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ggie chae Sep 03. 2024

불안의 그림자

깨어나는 어둠

책방의 어둠이 어느새 깊어지고 있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초콜릿 향마저도 차갑게 느껴졌다. 책장 사이로 흐릿한 조명이 떨어지며, 먼지 입자들이 유영하듯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불멧돼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책장을 훑어보았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책의 제목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손이 멈춘 곳은 눈에 띄는 책이 아닌 책장 뒤로 드리워진 더 짙은 어둠 속이었다. 그 어둠이 불멧돼지를 부르는 듯했다.


내 심장은 그가 어둠을 응시하는 동안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불멧돼지의 숨소리도 조금씩 거칠어졌다. 그의 눈빛은 더 깊은 곳, 어둠 속에 감춰진 무언가를 향하고 있었다. 책장 뒤로 드리워진 어둠 속에 숨겨진 어떤 진실을 찾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뭔가 찾고 있나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둘 다 그걸 느끼지 않나요?”


나는 그에게 다가가 책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무게감에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어둠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 어둠은 숲처럼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이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책장 위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나는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불멧돼지의 눈빛도 그쪽을 향했다. 우리는 동시에 그곳으로 다가갔다.


바닥에는 작은 종이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구겨진 종이에는 희미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나는 종이를 집어 들고 그 글씨를 읽으려 했다. 손끝이 떨렸다.


“이건...” 나는 말끝을 흐렸다. 불멧돼지가 내 옆으로 다가와 종이를 응시했다.


“뭐라고 쓰여 있죠?”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여기... 글씨가...” 나는 종이를 손에 쥐고, 흐릿한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 글씨는 작고 불분명해 알아보기 어려웠다. 누군가 급하게 써 내려가다 멈춘 듯했다. 종이 위의 글자가 어둠 속에서 사라져 버릴 듯,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책방의 조명이 갑자기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완전히 꺼졌다. 우리는 어둠 속에 갇힌 채 서 있었다.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이며 불멧돼지의 움직임을 느꼈다. 숲 속에 갇힌 것처럼, 어둠은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건 그냥 우연이 아니야,” 낮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물어보려는 순간, 책방의 깊숙한 곳에서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오는 것 같았다. 불멧돼지와 나는 숨을 삼키며 그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나가야 해요,” 나는 속삭였다.


그러나 불멧돼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리를 쫓아 책방의 깊숙한 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가며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불멧돼지가 책장 옆에 있는 작은 탁자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 탁자는 아주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듯했고, 책장과 거의 맞닿아 있었다. 그가 무심코 보기에는 장식용 탁자처럼 보이는 그 탁자 아래를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여기에 뭔가 있어요...” 그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러다 탁자의 아래쪽 한 구석에서 작은 걸쇠 같은 것을 발견했다. 걸쇠를 잡고 살짝 당기자, 탁자의 밑바닥이 살며시 열렸다. 그 안에는 비밀스럽게 숨겨진 작은 문이 있었다. 아주 작고 은밀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법한 장소에 숨겨져 있는 문이었다.


“이게 뭐죠?”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소리가 더 떨렸다.


그 작은 문 틈에서 차가운 공기가 새어 나와 얼어붙은 강물처럼 차갑게 우리를 휘감았다.


“이 문 뒤에 뭐가 있을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실 아니면 더 깊은 어둠이겠죠,” 그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무거운 짐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그의 말에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진실은 무엇일까. 그의 손이 문고리로 다가가는 순간, 공기가 얼어붙은 듯 더 차가워졌다. 손끝이 문고리에 닿기 직전,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 듯,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 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가슴을 조여왔다. 심장은 찬물에 잠긴 돌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든 감각이 경고하고 있었다. 열지 말라고, 돌아서라고.


그러나 불멧돼지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손을 내밀어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듯, 문이 열리며 길게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비명 같은 소리가 공기를 찢어 주위를 감싼 침묵이 더욱 깊어졌고, 어둠은 순식간에 내면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들어와 숨 막히는 두려움을 퍼뜨렸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압도하며 우리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불안의 그림자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멈추고, 그 존재만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