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ggie chae Sep 10. 2024

진실의 문턱

비극(悲劇)의 미소

기억의 강물에서 깨어난 나는 불멧돼지의 손을 쥐고 있었다. 얼어붙은 돌처럼 차가운 그의 손에서 전해진 긴장감이 나를 자극했다. 주변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는 듯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무언가가 가까이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조여왔다.


“여기는 어디지…” 불멧돼지의 눈빛에서 공포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계속 나아가야 해.” 나는 그의 손을 이끌었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은 점점 더 고요해졌고, 서로의 숨소리마저 멈춘 듯했다. 고요함 속에서 내 심장은 더욱 격렬하게 고동쳤지만 무언가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확신은 더 깊이 자리 잡았다.


갑자기, 먼 곳에서 들려온 희미한 소리가 길었던 고요를 갈랐다. 슥슥-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불멧돼지가 주위를 살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순간, 공기는 침묵에 갇히며 압도적인 무게로 존재했다. 어둠 속에서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이 스쳤다. 어슴푸레한 빛이 나무 사이로 스며들었고, 마침내 이곳이 숲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약한 빛이 나뭇잎 사이에서 불길하게 일렁였다. 나와 불멧돼지는 숲의 생명력과 그 속에 숨겨진 위협을 동시에 느꼈다. 깊은 곳에서 울려오던 소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반드시 알아내야 해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 순간, 불멧돼지의 입가에 스쳐간 낯선 미소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무심한 그 미소 속에는 깨어진 자아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 있었다.


"그 표정..."


찰나에 소름이 온몸을 스쳤다. 미소 뒤에 감춰진 그의 슬픔은 비극의 전조처럼 나를 짓누르며 내 영혼 깊숙이 각인되었다.


곧 흐릿한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숲 깊은 곳에서 무언가 서서히 기어오르는 듯한 소리였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숲 속의 그림자들이 우리를 서서히 포위하는 듯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는 그것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불길한 확신은 더 강해져 갔다.




어둠을 헤치며 우리는 그저 묵묵히 진실의 문턱으로 나아갔다. 불안이 엉긴 긴장감이 숲을 가득 채우고,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마저 우리를 재촉하는 듯했다.


그 사이, 서로의 존재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스며들었다. 두려움에 짓눌린 채 멈춰 설 수도 있었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의지가 강해졌다. 그러나, 다가오는 무형의 그림자는 마치 날카로운 전율처럼 심장을 관통했고, 그 기운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돌연 발밑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땅속에서 전해지는 무언가가 날카롭게 몸을 타고 올라왔다. 어둠 속의 그 존재도 더 이상 숨지 않았다. 느껴지던 불길한 기운이 더욱 강해지더니,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흐릿한 윤곽만 보였던 존재가 점차 형체를 드러내더니, 어둠과 땅이 뒤엉킨 기묘한 모습으로 느리게,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숲의 모든 것이 우리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나는 이 시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불멧돼지가 내 손을 움켜쥐었고,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떨림이 그의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무엇이 우리 앞에 있든,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