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와 강박 사이에서
도대체 너는 언제 쉬어?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헤르미온느'라고 불리곤 했다. 항상 무언가 하나만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늘 '평소에 하는 일' 외에도 '내가 세운 목표'가 수반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하면서도 운동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러면서도 안 본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가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시간을 쪼개어 살 수 있냐며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멋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회사 생활에 완전히 지쳐 우울증 판정을 받고도 바디 프로필 촬영을 할 거라며 운동을 하고, 이제는 또 작가가 되어보겠다며 글을 쓰고 있다. 치유와 치료를 위해 약 두 달간의 휴직 시간을 갖게 되면서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 나는 이를테면 '제주도 가서 한 달 살고 올 거야.' 같은 질문자가 바라는 의도와는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일단 부산에 레지던스를 잡았어. 헬스장 딸린 곳으로! 매일 운동은 할 거니까. 그리고 글을 써 보려고. 가지고 갈 책도 많이 샀어. 아, 맞다, 한 달 만에 딸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게 없을까 생각해봤는데 '방과 후 지도사 자격증' 같은 건 한 달 바짝 공부하면 딸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 그거 공부도 좀 하고."
어김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쳐서 쉬는 시간이라면서, 도대체 그럼 너는 언제 쉬어?"
이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나는 죽게 될 것 같아
내가 자꾸 일상의 패턴 외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엔 자기 계발이라는 장황한 목적보다는 지금 세운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내가 더는 살아갈 목적을 잃을 것 같은 압박감이 들어서였다. 매일 카톡을 주고받는 B와 T는 이런 나를 보면서 대단하다 하면서도 "너, 이번 혹사가 마지막이야. 다음번에 또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진짜 말릴 거야."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일상의 삶과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받는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 소위 '몸을 갈아 가며 산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목표를 이루고 난 뒤의 성취감보다는 불안감이 더 커졌다. D-day가 다가올수록 '이거 끝나면 이제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또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도 나의 휴식기 계획들을 말씀드리자 허탈한 듯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래요, 사람은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해요.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그걸 보통 사람들은 쉰다고 해요. 그런데 쉬겠다고 하는 사람이 쉴 생각이 없어 보여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하지 않으면 큰 일 날까요? 그러면 세상이 무너지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결과물만 두고 보았을 때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그 과정의 나는 나 자신을 '혹사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번에 세운 목표가 끝나고 나면 나는 삶의 방향을 잃고 또 죽음을 생각할 것 같아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다행히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 운동, 독서는 끝이 없을 것 같아 좋은 원동력이 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끝이 없기 때문에 이건 그냥 나의 일상의 일부분일 뿐, 나는 또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한다.
꿈이 없어도 괜찮아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내가 곧잘 하던 말은 "지금 당장 꿈이 없어도 괜찮아."였다.
요즘도 그렇겠지만 특히 내가 어렸을 때는 항상 꿈과 장래 희망을 가진 어린이여야 했고 그래서 꾸역꾸역 생각을 거듭하다 아무거나, 대충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좋아할 법한 직업을 써서 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아직도 생각한다.
다행히 어린 시절 나의 엄마, 아빠는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시킨 적이 없어서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흔한 입시 학원을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다. 대신,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야 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친구들이 모두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게 부러워서 나도 피아노를 갖고 싶고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바로 그 주 주말, 우리 집 방 한편에는 영창 피아노가 들어왔고 그 길로 나는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바이엘을 무사히 마치고 체르니 30에 들어갈 무렵, 피아노 치는 게 지겹고 어려워서 엄마에게 피아노 학원 그만 다니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니 끝까지 해야지"라며 반려했다. 그렇게 피아노를 4년간 쳤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내가 꿈이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어린이였다는 것이다. 내 꿈은 시시각각 바뀌어서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고 하면 우리 부모님은 학교도 빠져도 된다며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애니메이션 박물관이나 박람회에 데려가 주었고, 만화 그리기 대회도 알아봐 주시고, 만화를 그릴 수 있는 도구들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 또 어느 날은 갑자기 아역 배우를 해 보고 싶다고 야단법석을 떨기도 했고, 성우가 되고 싶다고 해서 결국 요즘의 '오디오 북' 같은 인터넷 사이트와 EBS 채널에서 진행하는 작은 코너에서 동화를 읽는 목소리 출연을 하기도 했다. (우습지만 덕분에 나는 학창 시절 12년간 단 한 번도 개근상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덕분에 나는 '우리 가족은 내가 무얼 해도 응원해 줄 거야'라는 든든한 믿음을 갖게 됨과 동시에 '나는 뭘 해도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자신감이 넘쳐서는 이제 '무얼 해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표지 배경 이미지는 Pixabay로부터 입수된 Engin Akyurt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