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한 예술가가 낡은 서까래가 있는 초라한 구옥을 문화예술공간을 겸한 갤러리로 새롭게 가치를 입힌 곳이다. 어찌어찌 연이 닿아지난해 여름 나는 이 공간의 살림을 맡았다.살림이라고 해봐야 갤러리 수입이 미천했으므로 뒷주머니에 감춰둔 쌈짓돈을 터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손 볼 데가 많았고 필요한 것을 사 들이느라 몇 푼 안 되는 눈물겨운 쌈짓돈마저 겨울 초입에 도달했을 무렵 바닥나고 말았다. 다행히 이곳을 탄생시킨 1대 주인장의 염려와 도움으로 11월부터연말까지는 전시 대관이 있어 한숨은 돌렸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였다. 들고 있던 돈도 바닥났고 일만 벌이는 내가 바깥양반에게 또 손을 벌리면 이 엄동설한에 쫓겨나기 십상이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갤러리 운영수익으로 유지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연초는 갤러리 운영에 있어 보릿고개에 해당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눈물겨운 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당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도 되고 겁도 났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근 갤러리 관장님도 1월부터는 불을 꺼놓다 시 피했다. 이곳 문화예술의 거리에 처음 발을 들인 하룻 강이지 신분인 나는 코너 각지에 위치한 위풍당당한 그 갤러리를 지날 때마다 마치 잘 사는 형님댁을 구경하듯 부러움과 함께 원인모를 유대를 느끼고 있었는데 1월부터는 개점휴업상태로 어두컴컴했다. 그런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형님댁은 1.2월만 지나면 빡~빡한 전시 스케줄을 내걸어 놓고 "에헴"하고 양반 기침을 하실게 분명하다.
1.2월이 지나도 뭐가 있을 리 없는 나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이럴 땐 궁리가 필요하다. 잘 돌아갈 리 없는 머리를 맷돌 돌리듯 빠득빠득 돌려서 얻어걸린 게바로 '아트 플리마켓'이다. 그래! 많이 걸고 많이 팔아서 판매 수익으로 춘궁기를 버텨보자. 재고 따지고 하다 보면 세월 다 간다. 언제나 맨땅에 헤딩하듯 문제를 풀어가는 나는 이번에도 맨. 땅. 에. 헤. 딩. 하는 전술로 목표 수립과 동시에 행동 개시에 들어갔고 얼마 안돼 지역작가 21분의 동의를 얻어 작품 다섯 점씩 받아 총 100여 점을 걸었다. 전공자도 아닌 신출내기 관장이 벌인 대단한 성과였다.
도깨비 점빵
갤러리 마당에는 수공예전, 생활공예전을 펼쳤고 전시실에는 다양한 화풍의 작품을 보기 좋게 걸어두었다. 작품 옆에는 너무 착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한 가격을 잘 보이도록 똬~악 붙여놓았다. 이럴 땐 그냥 노골적으로 가보는 거다. 작고 아담한 갤러리가 어느새 시골 장터 분위기가 물씬 났다. 시끌벅적하고 비정상적 시장을 뜻하는 '도깨비시장'과 일단 들어가면 뭐든 작은 거 하나라도 사게 되는 ' 점빵'이라는 단어를 합성하여 플리마켓 이름을 '도깨비 점빵'이라고 이름 붙였다.
2월 11일. 점빵 오픈을 하루 앞둔 저녁.
작품 셋팅완료!
경상도 시어머님이 '주신' 대추와 충청도 친정어무이가 '준' 인삼을 풍덩풍덩 물에 씻어 퐁당퐁당 주전자에넣어 대추 인삼차를 준비했다. 웰컴 티 준비 완료!
이것저것 준비를 마친 나는 전시관에서 마당으로 나가보기도 하고 갤러리 골목에서 마당 안으로 들어와 보기도 하며 수차례씩 걸어 보았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방문객의 동선을 그대로 예측하며 걸어보면서 허술해 보이는 곳이 없는지. 보완사항이 있는지 살펴보는 내 나름의 마지막 수행 목록이다. 수십 차례 반복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만하면 됐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