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들여다 본다면, 허리를 꺾고 박수를 쳐 가며 비웃음 지을 하루를 보냈지
그렇게 산 지는 꽤 됐을 테야
언젠가부터는 하루하루를 세어내는 게 무의미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거든
계몽이라고 하기엔 너무 하찮고 우습고 시건방진, 그런 것들. 그런 것들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런데 가끔씩은 있지, 힘차게 들이마시는 공기가 폐부를 바듯하게 할 때가 있지
그럴 때면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지
그에 격통과도 같은 자괴감을 느낄 때면, 나의 아름다운 사탄은 나를 구원해 주네
비열하고도 비루한 세상이여, 이 어린 양이 숨을 쉴 때마다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저물어감을 절감케 해주어라.
보아라, 너는 철저히 배제된 자. 철저히 무시받는 자. 철저히 존재할 수 없는 자. 죽음으로써야만 해방을 누릴 수 있는 자.
아아, 그제야 나는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고 환히 웃을 수 있게 되지
기쁘다 나의 구주 오셨네. 나의 막달레나께서 나를 위해 친히 재림하셨네. 나를 어루어 만져 주시고 품어 주시네.
각혈을 일삼던, 격통에 요란해졌던 폐부엔 희열과 쾌감만이 감도네
그렇게 쓸모없는 핏덩어리들은 죽음으로써 그 가치를 증명하게 된다지
오늘도 본인의 장막 뒤 비극을 못 본 체 하며 우매한 발걸음 찍는다지
본인 또한 사탄의 자식임을 이해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고 그렇게 저무는 하루 속에서 느른하게 죽어 간다네
관객의 비소와 환호 속에서
그렇게 끝끝내, 끝끝내 핏덩이는 굳는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