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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반지하 12화

금요일

by 짱강이

“살자! 이기자! 버티자!”

뭐가 이렇게 즐겁지. 아, 노예로 살자고 격려하는 게 즐거운 일이구나. 이제야 깨달음을 얻은 원샷과 함께 술잔을 테이블 위에 텅 내려놨다.


“역시 어린 게 좋아”

자칭 골드미스인 김 부장은 서초동에 빌라만 몇 채라지. 근데 술만 마시면, 아니다. 평소에도 젊은 남자만 보면 혈안이 돼서 이런 저급한 말만 쏟아낼 줄 안다. 개저질. 젊은 남자 못 만나서 죽은 처녀귀신의 한이라도 씐 건가. 아니 애초에 돈이 그렇게 많다면서 회사에 왜 다니지? 사실 궁금하지도 않아서 반대로 고개를 돌려 소주와 맥주의 화합물을 들이켰다. 정윤혁 씨는 그렇게 고배를 쭉쭉 들이킨다. 진짜 말 그대로 고배다. 정신차리면 집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질끈 감은 눈이 열리자 보이는 건 다시 골드미스 김 씨이다. 오늘 취하긴 글렀다. 시뻘건 매니큐어가 칠해진 열 손톱은 자꾸만 윤혁의 왼쪽 허버지와 닿을 듯 안 닿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 중이다. 역시 부와 미감은 반비례하는 듯하다.


금요일은 끔찍하다. 현대 직장인 정윤혁 씨의 대표 문장이다.

바닥을 그을린 꽁초더미들. 아득히 들리는 유흥가 노래방의 노래소리. 삼겹살집의 연기인지 담배 연기인지 모를 희뿌연 공기.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이 땅을 점령 중인 정장 군단들.

저들은 서로가 친해졌다고 착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함께 술을 마실 사람이 필요한 것일 뿐일까.

이후 이틀 간 할 일이 없음에도 윤혁은 집에 가고 싶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 그러나 금요일 밤의 번화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윤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뒷머리를 살짝 털었다.


위하여! 대체 뭘 위해서?

얼마 전에 걔가 소개시켜 준 여자 있잖아, 어쩌라고.

퇴사할까? 저새끼 저거 질문 아니야.


다 싫증이 난 윤혁 씨는 생각한다. 당장 KTX를 타고 주말 동안 이 일대에서 사라져 볼까. 그러려면 오는 기차는, 가는 기차는, 여기서 역까지 몇 분이더라, 아 좌석값이 왜 이래.. 더 질리고 만다.

오늘따라 휴대폰 불빛에 눈이 시리다. 꼴보기가 싫다는 뜻이다. 이내 폰을 꺼 정장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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