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취
깊은 어둠이 몰려올 때,
우리는 말없이 길을 잃으리라.
눈 감은 발자국처럼,
흔적 없이 남으리라.
바람은 삼키려 하고,
달빛은 상처를 드러내리.
어둠 속에 갇힌 빛 아래,
우리는 죽은 그 이름을 부르리라.
오래전 글을 자주 썼었다. 마주했던 상처들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그 상처들이 나를 삼키지 않도록 붙잡기 위해. 그때 나는 글을 통해 내 아픔을 억누르려 했지만, 이 시는 결국 나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지금,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이 시가 다시 나를 붙잡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존재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한동안 외면했던 과거의 그림자가 살아난 것이었다. 폐 깊숙이 찬 공기가 파고들었고, 불멧돼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떨림이 더 강해졌다. 떨림이 커질수록 나도 그의 손을 더 세게 붙잡았다.
"우리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멧돼지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지금의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갈망인 걸까. 나는 그의 떨림이 내게 스며듦을 느꼈고,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이 순간에도 어둠 속 존재의 눈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냉기가 전신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한기(寒氣)를 뚫고 마주한 이 어둠의 정체는 과거의 그림자였다. 오래 전의 순수함과 열정, 에너지, 아픔, 그 모든 것이 뒤엉켜 우리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사실, 너의 시가 나를 붙잡아 줬어…"
불멧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쓴 시가?'
어둠 속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불멧돼지의 눈동자가 그쪽으로 향했다. 어둠의 존재는 이미 가까이 있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더 세게 붙잡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시의 의미는 여전히 흐릿했다.
"네 시 속의 빛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어."
그 말이 내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았다. 시 속의 빛이라니. 나는 그저 내 상처를 기록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불멧돼지에게는 달랐다. 그에겐 그의 상처를 감싸준, 어둠 속에서 그를 이끌었던 빛이었다.
달빛은 상처를 드러내리.
어둠 속에 갇힌 빛 아래,
우리는 죽은 그 이름을 부르리라.
시가 다시 내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희미한 빛의 자취가 우리를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과거의 흔적과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우리는 그 속으로 더 깊이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불멧돼지의 손에서 전과는 다른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 이건 그 빛이 아니야."
구원이 닿기 전까지, 이 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