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only we know
문이 열리자, 얼음처럼 날카로운 어둠이 밀려들어 우리를 단숨에 삼켜버렸다. 무형의 무언가가 뇌리를 찢어내듯 파고들었고, 모든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 가는 그 순간, 불멧돼지와 나는 발버둥 칠 틈도 없이 그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기억이 끊기고, 감각이 흩어졌으며, 시간조차 의미를 잃었다. 우리는 텅 빈 어둠 속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기묘한 공포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후 깨어났을 때, 우리는 끝없는 물결 위에 떠 있었다. 벽도, 바닥도 없는 공간이었지만, 거대한 강물 위를 표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언가 흐르고 있었다. 주변은 무한히 펼쳐진 검은 허공, 그 속에서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이 보였다. 그러나 그 물결은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그 물속에는 무언가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몸은 가볍게 떠 있었고, 현실의 중력은 사라진 듯했다. 강물처럼 흐르는 공간에서 우리는 표류하고 있었다. 불멧돼지도 나와 가까운 곳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은 혼란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어디 있는 거죠?”
그가 물었지만, 나도 답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꿈속에 갇힌 것처럼, 흐름 속에 휘말려 떠다니고 있었다. 공기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고, 바람이 불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에서 그저 강물 위에서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우리의 앞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것은 거대한 물결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형체였다. 물이 모여 빚어낸 그림자처럼, 빛과 어둠이 뒤섞여 있었다. 형체도 없었지만, 그 존재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마음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가 느껴졌다.
“이곳은 기억의 강물이다.”
그 목소리가 울리자, 물결 속에서 희미한 이미지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억에서 잠든 장면들—어릴 적 경험했던 기묘한 순간, 이미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물속에서 떠올라 흐르고 있었다.
“이건… 나의 기억인가요?”
불멧돼지가 혼란스럽게 중얼거렸다.
강물은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기억들을 끌어올렸고, 우리는 그 속에서 떠오르는 과거의 조각들—상실, 그리움, 그리고 묻혀 있던 감정의 파편들을 바라보았다. 물결에 비치는 모든 순간이 지금의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 잔잔히 울려 퍼질 때, 잊혔던 멜로디가 다시 흐르듯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눈물은 다시 기억이 되어 강물로 흘러 들어갔다.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기억의 강물은 언제나 흐르니까. 피할 수 없을 거야.”
익숙한 속삭임이 들렸고 우리는 어디론가 다시 빨려 들어갔다. 물결이 요동치며 우리의 의식을 덮쳤고,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이 속삭임과 함께 출렁이는 물결뿐이었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