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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반지하 29화

지옥의 밤

Arthur Rimbaud

by 짱강이


https://youtu.be/dLl4PZtxia8?feature=shared



지옥에서 보낸 한철
환각은 무수하다.
이것은 내가 언제나 지녀온 것이다.
역사에 대한 믿음의 부재,
원칙들에 대한 망각이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시인들과 환상가들이 질투할 테니까.
나는 정말로 가장 부유하다.
바다처럼 구두쇠가 되자.


아르튀르 랭보. 그는 내 세계의 전부이자 기준이고, 오만이며 착각이고, 열등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관념적이지만 허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현실적이기도 한 그의 세계. 모두들 그의 세계를 초현실주의, 모더니즘이라 표현하곤 하지만, 나는 그의 세계를 감히 언어로 표현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세계는 언어에 담기지 않는다. 담을 수도 없다.

그는 지옥에서 보낸 한철만을 출판함으로써 완벽한 천재 탕아임을 알렸다. (물론 그는 본인의 시에 대한 대중성을 원한 적이 없지만)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읽을 때면, 정말이지 내가 모르고 있던 다른 세계가 저 멀리서 도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러나 그 세계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내가 인식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 그런 어리석은 나의 한계에 통탄을 표하곤 한다. 정말이지 멍청한 나를 비집고 나가 버리고만 싶다.

그는 물과 같은 글들만을 써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싶을 정도로 그의 글들은 잡을 수 없고 약간의 척척한 여운만이 감돈다. 어쩌면 내가 그의 세계에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는 이내 오만과 착각이라는 판정이 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수천 번을 반복한다. 지금도 그러는 중이다. 랭보의 글은 읽을 때마다 그런 미지의 세계의 향락을 탐해 버리게 하곤 한다. 어쩐지 답답하고, 찝찝하기도 하다. 마치 손을 막 씻고 나온 듯이.

그는 보이는 것들은 물론, 보이지 않은 것까지 섭렵해 버린 천재 탕아이다. 섭렵 정도가 아니라, 관철해 버린 급이다. 나는 그런 그의 세계에서 *언제든 체크아웃이 가능하지만, 영영 떠날 수는 없는 영혼이 되어 버린다. 그의 세계를 들여다 보면, 어쩐지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모두 거짓일 것만 같다는 그런 관념적이고 또 관념적인 상념에 빠지곤 한다.

잡힐 것 같지만 못내 잡지 못하는 것들. 그것이 그의 글이고 내면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는 환각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P.S.

한글로 번역된 시 옆에는 랭보가 쓴 원문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런데... vert를 자꾸만 푸른색으로 번역해 놨다. 왠지 그의 vert가 내겐 녹음처럼 느껴지는데 말이다.

그냥... 프랑스어 서적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도 읽었을, 서울대학교 불어과 박사인 엮은이에게 의탁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그리고 만약 내가 원서의 뜻을 이해하는 날이 온대도, 그의 정신에 닿을 수 있을까?

나는 죽은 이후에도 그의 세계에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다.


*Hotel california 가사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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