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표현하는 각자의 방식
사람은 각자 은연중에 본인이 받고 싶은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이를테면 상대에게 사진을 자주 보내는 사람은 연인으로부터 사진을 많이 받고 싶어 하고, 선물을 잘 하는 사람은 선물을 받을 때 더 깊은 사랑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 이에게는 살을 맞대는 스킨십으로, 잦은 전화 통화로, 혹은 사고에 대한 온전한 존중의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애정표현을 자주 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한 번을 해도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최소한 체온보다는 높은 온도로 마음이 끓었을 때, 내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이전 연애에서도 나더러 너무 무심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사실 나는 상대가 갖는 ‘내가 없는 일상생활’을 온전히 존중하는 게 내가 사랑을 전하는 방식 중 하나라 여겼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애인이 친구와 여행을 간다든지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실 거라 하면 당연히 “그래. 재밌게 놀다 와.”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게 서운하단다. 도대체 연인 사이에서 왜 허락을 구해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허락에 쿨하게 승인하면 이번에는 또 무심한 사람이 된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연희에게 모든 사랑을 채워주긴 어려운 사람이다.
나는 연락을 자주 하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친구와도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아니면 전화보다는 간단히 문자로 용건만 전달하고, 회사에서 일할 때도 업무와 관련된 일의 요지만 전하는 편이다. 눈 떠 있는 시간 내내 누군가를 위해 내 모든 시간을 공유하는 건 나에게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연희는 나와 떨어져 있는 모든 시간을 궁금해했다. 내가 지금 무얼 하는지, 오늘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서로 그런 시시콜콜한 일상을 모두 나누는 게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의무라 했다.
“제발, 뭘 하면 뭘 하고 있다고 미리 말해줄 수는 없어? 화장실 갈 새도 없었어? 남자가 연락 안 하는 건 ‘옥 중’, ‘상 중’, ‘아웃 오브 안중’이래.”
분명 오늘 고등학교 동창들과 술자리가 있다고 말했고, 압구정에서 만날 거라고 했는데. 7시에 친구들을 만나 이제 겨우 11시인데 문자는 다섯 통, 부재중 전화가 두 통 남겨져 있다. 연신 휴대전화가 재킷 주머니에 있어 연락 온 걸 몰랐다고 해명했다. 화가 잔뜩 난 연희를 풀어주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그녀의 집 앞으로 향했다.
연희와는 회사 동기에게 소개받아 만났다.
처음 만나기로 약속한 날, 카페에 앉아 온 마음 가득 설렘을 안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출입구에 눈이 갔고, 문이 열릴 때마다 ‘저 사람일까?’하고 눈을 굴렸다.
그러다 ‘저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이 내 앞에 앉았다. 감출 수 없는 미소로 인사하고 커피를 마셨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나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눈치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저녁에 가족 식사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댈 심산으로 어중간한 시간 – 오후 4시에 약속을 잡았다. 있지도 않은 가족 식사 약속은 그녀를 만나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없어졌다.
청순하고 우아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며 본인의 능력과 취향을 잘 아는 사람 같아서 멋져 보였다. 말을 예쁘게 하는 특기가 있었고 술을 마시지도 않고, 더불어 골머리 썩게 할 이성 친구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지난 연애의 상처도 갖고 있었고, 안정적인 연애와 결혼을 꿈꾸는 모습이 지금의 나와 만나기에 딱 시기적절해 보였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연희가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는 그녀의 세계가 되었다. 내 기분과 일정, 말 한마디에 그녀의 세계에 비가 퍼부었다가 햇살이 비췄다가를 반복했다.
문제는 그녀는 내 세계가 아니란 점이다. 그녀는 그녀와 내가 온전한 합집합이 되길 바랐다면, 나는 교집합을 나누는 데 치중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곧잘 나에게 “내가 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토라졌고, 그렇게 말하며 우는 그녀를 달래 주는 게 반복되자 이제는 이 ‘연인의 의무’라는 것이 ‘강압’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만약 일주일 정도만 휴대전화를 꺼버리고 산에 들어가 템플스테이라도 한다면 아마 그녀의 세계는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당장 딱 5시간 정도만 ‘롤’ 게임을 해도 그녀의 세계 속 남산타워 하나 정도는 거뜬히 무너질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걸 볼 수는 없으니 오늘도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뛰어나가 전화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만난 그녀가 더 매력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우연을 인연으로, 필연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것에 마치 우연이 아니었던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니 바닷바람을 맞으며 마신 커피 한 잔에 누가 베일리스라도 잔뜩 타 놓은 것처럼 취했다.
그녀가 연애하는 목적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즐거움이라 말했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그 감정이 상대에게도 결국 전이되어 함께 즐거워지자고 하는 연애가 고통스러워질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본인만큼 행복하기를 바라며, 절대 본인이 상대방의 1순위이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을 먼저 아끼지 못한 데서 생기는 결핍을 고스란히 연인으로부터 채우고자 하는 욕심이 싫어서. 그래서 “나 이거 해도 돼?”라는 상대의 말이 정말 상식선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면 – 그런 사람이라면 애초에 만나지도 않겠지만 – “안 돼.”라 하거나 “싫어, 하지 마.”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판단이 충분히 가능한 어른인데, 그런 걸 다른 사람에게 허락을 받는 것도 우습고, 어차피 안 된다는 거절이 늘면 결국 거짓말이 될 거란 걸 알기 때문이라 했다.
이상의 정적을 깨뜨리는 연희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그녀와의 환상에 젖어 들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 짜증 나게 만든 건 연희의 전화가 아니라 – 웃으며 “얼른 여자친구 전화 받아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한 마디와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는 나,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통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멀찍이 도망친 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