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 따라 서울 상경

너를 따라가려면 이 낡은 집뿐이더라

by Enero

나는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수능을 마치고 떠난 '내일로' 기차 여행에서 그녀와 처음 만났다. 그녀는 서울에 사는 대학생이었다. 여행 중 맞이한 운명 같은 스토리 덕분인지, 그녀에게서 달콤한 자두향이 나서 그랬는지 나는 이 황홀경에 넋을 놓아 버렸다. 그래서 여행 3일째 되던 날, 그녀에게 고백했고 우리는 한 달 정도 장거리 연애를 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국립대학교에 동시에 합격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내 여자 친구를 따라 서울로 상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살면서 서울에 굳이 갈 일은 많지 않아서 우리나라 수도가 얼마나 큰지, 서울 안에서도 어느 동네가 어떤지, 시세는 어느 정도 되는지 잘 몰랐다.

그래도 강남으로 가면 토익 학원이나 다른 인프라도 잘 되어 있을 것 같아 뭣도 모르고 역삼역으로 향했다.




서울 물가가 그리 비싼 줄도 몰랐다.

창문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고시텔 단칸방이 월에 30만 원은 줘야 했고, 화장실과 창문이 딸린 방은 월에 40만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고작 스무 살 학생이었고, 아르바이트로 시급 3,480원을 받는 입장에서 월 40만 원은 너무 큰돈이었다. 그래서 30만 원짜리 고시원 단칸방에 들어갔다.

그 고시텔은 신기한 곳이었다. 나는 서울이, 그것도 강남구 역삼동에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 건물 3층에는 공용 주방이 있었다. 부엌에 있는 밥솥에는 밥이 항상 채워져 있었고, 김치 같은 기본 반찬은 냉장고에서 자유롭게 꺼내 먹을 수 있었다. 특별한 반찬은 본인 이름과 호수를 찾아보기 표에 적어 붙여 두었고, 가끔 누가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면 소시지를 나눠 먹기도 했다.


나는 학교에 가기 전, 오전 8시마다 3층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내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아침을 먹는 그 시간이면 항상 일을 마치고 돌아온 누나 셋이 있었다.

그 누나들은 짙은 화장이 반쯤 번져 있는 채로 식탁 의자 위에 한쪽 다리만 받치고 앉아 밥을 먹으며 이야길 나눴다. 누나들의 화장과 몸에서 풍기는 향수와 담배, 술 냄새가 뒤섞인 향이 너무 무서워서 나는 그 누나들이 예뻤는지 어쨌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그저 영단어장에 코를 박고 밥만 먹었다.


"야, 오늘 그 XX 진짜 진상이지 않았냐? 그렇게 순진한 얼굴을 해 놓고 진짜 변태야."

"언니, 걔 이 바닥에서 유명하잖아. 나는 절대 그 방 들어가기 싫어."

"아니, 그 연예인 XXX 어제 왔던 거 봤어? 실물 대박!"

자꾸 듣지 않으려고 해도 누나들이 하는 이야기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미성년자였던 나에게는 신선하고 재밌고 너무 자극적이라, 눈만 Voca 영단어장을 보고 있지 귀와 머릿속은 그 '로맨스 진상 손놈'에게 집중했다.

한 번은 누나 한 명이 환기시킨다고 자기 방 문을 활짝 열었는데, 그 비좁은 방에는 높은 구두가 족히 30켤레는 되는 것 같아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튼 이런 환경은 나와 공기가 맞지 않는 듯했고, 왕십리에 사는 여자 친구를 어차피 매일 데려다주고 있으니 차라리 그쪽으로 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왕십리는 교통의 요지인 데다 근처 대학교 학생이 많아서 그런지 세가 꽤 비쌌다.

방금 막 월 30만 원 하는 방에서 나온 나에게 이 역세권 동네는 비참하리만큼 혹독했다. 앞서 말했듯 돈도 없었고, 여자 친구 따라 왕십리에서 집 구하겠다고 엄마한테 돈 좀 달라고 하기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동산 발품을 팔다 겨우 찾은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짜리였다.

일단 가격이 아주 마음에 들었고, 왕십리역 6-1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주택. 내가 고른 그 집은, 초역세권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어둡고 음습한 데다 비가 오면 작은 창문으로 비가 들이닥쳤다. 집 문을 열면 곰팡이 냄새 같은 쿰쿰한 냄새가 났고, 방에 누우면 지나가는 사람 종아리와 또각또각 걷는 발소리가 모기처럼 집 안을 휘저었다. 요즘처럼 이 동네가 그렇게 개발되기 전이었으므로 골목은 어두웠고, 한양대나 근처 학교에 다니는 술 취한 대학생들 덕분에 밤낮없이 취객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전에 살았던 창문 없는 고시원보다는 나은 환경이었고, 서울에서 이보다 나은 환경을 갖춘 집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만족했다. TV와 플레이스테이션이 있고, 여자 친구 집에 데려다 주기도 딱 알맞은 곳이라 일단 그 집에 사는 나는 불만스러울 게 없었다.


당시 내 여자 친구는 결국 그 집에 딱 한 번 왔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녀는 꽤나 충격받은 모양이었다. 그 동네 토박이로 아파트에만 쭉 살았던 그녀는 뒷동네에 이런 면모가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듯했다. 아무리 30만 원짜리 방이라 해도 보통 자기 주변 대학생들이 사는 원룸 정도는 될 거라 착각한 그녀는 딱 한 번 우리 집에 온 뒤 다시는 오지 않았다.


대신 홍대에서 자취하던 내 고향 친구 놈만 우리 집에 그렇게 찾아왔다.

둘이 밤새 플스를 하고 병아리인지 튀김옷만 대충 입혀 튀긴 건지 모를 말라비틀어진 6,000원짜리 치킨을 먹으면서 좋다고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 집이 우리 집보다 훨씬 좋았는데, 걔는 왜 그렇게 우리 집에 왔는지 모르겠다.


결국 그 여자 친구와는 내가 입대하면서 헤어졌다.




그 후 나는 서울에 계속 살면서 졸업 후 취업까지 했다.

그 사이 나는 그 반지하 방을 벗어나 신림동 한 빌라의 3층짜리 원룸, 송파에 위치한 신축 빌라 10층에 위치한 투룸 그리고 다시 왕십리 인근으로 돌아와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내 거취를 옮겼다.


6-1번 출구. 서울에 산 14년 동안 여기저기 많은 전철역에 들렀지만 '6-1'이라는 출구 번호는 왕십리역에만 있는 것 같아서, 그 근처만 가면 그렇게 예전 반지하 철부지적 생각이 난다.

그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나는 이 도시로 와 나름 성장하며 산다. 그때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아직도 부산에 살고 있을 테고 - 고시원이나 반지하 단칸방 생활은 내 삶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게 내가 어떤 만남에도 다 배움이 있고 경험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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