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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HAN Sep 29. 2021

슬픔과 사랑의 역사

최은영, 『밝은 밤』, 문학동네, 2021

 한 세기는 인간에게 혹은 사회에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100년이라는 딱 떨어지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 세대는 공통의 시대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보통 시대적 감수성이 변하여 다음 세대가 당도하기까지 3-40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사회가 세 번의 변화를 거치면 한 세기가 흐르게 된다. 한 세기가 흐른 뒤의 사회는 이전의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라보게 달라진다. 물론 그 시대를 보여주는 책이나 사진 등 자료는 많지만 1900년 근대 초기의 모습을 2000년 이후의 우리가 오롯이 실감하기 어렵고, 마찬가지로 지금 사회의 모습을 1900년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그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을 통하는 것이다. 사람은 비록 희석되었을지라도 자기 세대의 어떤 분위기와 특징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간직한다. 그래서인지 한 세기, 즉 삼대를 다루는 소설은 우리에게 생각보다 익숙하다. 제목 자체가 삼대인 염상섭의 『삼대』를 청소년기에 배웠고, 많이 비교되는 작품으로 채만식의 『태평천하』에도 삼대가 나온다. 황석영은 『철도원 삼대』를 2020년에 출간했다. 한 일가의 삼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유는 그렇게 한 세기를 다룸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인물을 통해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삼대'라는 설정은 역사의 흐름을 투영하기에 아주 유용한 장치다.

 최은영의 장편소설 『밝은 밤』 역시 '나'를 통해 증조모, 할머니, 엄마라는 삼대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소설들에 익숙한 독자들은 『밝은 밤』을 읽고 다소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 당황스러움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역사의 흐름을 표상하는 '삼대'를 다룬 소설이 왜 이리 센티멘탈하단 말인가?' 혹은 '그녀들의 삶이 과연 역사인가? 그렇다면 이를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등등. 하지만 이런 생각들에 반발해서 '정의하려고 들지 말자!'를 외치는 건 딱히 의미가 없어보인다. 그녀들의 삶이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는 것, 밤의 바다에서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 목적한 바이기 때문이고, 결말에 이르러 울림을 주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증조모 이정선은 백정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신분에 천주교 신자로서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사명감을 느낀 증조부 박희수는 부모를 저버리면서까지 그녀와 결혼하여 개성으로 떠나지만, 사랑인 줄 알았던 것은 허영심에 불과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죄책감과 평생 아내를 위할 줄 모르는 남편에 의해 증조모는 결국 체념이라는 태도를 받아들인다.


 허영심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결과로 그는 평생을 억울함과 울화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부모를 떠날 때만 해도 몰랐던 것이다. 아니, 그는 평생을 몰랐다. (p.60-61)


 할머니 박영옥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일찍이 깨닫는다. 점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그녀의 내면에 자리잡은 건 깊은 절망과 타인에 대한 포기였다. 할머니가 사랑과 연민을 배운 건 자신의 부모가 아닌, 새비네와 희자, 명숙 할머니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들의 애정어린 손길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편지에서 묻어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으니까. (p.220)


 피난을 내려와 정착한 희령에서 할머니는 증조부가 짝지어준 상대, 길남선과 결혼한다. 증조모는 그가 증조부와 다를 바 없는 남자라며, 결코 행복하지 못할 거라고 결혼을 말리지만 애초에 할머니는 남편과 결혼 대한 기대가 없었다. 역시나 길남선은 고향에서 이미 열일곱에 결혼하여 본처와 아들까지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본처와 어머니가 희령에 찾아오자, 할머니는 자신의 딸만은 데려갈 생각말라며 엄포를 놓는다.

 그렇게 호적상으로는 길남선과 본처의 딸로 되어있는 엄마 길미선은 정식 부모가 아닌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보호해줄 어른이 없는,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세상이 가혹하다는 걸 일찍이 깨닫는다. 엄마의 목표는 한 가지였다. 보통의 사람으로 보통의 삶을 사는 것. 그건 아빠와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시댁의 눈치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첫째 아이 정연을 잃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이 사실들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모든 일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일관했다.


엄마는 내게 할아버지가 자기가 태어난 직후에 돌아가셨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 말은 거짓이 아니기도 했다.

엄마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이라고 말했었다. 아빠와의 결혼으로 자신도 평범한 가족을 꾸리게 되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던 엄마를 예전에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p.271)


 '나'가 남편과 이혼했을 때도, 천문대 연구원 자리에 지원하여 희령으로 내려갔을 때도 엄마는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지 않았다. 이혼했을 때는 딸이 아니라 바람핀 사위를 옹호했고, 희령으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왜 그런 시골에서 살려고 하느냐고 다그쳤다. 그런 실랑이 끝에 남는 것은 서로에 대한 원망과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는 관계뿐이었다.

 이들이 서로에게 물려준 것과 물려받은 것은 무엇인가? 체념하는 것, 한 번 져주면 두세 번 져주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만족하는 삶, 나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삶이다. 이들은 포기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평안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숱한 설움 속에서 피부를 통해 배웠다. 그리고 딸은 자신과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증조모는 피난길에서 부모 잃은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하는 할머니의 뺨을 수차례 때렸으며, 할머니는 엄마에게 정연의 죽음이 "사람 명이 하늘에 달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고"(p.318) 말했으며, 엄마와 '나'는 "더 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p.137) 이들이 물려주고 싶었던 것은 분명 사랑이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물려준 것은 슬픔이 되었다.

 '나'를 통해 그녀들의 슬픔이, 삼대의 삶의 궤적이 비로소 회전하기 시작한다. 모든 상처의 시작점인 희령에서 '나'는 할머니를 만나 증조모와 새비 아주머니, 희자의 이야기,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상처를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들의 삶에 상처와 고통만 있었던 게 아니었음을, 연대와 사랑이, 삶을 살아내는 강인함이 충만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들의 삶과 슬픔이 용기로 뒤바뀌는 순간, 사랑으로 빛나게 되는 순간이란 바로 지금 자신이 땅에 발을 딛고 서있는 이 순간이며, 그녀들의 역사가 자신에게로 이어짐을 느낀다.


사진들을 거의 다 정리했을 때 상자 바닥에서 약간 뿌연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여자들 여럿이 마루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푸른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엄마와 그 곁에서 하품을 하는 바가지 머리의 내가 보였다. 내 옆에서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어린 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언니 쪽으로 몸을 기울인 젊은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왼쪽에 흰 모시옷을 입은 노인이 엄마와 아주 가까이 붙어앉은 채 웃고 있었다. (p.326)


 그녀들의 밤이 모여 밤을 밝혀줄 무엇이 되기까지, 그래서 더는 슬픔이 아닌 사랑으로 충만한 '밝은 밤'이 되기까지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 소설은 '이정선-박영옥-길미선-이지연'으로 이어지는 한 모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면서, 한 세기를 지나 비로소 우리 앞에 당도한 여성들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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