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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연 Oct 15. 2020

아침이 좋아졌다

[물감과 타이프]

아침이 좋아졌다. ⓒ서정연


아침이 좋아졌다. 나로서는 놀랄 만한 일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러니까 삼십 년이 넘는 삶을 통틀어 나는 꽤나 격렬하게, 그리고 꾸준히 아침을 싫어해왔기 때문이다. 어째서, 하필이면 왜, 아침으로 하루가 시작되어야 하는가? 뻣뻣하디 뻣뻣한 저 어색하고 경직된 손짓으로부터 나의 하루를 강제로 열어젖혀야만 하는가? 나에게 있어 아침은 늘 차갑기만 하고 새로움을 가장한 채 고개를 치켜드는 그 무엇이었으며, 칠판을 손톱으로 긁었을 때 들리는 날카로운 금속음처럼 매번 나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창밖으로 해가 떠오르면서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광경을 나는 적의에 가득 찬 시선으로 한참이나 노려보고는 했다. 쌀쌀한 아침 공기 속의 첫 햇살이 기묘하면서도 도저히 해석 불가능한 암호처럼 참을 수 없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아침을 향한 나의 혐오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 학창시절과 직장인으로 살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 - 나는 항상 해가 뜨기 직전에 잠들었고 해가 질 무렵에야 느릿느릿 일어나곤 했다.


밤낮이 뒤바뀐 이러한 생활은 나의 삶 전반에 걸쳐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나이를 먹고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 어느 순간부터 그간 아침을 향해 겨누었던 적의를 조금씩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아침을 끔찍하게 싫어하지 않는다. 실은 아침이 좋아졌다기보다는 깊은 밤, 혹은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새벽에 혼자 견디던 적막이나 밤새 방 안을 서성거리던 날들이 지겨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어둡고 고요한 시간들을 내심 두려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처럼 사는 멀쩡한 인생으로의 뒤늦은 편입이란, 어쩌면 아침을 좋아하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무릎을 꿇는다. 투항한다. 아니,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요즘의 나는 아침이 매장의 능숙한 판매 직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체로 친절하면서도 나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지도 않아서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밤이 내보이는 적나라한 밑바닥보다는 적당히 형식적이고 부드러운 아침의 인사에 편안함을 느낀다. 줄곧 아침을 외면해 왔으나 그것이 지닌 전형성 안으로 기꺼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한편으론 몹시 다행스러움을 느끼면서.


아침이 좋아졌다.

이것을 아침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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