내뱉는 말이 청자의 귀에 닿지 않듯이, 쉼은 음악을 숨 쉬게 만드는 리듬이다.


각설하고, 연주자로서 쉬는 마디에 있을 때 나는 거의 머릿속으로 쉼표를 센다.

4/4 박자라면 하나둘셋 둘둘셋 셋둘셋 넷둘셋…

(어라 근데 72마디를 쉬어야 하네? 이러면 세지 않고 그냥 내 타이밍 전에 나오는 악기나 선율을 기억해두었다가 얌체처럼 듣고 들어온다.)


지금 이 음악이 어디쯤 와 있는지, 내가 다시 등장해야 할 순간이 언제인지를 음악 안의 펄스를 따라 속으로 계산하며 쉰다.


그러다 보면 내 소리가 들어가기 직전, 다른 악기의 음이 더 선명하게 들린다. 내가 다시 시작하기 위해 꼭 들어야 하는 소리다.


음악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 파트만 잘 치는 게 아니라 다른 소리를 정확히 듣고 맞춰야 한다.

쉬는 마디는 나를 지우는 순간이 아니라 나를 다시 준비시키는 공간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도 이런 쉬는 마디가 필요하지 않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주인공이 되지 않고, 그저 다른 사람의 리듬을 듣는 순간. 그런 시간은 무력한 게 아니라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구조다. 실수 없이 제타이밍에 등장하려면 그 이전의 쉼표도 온전히 연주의 일부여야 한다.


나는 한동안 연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음악이 멈춘 건 아니다. 나는 지금 쉼표를 세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가 다시 들어가야 할 그 한 마디를, 지금도 조용히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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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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