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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연 Oct 20. 2020

공부하는 노동자

[물감과 타이프]

내가 갖고 싶었던 일 순위 직업 바리스타. ⓒ서정연


공부하는 노동자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낮에는 몸을 움직이는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위한 돈을 벌고, 밤이 되면 고요히 책상 앞에 앉아 책 읽고 글쓰기에 몰두하는 삶을 꿈꾸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생업을 따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낮에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카프카나 평생을 도서관장으로 일했던 보르헤스까지 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사무직처럼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닌, 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원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에까지 골치 아프게 머리를 쓰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생각도 한몫 했을 거고,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부지런히 땀 흘리고 그에 걸 맞는 대가를 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꿈꿨던 건 이런 삶이었다. 육체와 정신을 분리시켜 각각 낮과 밤에 충실히 기능하게끔 하는 삶.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한 쪽에 비해 우위에 있지 않으며, 그것들이 사이좋게 내 하루의 절반씩을 담당하면서 순조롭게 굴러가는, 단순하면서도 평온한 나날. 땀 흘리고 일한 하루가 지나고 어느덧 깊은 밤이 되면 탁자 위의 램프 불빛처럼 오로지 정신만이 남아 형형히 타오르는, 그런 삶.


불행히도 그러한 인생을 살아내기에 나의 체력이 도저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제로 동네의 작은 카페와 몇몇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해 봤으나 나의 형편없는 체력은 늘 걸림돌이 되었으니까.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에너지가 도저히 남아있지 않았고 힘이 빠질 대로 빠져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든지 잠을 자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몸을 움직이는 일에 평생 종사한다는 것, ‘육체노동자’를 떠올렸을 때 사람들이 갖게 마련인 막연한 걱정이나 두려움으로부터 나 역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몸을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당시에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건 역시, 밤 시간에 존재하는 나의 또 다른 모습 - 혼자 고집스레 묵묵히 공부해 나가는 독학자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던 진지하고 뜨거운 어떤 마음가짐 덕분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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