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부적격 인간(8/8完)

by 길거리 소설가

"자, 그럼 제 질문에 답하지 못한 대답을 제가 대신해드리죠. 첫 번째, '뭐라도 시작해야죠'라는 제 말을 듣고 선생님 마음속은 '나도 뭐라도 시작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왜 늘 경쟁에 살아남으려고 노력했나의 답은 '그래야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봐준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1등을 위해 달려오기까지의 노력은 제가 감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만은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신을 가둬놓으신 겁니다. 목적과 목표 없이 남들이 자신을 좋게 바라봐 주기만을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렇게 이룬 성과들이 어제 제가 하는 말을 듣고는 사상누각과도 같이 모두 무너져 내리신 겁니다. 그러니 제가 '뭐라도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제껏 목표 없이 살아온 자신에 대해서 혐오를 느끼고, 그 혐오조차 인정하기 싫어서 아침 댓바람부터 질문이랍시고, 헛소리나 지껄이시고 계신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늘 저를 찾은 목적도 사실은 말 몇 마디 꼬투리 잡아서 저를 이겨보겠다고 오신 것 아니십니까? 그래야 자신이 쌓은 모래 위의 성이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요. 제 말이 틀리신가요?"


이번에도 쏘아붙이는 현성에게 태수는 대꾸하지 못했다. 현성이 계속 말했다.


"사실 오전에 공원에서 유모차를 잡아주는 선생님을 먼발치에서 봤습니다. 저는 공원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는 참이었죠. 선생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본성이 나쁜 분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해드린 이야기가 선생님 삶을 위한 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입니다"


현성은 일어나 태수에게 목례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수는 떠나는 그를 바라볼 용기조차 나지 않아 처다도 보지 못한 채 앉아있었다. 태수는 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그곳에 앉아 현성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그리곤 결론이 났는지 나지막이 말했다. '정답'.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카페를 나오는 길에 점원이 인사했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쌀쌀해진 밤공기가 채 여미지 못한 그의 겉옷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춥지 않았다. 손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보며 걸었다.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청년을 떠올릴 때부터 이미 그의 마음속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피하려 했던 불편한 답이 말이다. 그는 발을 거의 끌다시피 길을 걸었고, 그 상태로 집에 들어갔다. 집에는 이미 가족들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를 보고는 걱정스레 물었다.


"태수야 밥도 안 먹고 어디를 다녀온 거야?"


태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제대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주름이 늘었다. 시선을 옮겨 아버지도 바라봤다. 아버지의 주름도 늘었다. 마지막으로 여동생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멀뚱히 서 있는 아들을 걱정하며 다시 물었다.


"식사는 한 거야? 아니면 좀 먹을래?"


태수는 간단하게 '아니, 먹고 왔어'라고 대답하고는 방에 들어가 바로 누웠다. 왠지 가족들이 조용했다. 왁자지껄하던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 때문에 즐거워야 할 저녁시간이 걱정과 슬픔으로 차올랐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내려 베개를 적셨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소리 내지는 않았다. 소리를 내면, 저들의 저녁을 더 망쳐버릴 것만 같은 생각에 숨죽여 울었다. 그가 울다 지쳐 잠이 들었을 때, 시계는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방을 비추는 햇살에 그는 여느 때와 같이 10시쯤 일어났다. 몸이 한결 가벼웠다. 방이 좀 답답한 느낌이 들어 창문을 열었다. 조금 쌀쌀한 감이 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여느 때와 같았다. 그가 시선을 주방으로 돌리자 식탁에는 평소와 같이 어머니가 차린 정성스러운 식사가 놓여있었다. 그는 식탁으로 걸어가 차려진 밥상을 보았다. 밥과 그 앞에는 냄비가 놓여있었다. 그가 냄비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자 시간이 제법 지났을 텐데도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김치찌개가 먹음직스럽게 담겨있었다. 태수는 김치찌개의 시큼한 냄새에 갑작스러운 허기를 느끼고 자리에 앉아 며칠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레 밥과 찌개를 비웠다. 배가 부른 그는 만족했다. 그때, 불현듯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가 노트와 펜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방에 들어왔을 때에는 방문이 계속 열려 있었는지 밖보다 좀 더 추웠다.. 그가 몸을 부르르 떨며 창문을 닫자 금세 방안은 따듯한 온기를 되찾았다. 그는 겉옷을 아무 데나 던져놓고는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쳐 펜을 들고는 자신만을 위한 소설의 첫 문장을 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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